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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Jun 25. 2020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외국인(1)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주말에 창가 소파에 앉아서 허벅지에 노트북을 얹어놓고 티비로는 유*브 영상을 틀어놓고 애인과 영상통화를 하며 아몬드를 집어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새삼, 이 집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다. 지금 파키스탄에서 살고 있는 이 집은 꽤 마음에 드는 집이다. 직장에서 가깝고 쇼핑몰도 바로 아래에 있어 편리하고 집도 기본 가구도 편안하다. 현지직원의 도움으로 집도 쉽게 구한 편이고.


집을 구한다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더 막막하다. 부동산엘 가야 할지, 피*팬/직*/다* 같은 사이트나 앱이 있기나 할지, 이 나라는 관련 법이 어떻게 되는지, 시세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동네가 안전한지, 사기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감이 정말 하나도 안 온다. 게다가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생활비 중 개별 금액이 크기도 하고('전세'는 한국 외에 본 적이 없고, 2주에 한 번이나 매달, 혹은 분기별로 렌트를 선불로 냈다), 일단 이사를 하면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래도 몇 개월은 살게 되고, 무엇보다도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 집을 구할 때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막상 집을 구해보면,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것 같다. 중개업자도 있고, 중개사이트도 있고, 법도 비슷비슷한 것 같고, 아는 사람 통해서 알음알음 구할 수도 있고. 보증금 날릴 걱정이 적다는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전/월세 계약보다 부담도 덜하다. 보증금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다고 해도 한 달치 렌트 정도다(물론 날리게 될 경우에 적은 돈은 아니지만, 날린다고 보는 편이 마음이 편한 경우가 있다).




외국인으로서 집을 고를 때 무엇보다도 안전을 가장 따지게 되는 것 같다. 특히 현지의 일반적인 인식 상 돈이 많을 것으로 기대되는 나라 출신의 외국인처럼 보인다면, 내가 실제로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범죄의 타깃이 되기가 쉽다. 막상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그래서 동네를 고를 때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된다. 특히 어떤 나라에 간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집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잠비아의 루사카에서는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은 집값도 비싸고 그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경비를 고용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고, 반면에 현지인들도 잘 가지 않는 몇몇 우범지대가 있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는 계획도시라 그런지 주거지 구분이 확실하고 대부분의 커다란 주택이 지어져 있고 무장한 경비들이 집을 지키고 있어 안전한 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주택들이 지하 1층 지상 2층의 정원이 있는 커다란 집이라 혼자나 두 명이 사는데 단독주택 한 채를 다 빌리기에는 너무 커 층별로 쉐어를 하는 경우가 많고, 아파트는 외국인이 살만한 곳은 두 개 정도 있고, 넓은 평수의 집이 많다. 크기 때문에라도 렌트가 높은 편이다.


동네뿐만 아니라 집 자체의 보안설비도 꼼꼼하게 살폈다. 주택의 경우, 집 안이 안보일만큼 담은 충분히 높은지, 담장 위에 electric fence가 쳐져있고 잘 작동하는지, 대문은 철문으로 단단하게 잠기는지, 현관문/창문에 방범 쇠창살은 잘 설치되어 있는지, 지붕이 충분이 튼튼하여 천장을 뚫고 들어올 수 없게 되어있는지 등도 보고, 24시간 경비를 고용하거나 비상시에 경비가 바로 출동할 수 있는 서비스에 가입하여야 한다. 종종 경비가 다른 경비와 짜고 돌아가면서 서로의 집을 터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여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아파트의 경우에도(잠비아에서는 우리나라 아파트 같은 곳이라기보다는, 빌라 두 채 이상으로 구성된, 수영장 등 공용 부대시설이 딸린 컴파운드가 많았다) 공용 출입구에 잠금장치 등 방범시설이 설치되어 있는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지, 경비가 있는지, 현관문/창문에 방범 쇠창살은 있는지, 체인은 설치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위에 내가 적은 내용은 유달리 도둑이 판을 치는 나라나 지역, 구역이 아니더라도,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해지고 혼자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국가나 경제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외국인이 많지 않은 나라라면 외국인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더 조심하는 게 좋고, 만약 여자라면 더 불리할 때가 많다. 정말 미친*들이 쫓아오는 경우도 있고. 외국에 살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늘 잔잔하게 긴장하며 살게 되는 것 같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고 직장에서 주거비 지원이 되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조건을 따져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잠비아와 파키스탄이었다(호주에서는 돈 없는 가난한 '워킹홀리데이er' 로서 닭장쉐어가 아닌 범위에서 렌트가 싸고 독립실이 보장되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면 오케이였다). 잠비아에서는 총 세 번 이사를 했는데, 처음 한 달간은 호텔에서 살았고(나는 정말이지 호텔이 너무 삭막하고 외롭다), 그 뒤 방 세 개짜리 빌라에서 친구 두 명과 고양이 한 마리와 플랫쉐어를 하며 9개월 정도 살다가, 한 가족이 사는 주택에 딸린 작은 집에서 혼자 5개월 정도 살았고, 마지막 1년은 주택 세 채가 모여있는 작은 단지의 침실 두 개+고양이 방이 있는 집에서 애인과 고양이 두 마리와 살았다.


