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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Aug 31. 2020

너머를 보게 하는 힘

[만 매니저 레터. 3] 조금씩 조금씩 스스러 민재를 응원해!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누구든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안녕하세요 :D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 제충만, (a.k.a 만 매니저)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이하, 스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수도권 확산으로 문을 닫고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며 그동안 만났던 스스러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두 번째 레터의 '서진'처럼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작업꾼들이 생각납니다. 톡 하고 건드리면 와르르 쏟아내는.


하지만 작업이 어색하거나 창작 활동에 큰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스스에 옵니다. 부모님이 보내 마지못해 온 친구들도 있고 몸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아서인지 스스의 콘텐츠에 영 흥미를 못 붙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오자마자 와이파이부터 찾는 아이도 있고요.


스스는 12-19세 청소년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작업이 좋고 익숙해 오자마자 내 집처럼 홀딱 빠져드는 친구들이 아닌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스스에서 작업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 스스러 '조이'의 작품





"저 여기 게임 깔아도 돼요?"


중학생 '민재(가명)'는 대학로에서 일하는 어머니 덕분에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스를 알게 됐습니다. 처음 스스에 온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공간을 이리저리 살피던 민재는 이내 지루해졌는지 구석에 털썩 앉았습니다. 부모님 소개로 온 아이들은 금방 지루해하며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민재도 곧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민재의 눈이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태블릿이었습니다.


"저 여기 게임 깔아도 돼요?"

"민재님 아이패드 쓰시게요? 스스는 작업하는 공간이에요. 아쉽지만 게임'만' 하는 것은 금지예요."


민재는 이 말을 듣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녹화해서 영상편집을 하거나 유튜브로 게임방송을 해보는 것은 괜찮아요.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은 더욱 환영이고요."

"오! 저 그럼 게임 유튜브 해볼래요. 안 그래도 제가 게임 영상 보는 것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면 돼요?"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던 민재는 6시간을 내리 작업해 결국 영상 한 편을 만들어 냈습니다.



민재가 만든 첫 영상 - 처음 다뤄보는 편집 프로그램이지만 자막과 노래 넣기, 속도 조절, 외부 소스 활용 등 다양한 편집 기술을 활용했음.




"계속 이런 다면 앞으로는 스스에 올 수 없을 거예요."


민재는 매주 토요일마다 스스에 오는 고정 스스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민재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영상 편집에 더 힘을 쏟기를 기대했는데 민재는 계속 게임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매니저의 눈을 피해 게임을 길게 하거나 영상 편집 화면을 띄웠다가 내렸다가 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렸죠.


"민재님, 스스는 작업하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했죠. 작업하는 친구들이 와서 게임만 계속하는 민재님 모습을 보면 PC방이라 오해할 수도 있어요. 앞으로도 이런 다면 예약을 받지 않거나 태블릿을 빌려주지 않을 거예요."


사실 만 매니저도 게임에 미쳐 있던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시절 스타크래프트 동네 대회에서 준우승도 해봤고, 바람의나라에서는 도적과 주술사 지존도 키워 봤습니다. 하루 10시간씩 게임으로 밤낮을 지새우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왜 민재가 게임에 목말라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죠.


게임 안에서는 날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광활한 맵을 맘껏 뛰어다닐 수도 있고, 험비를 몰아볼 수도 있죠.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게임이 얼마나 충족시켜 주는지를 떠올려 봅니다. 게임 실력은 나날이 늘고 캐릭터는 강해지는데 세상에서의 나는 아무래도 꾀죄죄합니다. 레벨이 오르면 자존감도 차오릅니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라도 게임은 중요하죠.


하지만 이해하기에 오히려 너머에 더 넓은 세계와 다양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만 매니저에게는 그런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스스가 그런 긍정적인 자극의 공간일 수 있을까요?



민재의 만들기 -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아이템에서부터 시작한 만들기




"만들기도 재밌네요. 게임하는 것보다 더 재밌어요."


어느 날 민재는 오늘은 만들기를 하겠다며 좋아하는 게임에 나오는 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눈치를 줬나' 싶어 지켜보니 만들기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형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채색도 하고 칼집까지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2주 동안 칼 만들기에 집중했습니다. 하루는 포켓몬과 포켓볼을 만들어 보겠다며 유튜브를 한참 뒤지기도 했죠.


영화에도 빠져 들었습니다. 스스에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엄선된 콘텐츠가 200편가량 있습니다. 민재는 스스 콘텐츠의 목록을 쭉 훑어보고 이전에 한번 재밌게 봤던 작품을 다시 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본 감상을 적어달라고 요청하니 '재미있었다' 밖에 써주지 않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있지 않을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온라인으로 열린 영화 마케터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민재가 참가했습니다. 내용이 다소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영화라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만난 제3의 어른은 민재 안에 찌릿한 스파크를 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웹툰 <여중생 A> 에 나온 대사. 중학생 시절 이 작품을 읽었다면 얼마나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글/그림: 허5파6)



한 번은 민재와 대화를 나누다 최근 '여중생 A' 웹툰을 무척 재밌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계속 봤다는 민재의 말에 만 매니저도 내용이 궁금해 한달음에 다 읽었습니다(스스에서 볼 수 있어요).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지루한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게임에서 그나마 위로를 얻는 주인공 장미래의 이야기. 자신을 옥죄는 가족과 학교에서 벗어나 게임 세계를 넘어 새로운 만남과 도전을 통해 점차 자존감을 찾아갑니다. 결국 자기가 하고 싶었던 작가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민재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던 것일까요?

 

누구에게나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리는 시기는 있습니다. 스스에 오는 아이들 중에도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있죠. 다만, 여중생 A의 장미래처럼 너머를 보는 힘은 모두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스에서 두리번거리고 머뭇거려 볼까요? 나를 깨워줄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하고 작업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합니다. 제3의 어른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길에 들어설지도 몰라요. 만 매니저는 스스를 그런 긍정적인 자극으로 가득 채워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또 한 명의 스스러 이야기를 들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 매니저 드림.





작업 중인 민재 - 제일 잘한 플레이가 아니라 재밌게 죽은 영상을 고르는 감각. 유튜브는 일단 재미죠.







스토리스튜디오가 궁금하다면?


최신 소식: https://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만 매니저 레터. 1]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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