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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내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27

by 일라 Mar 27. 2025

요즘 꽤 만족스럽게 디지털 튜터로 일하고 있다.

첫 출근 날이 오기 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일지가 가장 걱정이 되었다.

일이야 생소한 일이더라도 하다 보면 배우면서 점점 적응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은커녕 마음의 상처만 커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친절하시고 도움을 주실 일이 생기면 기꺼이 도와주셔서 일을 할 때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적고 나니 그분들도 나를 같이 일하기 좋은 상대라고 생각하실지 궁금해졌다.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생각이시겠지..?


점심을 먹을 때는 교직원용 식당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혼밥 하는 걸 좋아하는 나여도 4인용 테이블만 있는 곳에서 모두가 함께 먹는데 나만 큰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며 묵묵히 밥 먹기는 조금 어려웠을 것 같다.

다행히 한 선생님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먼저 제안해 주셔서 늘 같이 점심을 먹는 선생님들이 생겼다.


누가 보면 그냥 평범한 직장생활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이대에 상관없이 친절한 직장 동료를 만나는 일은 나에게 정말 기쁜 일이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호되게 겪은 게 있어서 그런가, 소소한 상냥함에도 마음이 울린다.




내가 IT 회사에서 일할 때 UX 디자인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디자인 전공이 아니다 보니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좋다고 했다가도 한 달 뒤에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며 다 바꿔달라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들어오자 나중에는 내 실력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도 어찌어찌 프로젝트는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이때는 몰랐다.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의 마찰이었다는 걸.


그 뒤 디자인은 절대 손도 대지 않고 내가 원래 도전하고 싶었던 서비스 기획에 집중하며 처음으로 PM을 맡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처음 맡는 매니저 역할이라 긴장이 많이 됐었고, 개인적으로 개발 공부도 병행하면서 개발자들과 소통을 잘하려고 노력했었다.


내 노력이 통했는지 개발자들과는 나름 화기애애하게 지냈는데, 문제는 우리 회사 밖에 있었다.

고객사의 담당자가 나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그러겠거니 짐작하고 더 노력했다.


한 번은 내 상사가 다른 일로 출장을 가셨을 때 담당자가 나를 본인 회사로 불러서, 혼자 불안에 떨며 고객사로 향했다.

그때 당시 고객사에는 따로 회의실이 없어서 모든 직원들이 있는 공간 한쪽에 있는 큰 테이블에서 공개적으로 회의를 했었는데, 거기에 나를 앉혀놓고 PM으로서의 자질이 없다며 그따위로 일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윽박질렀다.


단 둘이 있을 때 그래도 모욕적이었을 텐데 모든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니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왠지 거기서 울면 그 사람이 더 원하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공개 모욕이 끝난 이후에 그 자리에서 다른 직원들과 웃으며 일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참았던 눈물을 조금씩 쏟아냈다.


그때만 해도 프로젝트 초반이라 나는 PM으로서 내가 일을 정말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 상사와 상담도 했었다.

다행히 상사는 그 정도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건 우리 회사 자체를 모욕한 것과 동일하다며 편을 들어주셨고, 아직 초보 매니저라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프로젝트에서 나갈 정도의 부족함은 아니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배우는 것을 제안하셨다.


나도 마찰 한 번에 내가 PM으로서 설 수 있는 첫 프로젝트로부터 도망가고 싶지 않았고, 또 힘들면 회피하려 했던 지난날들을 다시 재생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이 잘 진척되도 담당자는 일관적으로 나를 싫어했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필요한 질문에도 온갖 화와 짜증을 내다가도 내 상사와 함께 있을 때는 세상 좋은 사람인 척 웃으며 가식을 보여주는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열이 뻗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담당자가 나를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서비스를 제작하는 필요한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회사 대 회사 문제로 갈등이 커졌다.

