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Ci Jun 03. 2020

어쩌다 떠돌아다니게 되었나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 기 보다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 보통 전/월세 계약기간인 2년이 끝나면 집주인들은 으레 보증금을 올렸고,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조건에 맞는 보증금을 갖춘 집을 찾아 이사를 하곤 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2년마다, 가끔은 더 짧은 기간 내에, 이사를 한 셈이다. 더해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방학 때마다 부산의 외갓집에 내려가서 여름에 한 달쯤, 겨울에 한 달 반쯤 살았다. 엄마는 이사를 할 때가 되면 주로 방학 때 이사를 해서, 종종 부산에 다녀오면 집이 바뀌어 있곤 했다.


그렇다고 동네가 바뀐 건 아니었다. 오히려 동네는 쭉 그대로였다. 잘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잠깐 옆동네에 전학을 다녀온 이후로는 학교를 옮긴 적이 없고, 부산 외갓집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사 한 번 가지 않았다. 이런 변화와 유지의 혼합이 나에겐 조금 기묘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변화는 했는데, 사실은 그대로인 느낌. 내 몸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했지만 거기엔 늘 그대로인 외갓집이 있고, 이사한 직후 며칠간은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디지, 하며 순간 이질감을 느끼지만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그대로 있는 거다. 그 미묘한 위화감을 사실 나는 꽤 즐겼던 것 같다.

이렇게 어중이 떠돌이로 자라다가, 대학에 입학하고 자립을 하며 본격적인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 근처 고시원에 잠깐 살다가 엄마 집에 잠깐 살다가 캄보디아에 갔다가 시청 근처 고시원에 잠깐 살다가 홍대 근처 고시원에 살다가 합정 선배 집에 잠깐 살다가..... 옮겨다니는 기간이 점점 짧아졌고 내 짐도 점점 간소해져갔다. 나는 돌아갈 집이, 거처가 없는 사람이었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어쩌다'가 되었다.




누군가가 내가 다녀온 나라에 대해, '거기 어땠어?'라고 물으면 내가 하게 되는 대답은, '음, 좋았어.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은 별로였지만.' 이라든가, '음, 좀 별로였어, 일교차도 너무 심하고 물가도 비싸고.'라든가, '너무 좋아 또 가고 싶어!' 등의 단편적인 대답이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나라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누군가라면, 더욱 자세하게 물어올 것이다. '거기서 뭐 먹고살았어?', '시장은 어떻게 생겼어?', '가장 재밌었던 곳은 어디야?', '사람들은 주로 주말에 뭐 해?' 등등등.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살더라', '거기 사는 내 친구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더라고',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걔는 저렇게 이렇게 해서 신기했어' 등등등.


나는 그런 걸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우기 때마다 범람하는 호수의 수위에 맞춰 땅에서 1층 높이 정도로 띄워놓고 지은 저 나무집들이 내 눈에는 다 비슷해 보였지만 알고 보니 어떤 집은 질이 좋고 어떤 집은 질이 좀 떨어진다든지,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좋아 보이고 친절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만나다 보니 이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고 이 사람은 좀 나랑 안 맞고 얘는 진짜 별로였다든지 이런 것들. 세상 어디나 사람은 다르고 삶은 다양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단편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다면적으로 파악되는 것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그런 당연한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시작은, 캄보디아였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대학생 자원활동 프로그램에 지원해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떠났다. 5개월의 캄보디아는 처음 가 본 '외국'이었고, 잘 모르는 수준을 넘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갔다. 내가 알던 것과 모든 게 달랐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훅 끼치는, 사우나 같은 습하고 더운 공기, 낮은 건물들과 넓은 하늘, 다른 말, 다른 인종, 다른 생활양식, 다른 사고방식 등. 글로만 알고 머리로만 알았던 '다름'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그리 길지도 않은 5개월간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그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일을 좀 하다가 복학해서 대학교를 마쳤고(그동안 이사는 계속되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몸으로 겪어보고 싶었다. 한 곳에 최소 한 달은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구경도 하고 나도 좀 살아보고. 돈이 없어서 일단 호주에서 일 년 정도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여행을 하려고 했지만, 계획과는 달리 호주에 2년 가까이 머무르며 호주 전 중 후로 태국 치앙마이, 캄보디아 씨엠립, 동티모르 딜리, 프랑스 파리와 떼제, 바르셀로나에 잠깐씩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참 단순하고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한 나라에 '살려면' 거기서 일을 해야 하는구나. 이 깨달음이 두 번째 '어쩌다'.



마지막 '어쩌다'는, 내 전공 및 진로와 관련이 있다. 나는 국제관계와 국제평화를 공부했고, 나름 전공을 살려(?) 개발협력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분배에 대한 관심이 많아 공정한 분배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선택한 길이었다. 개발협력분야에서는 한 나라와 다른 나라의 협력을 통해 자원이 이동하고, 그 자원을 이용하여 개발을 한다. 국가간 뿐만 아니라 민간 수준에서 협력을 할 수도 있고, 국가와 민간이 협력할 수도 있고, 국제기구와 협력을 할 수도 있고 그 외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을 위한 협력이 일어나고 자원이 이동한다. 그리고 이 '자원'에는, 인적자원도 포함이 된다. 즉, 누군가가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개발을 위해 사업을 하기도 한다. 나는 2년간 잠비아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의 어쩌다로 인해 나는 여기저기에서 살아오고 있고, 앞으로는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아직까지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지는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사는지는 평생 살아가면서 봐야 할 일이고, 개발협력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될지는 고민 중이다. 이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전 01화 외국은 다 같은 외국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