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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Jul 02. 2020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외국인(2)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1편에 이어)


1년 동안, 잠비아 루사카에서만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는데 또 옮겨야 하다니! 그것도 내 의지라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메인하우스에 사는 가족이 곧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고, 집주인은 집이 비게 된 김에 리모델링을 하려고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이사 온 지 4개월 만이었다. 근처에 살던 애인과 논의 끝에 내 사무실 근처로, 사람 둘과 (애인의) 고양이 두 마리가 같이 살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애인도 나와 비슷한 형태로, 다른 메인하우스에 딸린 코티지에 살고 있었다.

이번 이사를 잠비아의 마지막 이사로 하고 싶었다. 다행히 급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집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에이전시를 통해 집을 알아봤다. 사람 두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살, 내 사무실 근처 몇몇 안전한 지역에 있는, 넓은 거실이 있고, 침실이 두 개 이상 있고, 층수가 너무 높지 않은, 두 명의 코티지 렌트를 합친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금액의 집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더해서, 지나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컴파운드를 보면 경비에게 지금 빈 집이 있는지 물어보고, 혹시 빈집이 생기거든 사례를 할 테니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겼다. 약 2주 동안 거의 10곳 정도의 집을 본 것 같다.


집을 보러 갈 때마다 에이전트는 내가 어디에 있으니 태우러 오라거나, 기름값이 없으니 기름값을 달라거나, 택시비를 달라고 요청했다(한 번에 한화 5천 원 정도씩). 잠비아는 대중교통시설이 미비한 편이라 에이전트가 상대적으로 돈이 많을 것 같은 외국인 고객에게 차비를 요구하는 게 이해가 안 되거나 돈을 뜯기는 기분은 아니었다. 지하철은 없고, 버스는 봉고차 크기의 '미니버스'가 있는데 노선이나 배차간격이 체계적이지 않아 빙 둘러서 가게 될 때가 많고, 가끔은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를 때도 있다. 택시는 미터기가 없어 거리에 따라 흥정을 해야 했는데 2018년쯤에 'ulendo'라는, 우버 같은 앱이 생겨 요금이 찍혀나와 흥정 스트레스가 훨씬 줄었다. 한 번 타면 짧은 거리라도 최소 한화 2천 원 정도 나오기 때문에 에이전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매번 타기에는 부담스럽기는 하다.




둘의 조건에 맞는, 둘의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디는 층수가 너무 높아 정원을 산책하며 살던 우리 고양이들의 활동반경이 너무 확 줄어들 것 같았고, 어디는 방범시설이 허술했고, 어디는 사무실과 거리가 너무 멀었고, 어디는 동네의 치안이 그리 좋지 않았고, 어디는 금액이 많이 높았고(집은 정말 럭셔리했다), 어디는 집이 비워질 때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고, 어디는 집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한 9번째 정도의 집을 볼 때, 우리는 약간 지쳤고, 그 집은 그럭저럭 조건에 맞아서 계약을 하려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계약서를 가지러 자기 집까지 오라는 둥, 계약금을 먼저 내라는 둥 태도가 석연치 않고 영 찝찝했다. 이 계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그때, 에이전트에게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너네 조건에 딱 맞는, 너네가 정말 좋아할 만한 집을 찾았다고.


에이전트가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그 집은 우리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8분 거리였고, 아주 안전한 동네였으며, 작업실로 쓸 수 있을만한 넓은 거실과 두 개의 침실, 그리고 고양이들이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작은 방이 있었다. 금액도 우리 예산 범위 안에 딱 맞았다. 세 채의 집이 모여있었는데, 집주인은 인도에서 온 가족으로 세 집 모두 그 가족 소유였고, 세 집 중 한 집에는 주인 가족이 살고, 나머지 집에는 다른 인도 가족이 이사를 오기로 했다고 했다. 집주인이 너무 친절하고 좋았고, 갓 태어난 아기가 있어 안전에 엄청 많이 신경을 써 집에 보안장치도 아주 잘 되어 있었고, 우리 고양이들도 아주 좋아해 줬다. 계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며칠 뒤 계약서가 마련되었고, 한 달치 렌트만큼을 보증금으로 걸고, 2개월씩 렌트를 선불로 내고, 이사를 갈 때는 한 달 전에 미리 알려주는 조건으로, 처음으로, 집주인과 직접 임대계약을 했다.



