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맨 15년

싫어하는 일은 찾아냈다!

by 하크니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내 방에서 아빠와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아빠는 나한테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사상교육(?)을 하려고 했다.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10년만 군복무하고, 제대하면 대한항공 기장이 될 수 있어. 그러면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도 월 천만 원은 돈을 잘 번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던 것 같다. 나는 정신교육 끝에 공군사관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신 성적으로는 전교 10등 안에 들어갔으나, 모의고사는 점수가 잘 나오질 않았다.


공군사관학교 시험에 붙었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제일 중요한 시력검사가 있었는데, 제일 윗줄이 무슨 그림이냐고 물어보는 말에 '안 보여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보였다. 그런데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서 본 공군사관학교의 분위기가 내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그냥 안 보인다고 대답했다.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붙길 포기한 셈이다. 3년을 준비한 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지게 됐다. 아니 스스로 떨어지길 선택했다.


점수에 맞는 대학을 갔고, 그냥 되는대로 학교를 다녔다. 졸업의 순간이 다가오자 난 또 회피를 했다. 대학원으로 도망쳤다. 석사 수료까지 하고,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나는 솔직히 대기업에 입사한 순간 내 인생은 이제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2010년쯤에 세금 떼고 300 정도를 수령했다.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 심지어 다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서(나는 비흡연자다) 핸드폰을 봤다는 이유로 사람들 없을 때 몰래 옆구리를 강타한 선임. 자존감은 낮아졌고 회사에 갈 때마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아 그만두고 말았다. 약 8개월 만에 때려치운 대기업이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나이 29살,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고생해 보자고 생각해서, 부천에 있는 전동드릴로 나사를 박는 pcb조립 업체에 생산직으로 들어갔다. 조선 족들 사이에서 일을 했다. 일주일 정도 일했는데,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게 시간이 좀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공사장에서 사람을 뽑는데 교회 집사님이 하시는 곳이라 갈 수 있게 됐다. 숙박노가다(?)라고 하는 건데, 주중에는 평택 근처 모텔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공사장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지열공사 파트였다.


지열공사.JPG


이런 PE관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저런 건 되게 작은 관이고, 내가 했던 건 정말 사람이 옮기기도 힘들 정도로 두꺼운 관이었는데 두 달 동안 모텔에서 자고, 금요일만 올라와서 주말에는 교회 회장단 역할을 했다. 정말 힘들었다. 작업 공사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새벽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한 적도 있다. 그렇게 평균 월 300만 원 정도를 벌어 엄마에게 모두 드렸다. 대기업을 그만둠으로써 엄마가 큰 실망감에 휩싸여 있어서 돈으로나마 보답하고 싶었었다.


몸으로 돈 버는 건 한계가 있겠다 싶었다.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으려 떠난 여정인데, 노가다만 하고 있었으니.. 독서를 좋아했어서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취업사이트에서 주니어 플라톤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생님 역할이었다. 당장 들어갔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월급은 130만 원에서 160만 원 사이밖에 못 벌었다. 선생님 역할도 바쁜데, 책도 팔아야 하고, 학생들을 유치해야 했다. 선생님 역할보다 영업의 역할이 더 컸다. 영업의 축소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책에 관한 교육자를 꿈꿨으나, 현실은 달랐다. 1년 동안 주니어 플라톤의 전 과목을 다 경험하고, 자진 퇴사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때 내가 끌린 건 창업이었다. 결혼한 와이프와 그때 당시 사귀고 있었고, 와이프는 디자이너로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와이프와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고 나는 경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본금 0 원으로 조그만 카페를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 보증금으로 가게를 얻었고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친구들에게 돈을 갚았다. 그리고 시작한 카페는 적자였다. 그리고 카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손님을 상대해야 했고, 카페 경영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계속해서 빚이 늘어났다.




