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풀린 감정에 대한 오해
어린 시절 나는 지독히도 잘 울던 아이였다. 엄마랑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고 울고, 아빠가 무서운 표정만 지어도 무섭다고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나를 '울보'라고 불렀다.
반대로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나의 언니는 나와는 달리 지독히도 안 울던 아이였다.
주사를 맞을 때도 울지 않고 묵묵히,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날 때도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독한 얼굴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텼다.
그에 반해 나는 엄마가 매를 드는 순간부터 울고 불고 싹싹 빌며 죄송하다고 사죄하여 언니보다 덜 혼이 났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어렸던 나는 '부정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며 잘 흘려보냈구나'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지난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예스걸'이었다. 거절을 죽어도 못하는 천사 같은 아이. 부정의 표현은 절대 하지 않는 긍정적인 아이. 학창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넌 정말 착하다"였다. 그렇게 19세까지 내가 바라보는 나의 자아는 뭐든지 다 받아주는 '착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난 착한 사람이어야 해'이다.
내 안에 부정의 감정을 눈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한 번도 표출해 본 적이 없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타인의 고통에는 참지 못하고 나섰다.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가 약한 아이와 강한 아이가 말다툼을 하고 있으면 달려가서 대신 강한 아이에 맞서 싸워주었다.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대신 처리하고 다니는 내 모습이 '착한 아이'와 상반되는 반전 모습이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내 주변에는 늘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반장과 부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저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지 정작 나를 지키기 위한 부정의 감정은 철저히 억누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니 나는 삶에서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표현하는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누군가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불편해질까 봐 그토록 상대에게 맞춰가며 예스걸이 되었던 것이다. 집에서도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중간 조율자 역할로, 부모님의 기분을 맞춰주는 역할로써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다.
이는 교우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맞춰준다고 해서, 싫은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계속 내 곁에 있어준 것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손절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 내가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뒤에서 수군거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변했네'라는 따가운 말과 함께.
나는 이것을 부작용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이런 성향이 마냥 좋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그 누군가는 내 속을 전혀 모르겠다고 했으며, 그 누군가는 좀 답답하다고 했다. '착한 사람'의 자아에 갇혀 지내던 내가 그 알을 깨고 나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데 36년이라는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36살에 감정코칭 전문가로 수련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감정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부정의 감정은 내 안에서 감춰둬야 하는 것으로, 표현하면 관계가 깨지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꽁꽁 싸매두었던 내 안에 부정의 감정들은 누군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결국 표출이 된다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물로, 다음엔 날 선 언어로, 최종적으로는 분노로 말이다.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 그토록 감춰왔던 감정이 결국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난 수련과정을 통해 이제는 확실히 알게되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 서운함, 짜증, 억울함 등의 감정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긍정의 감정만 느끼도록 설계되었다면 오히려 수명이 매우 줄어들었을 것이다. 위험한 관계나 사고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을 테니.
중요한 것은 부정의 감정을 느끼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 이걸 어떻게 스스로 조율하고 타인에게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의 나는, 부정의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내 안에서 조율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렇게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는 폭이 넓어지니 관계들도 훨씬 편해졌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하다.
지난 36년의 내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부정 감정 자체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 내가 느끼는 부정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회피할 방법들을 우선 찾는다. 내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니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 역시 없다. 우리는 감정이 해소되었다고 착각하며 살지만 사실 억눌렀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내 삶을 쥐고 흔드는 어떠한 감정이 해소되려면, 우선 내가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정확한 감정단어로써 인지하고, 그 원천을 찾고, 편히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부정의 감정은 옳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것
*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 감정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그에 따른 행동에는 분명 옳고 그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감정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 감정이 점점 편해지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발행할 나의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과 친해지고 일상에 적용하여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