새로 계약한 집은 가구가 없는 빈 집이어서 가구를 마련해야 했다. 다행히도 애인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주전자 등의 가전은 가지고 있었다. 나도 마침, 메인하우스 가족들이 내가 살고 있는 코티지에 있는 물건들을 팔 계획이라고 해서 마음에 들었던 침대, 소파, 책상, 조명 두 개, 탁자 세 개, 커틀러리 세트 등을 잔뜩 골랐고, 이 모두를 한화로 20만 원이 채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싼 값에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외국에서 살다가 떠날 때, 가져가지 않을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주거나/팔거나, 'Expat Zambia' 등의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판매하는 일이 많다. 날을 잡고 'Garage Sale'을 열어 물건을 팔기도 하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쓸만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고,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차피 가져가지 않을 물건을 버리는 대신 얼마가 되든 돈을 받을 수 있어서 중고시장이 활발한 편이다.

그 외에 집에 들어가는 고정지출은 각종 공과금이다. 잠비아에서는 전기세와 물세가 '선불'이다(후불로 내는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가스는 안 쓰는지, 가스가 설치되어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잠비아에서는 많은 것들이 선불이다. 휴대폰 요금도 선불이고 인터넷 요금도 선불이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는 방식은 다양한데, 1) 전기세/수도세를 낼 수 있는 몇몇 마트에서 구입하거나, 2) 쇼핑몰 등에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에서 구입하거나, 3) 전기공사/수도공사 사무실을 방문해서 구입하거나, 4) 휴대폰 뱅킹에 가입한 경우 이를 통해서 구입하거나, 5)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구입하면 되는데 이 모든 방법이 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면 영수증에 열몇자리의 토큰 번호가 인쇄되어 나오는데, 이걸 집에 있는 미터기에 입력하면 충전이 된다. 다 쓰면 뚝 끊긴다. 몇 번 미리 잔액을 확인 안 했다가, 무더운 여름밤 모든 곳이 문을 닫은 늦은 시간에 전기가 끊겨서 인터넷 사이트로 구입을 30번은 시도했다가 다 실패하고 좌절하여 땀에 젖어 잠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또 다른 고정지출은 경비원/가사도우미의 월급이다. 잠비아에서는 큰 집에서는 안전상 경비원을 고용하는 것은 필수고, 대부분 풀타임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처음 두 집은 경비원이 있었고, 마지막에 이사 간 집은 경비원은 없었지만 경비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비용을 내가 지불하지 않아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가사도우미의 경우 첫 번째 집은 토요일에만 불러 한화로 1만 원 정도를 지불했고, 두 번째 집은 메인하우스에 매일 오는 가사도우미가 일주일에 이틀 내 코티지에서 일하고 한 달에 한화로 1만 5천 원 정도를 분담했다. 마지막 집은 일주일에 삼일 가사도우미가 왔고, 한화로 한 달에 2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경비와 가사도우미는 모두 신용과 신뢰가 매우 중요한지라 좋은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고, 한 곳에서 신용이 쌓인 경비와 가사도우미는 전에 일하던 집의 추천을 받기도 한다.




이사하는 날, 아침 일찍 커다란 트럭 한 대를 불러서 내 코티지에서 가구를 싣고 애인집으로 가서 또 가구를 싣고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각자 쓸 방을 정하고, 거실에는 공용 작업실을 꾸미고, 고양이방에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와 화장실을 만들어 주고, 부엌도 정리하고. 예전에 가구가 다 있는 집에 나 혼자 몸만 들어갈 때랑은 다르게, 가구도 옮기고 공간을 꾸미는, 정말 '이사'였다. 일이 많았다. 그렇게 저녁때까지 집 정리를 하다가 집에 먹을 것도 없고 해 먹을 힘도 없어 외식을 하려고 나가려던 찰나, 마음씨 좋은 집주인 부부가 하루 종일 이사하느라 정신없어서 밥도 못 먹었을 것 같다며 인도커리를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맛도 너무 좋았고 그 마음 씀씀이에 너무 감동해서 이사 첫날부터 좋은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집이었다. 이 집에서는 잠비아의 마지막까지, 친한 친구들도 자주 초대하고, 한국에서 친구가 날아와 며칠 지내다가 가기도 하고, 애인과 고양이들과 추억을 많이 쌓으며 아늑하게 보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집을 구하고 옮길 때마다 긴장도 많이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집에서 변화가 있는 삶을 산다는 즐거움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만큼 간편하게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파키스탄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애초에 1년 계약을 하고 들어와 별 일이 없다면 파키스탄에 머무는 기간 동안 쭉 살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한 집에서 오래 사는 즐거움을 발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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