지속되는 업무 방해에 이골이 난 상사가 직접 고객사의 다른 임원들과 소통한 결과, 그 당시 고객사에서 정치적 피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담당자는 우리 회사가 본인이 견제하는 다른 임원의 편인 줄 알고 우리를 프로젝트에서 빼고 본인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협력사를 참여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었던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나니 억울함이 더욱 커졌다.

어찌 됐든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으니 우리가 하고 있 일들을 잘 마무리하기로 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또 한 번 뒤통수를 당할 뻔했다.

담당자는 물론 담당자와 일하던 부하 직원들이 프로젝트 총괄 임원에게 우리 회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 일하지 않아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담당자 외에 다른 고객사 직원들은 나름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뱀 같은 짓을 하다니.

내가 이를 어디까지 갈았는지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왠지 저렇게 나올 같아서 그동안 했던 일들을 모두 문서화했으며, 고객사 임원들이 보든 안보든 매주 일의 진척 상황을 메일로 보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총괄 임원은 처음에는 우리를 의심하는 듯했으나 자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서비스에 별 이상도 없었기 때문에 본인 회사의 잘못을 인정했다.


나중에 사과의 의미로 밥을 사주시면서 들은 얘기로는 고객사 담당자뿐만 아니라 같이 작당모의했던 팀원들이 모두 해고당했다고 한다.

조금 통쾌하면서도 본인들 싸움에 왜 우리 팀을 껴서 쓸데없는 기싸움에 나를 이렇게까지 소진되게 만들었는지 허탈했다.

상사가 자기도 이런 사람은 근 10년 동안 보지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전에 혹은 그 후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 비상식적인 일이 있었어도 기억에 잘 남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소개한 UX 디자인 사례는 이제는 귀엽게 느껴진다.


이 프로젝트를 한 4개월 정도 하면서 건강도 많이 망가졌었다.

병원에 가면 별 이상이 없다고 하는 데 몸에 통증이 계속 느껴졌고,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아 몇 달은 늘 통증에 시달리면서 일을 했다.

이때 시작한 통증은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서서히 가라앉았다가, 이직한 회사에서 상사의 '내 맘에 들 때까지 점 하나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다'는 히스테리를 겪어 또 한 번 올라왔다.


이 상사는 내게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며 본인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프라이빗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구박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겸허히 충고로 받아들였는 데, 별로라고 했던 걸 다시 좋았다고 했다가 또다시 별로라고 하는 일이 지속되자 내 참을성의 선이 끊어졌다.


진통제도 듣지 않는 통증이 또다시 시작되자 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퇴사를 했다.

나름 전 회사의 상사에게 많은 것을 배고 칭찬도 들었던 적이 있었던지라 더 빨리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신입으로 이 회사에 들어갔다면, 나는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다른 회사에는 이직할 엄두도 못 내며 상사 비위를 맞추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취업을 하려고 준비할 때 가장 걱정이 컸던 부분은 사람이었다.

긴 시간을 들여 회복시켜 놓은 건강을 다시 바닥에 곤두박칠지게 두고 싶지 않았고,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잘 대처하지 못한 나를 또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상담을 받을 때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내가 겪은 일이 사람들이 흔히 겪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고 보통은 그거보다 덜 한 사람 스트레스를 겪는 곳이 더 많다고 해주셔서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항상 사람 스트레스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험한 일을 겪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좀 더 의연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다가도 그때만큼 더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다가도 금세 회복하며 잘 지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동으로 강해지는 줄 알았는 데, 살아남으려 치열하게 노력한 내가 나를 더 강해지게 만들어주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직장의 사람들이 친절한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늘 느끼며 더 성실하게 일하려고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조용히 일해서 그런지 틈틈이 일하기 괜찮은지 확인해 주시고 간식도 자꾸 권유하신다.

별 것 아니지만 다정한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도울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거리가 멀지만 않았어도 이 학교에 또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역시 직원의 발을 붙잡는 건 공정한 대우와 다정한 사람들인 것 같다.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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