호텔을 제외하고는 저 세 가지의 주거형태 모두 나는 서로 다른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처음에 플랫쉐어를 했던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플랫을 렌트한 친구가 잠비아에 4년간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발이 넓은 사람이어서 우리 플랫은 방문객이 많은 열린 공간이었다. 퇴근하고 방에 있다가도 저녁시간에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면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거실에 매트리스를 하나 둬서 정말 랜덤(!)한 사람들이 머물다 갔다(아침에 문을 열고 거실에 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자고 있기도 했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재밌는 활동들을 했다. 그 기간이 없었다면 내가 잠비아에 있었던 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의 1/10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플랫을 렌트한 친구의 직장 계약이 종료되어 고국으로 돌아갈지 말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집을 비우느냐 계약을 내가 넘겨받느냐 하는 결정의 순간이 있었는데, 나는 매번 사람을 구하기도 귀찮고, 집을 관리하고 운영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이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따로 만날 수도 있으니 혼자 좀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사를 결심했다.


페북의 Expat Zambia도 살펴보고 주변에 내가 집을 구한다는 얘기도 퍼뜨려놓고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니다가, 다른 친구 한 명이 역시 직장 계약이 종료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커다란 메인하우스에 딸린 작은 코티지(cottage)였는데, 침실이 하나 있고 거실과 부엌이 하나로 된 공간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하자마자 아, 이 집이다! 싶었다. 구아바나무, 레몬나무 등 과일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 있는 내 몸집만 한 개는 좀 무서웠지만), 정원 안쪽에 위치해 조용한 코티지, 작은 창문과 책장과 소파와 전등이 잘 배치되어 있는 거실, 또 작은 창문과 커다란 침대와 옷장 등이 안락하게 놓여 있는 침실. 플랫쉐어 정도의 저렴한 렌트. 게다가 이 친구가 나가는 시기와 내가 이사를 해야 하는 시기도 딱 맞아떨어졌다. 사무실과의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사업용 차량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어서(이게 생각보다 문제가 많고 불편해서 큰 단점이 되었지만) 나는 이 집을 선택했다.


생각해보니 외국에서 혼자 사는 건 이 집이 처음이었다. 혼자 사니 집에 있는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고, 이 공간이 모두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안락함이 있었다. 혼자 산다는 건, 거실에 나와 있어도 혼자 있다는 거였다.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 거실을 내 취향에 맞게 꾸며 놓으니 침실에서 거실로 나오기만 해도 기분이 전환되었다. 생활에도 내 '의지'가 더욱 많이 반영되었다. 내가 소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용했고,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었다. 방문만 열면 누군가가 있었던 예전 집과는 달리 사람을 만나고 사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어딘가를 찾아가든 누군가를 초대하든, 방문을 나서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친한 친구들이랑 더 깊은 교류를 했던 것 같다. 내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여행도 가고. 혹은 집에서 기타도 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게임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이 집에서 잠비아의 나머지 시간을 평화롭게 보내려고 했지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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