카페에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꿀알바가 들어왔다. 보험회사였는데 면접만 보면 5만 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면접만 보러 갔다. 5만 원을 벌기 위해서. 그런데 합정역에 큰 건물 속에 정장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그런 곳에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읽던 자기 계발서의 저자들은 대부분 영업사원이었고, 영업으로 큰 부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말하고 보험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분명히 난 인간관계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1년 만에 더이상 계약을 따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실패하면 왠지 어디 가서도 실패할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버텼다.


마감을 못하면 내 계약을 넣어서라도 버티곤 했는데, 4년 정도 일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난 결혼도 했고 지켜야 할 가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못 벌면 가정은 유지할 수가 없다. 카드론도 쓰고 친구들에게 돈도 빌리면서 살았다. 너무 괴로웠고, 보험일을 하면서 투 잡, 쓰리 잡을 뛰기 시작했다. 오전, 오후에는 보험업무를 하고, 잠을 잠깐 잔 후, 저녁에는 내진설계 일을 하러 갔다. 지하철에 지진이 나면 무너져 내리는 걸 막기 위해 약 2~3초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밤 11시 정도쯤 도착해서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했다. 그러고 13만 원을 받았다. 당시 장모님께서 10년 동안 타다가 주신 모닝이 없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약 4달간, 보험일과 병행하면서 번 돈으로 가장 급한 빚인 카드론을 갚아냈다.




대학원 때 친하게 지낸 형이 연락을 해왔다. 주요 요지는 자기가 제조업 스타트업 회사에서 영업이사로 일하게 됐는데 같이 와서 마케팅 업무를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취업 준비 중이었고, 많은 기업에서 탈락 중이었기 때문에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제조업은 처음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일단 보험업이랑 같이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다. 보험업은 월 100~150 정도 벌 수 있었고(그동안 쌓여있는 계약이 있어서), 회사에선 약 200 초반을 받고 일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생활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운 마케팅 업무와 현실에서 사용하는 마케팅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스타트업 특성상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일은 도맡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를 입사하는데 도움을 줬던 영업이사 형은 대표와의 트러블로 관둔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그 형과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렇게 현재 내가 하는 일까지 왔다. 사업은 원래 다니던 회사와 같은 제조업 스타트업이었다. 정말 창업이라는 건, 그리고 동업이란 건 잘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세 명이서 자본금을 출자해서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 1년 차에 동업자 한 분이 그만뒀다. 그러면서 정말 사람에게 정이 떨어졌고 직원을 채용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직원들과의 마찰, 고객사와의 마찰 등 정말 사람에게 싫증이 났다.


현재는 동업자로 남은 대학원 형과 나 이렇게 둘이 남았고, 마음에 맞는 직원과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다. 자금압박 스트레스를 매일 받으며 일을 하니 걱정과 불안함에 일은 자꾸 손에 안 잡히고 실수는 많아졌다. 계속 어딘가 흠이 생겼다. 빠르게 변화하는 영업 환경 속에 계속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업, 마케팅, 회사 관리, 인사 등 다 너무 맞지 않고 힘들다는 생각만 든다.




결국 이렇게 떠돌아다닌 약 15년의 시간 속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도 있고, 정답이라고 생각해 시작한 창업, 경험을 쌓기 위해 했던 노가다 등 나름 많은 걸 겪었다고 했지만 좋다고 할만한 일은 없었다. 확실히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사람과 얽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싫어하는 걸 명확히 깨달았다. 사람이 얽히면 아주 힘들어진다. 지금은 모르는 전화로 전화만 와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매일 대표님의 기분을 살피고, 말투, 억양, 표정에 신경이 쓰인다. 나도 모르게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산다. 이제 이런 생활은 지겹다.


결국 나는 사회생활에서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찾는 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서 할 수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하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찾아낸 것 같다.


이 이후 이야기는 다음 연재분에서 쓰도록 하고. 오늘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맨 내 여정(사실 이 여정 전부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만을 위한 여정은 아니었다. 필수불가결한 선택도 있었기에)을 소개했을 뿐이다.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럽다. 그건 정말 하늘이 주신 행운이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으며 전문가로 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이번 나는 이번 생에서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나의 것. 스스로의 것을 '나 혼자'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혼자 하는 일을 위해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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