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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Aug 18. 2019

그리스에서의 새해

새해첫날의 미역떡국

영화, 그리고 또 영화

 이탈리아 여행, 크리스마스 파티, 메테오라 여행까지. 바쁜 일정이 지나가고 좀 여유로워졌다. 유럽까지 온 김에 어디 좀 더 나가야 하나 싶다가도, 며칠간 여유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기엔 심심해서 언니가 출근한 사이에 청소도 하고 글도 쓰고, 게임도 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엔 언니 추천으로 세얼간이를 봤다. 어떻게 이걸 안봤냐며 막무가내로 언니가 영화를 틀어줘서였다. 그렇게 보게 된 몇 가지 영화들은 신선한 자극을 줬다. 영화는 공부를 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영화 하나를 보고나니 더 많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스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해서 외국 영화를 위주로 찾아 봤다. 물론 영어 자막은 필수로! 세얼간이, 피케이, 포레스트검프, 알라딘1, 알라딘2, 업까지 다양한 영화를 봤다. 주로 애니메이션이긴 했지만 말이다. 몇 년간 수험 공부를 한다고 이런 것들을 많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스에서의 새해

 2017년의 마지막 날도 비슷했다. 집에서 영화를 보고, 청소를 하고, 빈둥대다가 저녁까지 먹고서야 집을 나섰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니 또 아크로폴리스다. 언니는 아테네에 온 첫날, 우리에게 여기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바가 있다고 했었다. 그 말이 생각나 거기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 루프탑 자리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만 받는다고 한다. 그 대신 안내된 자리는 전망이 그렇게 좋지 않고,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내부 공기가 좋지 않았다. 가까운 다른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새해를 맞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아크로폴리스 근처 레스토랑들의 테이블도 거의 만석이다. 자리를 잡고 칵테일 주문을 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칵테일이 나오는 속도도 역시 느리다. 하지만 급한 건 없으니 여유 있게 기다렸다. 그렇게 늦게 나온 칵테일을 다 먹고도 2018년까진 1시간이 넘게 남았었으니 말이다. 약간 쌀쌀한 것 빼고는 다 괜찮은데, 너무 졸려웠다. 꾸벅꾸벅 졸았다.

 2018년이 되기 몇 초 전, 사람들이 그리스어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5, 4, 3, 2, 1! 폭죽이 터진다.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맞는 새해다. 2018년은 더 행복하고 감사한 한해가 되기를 빌었다.


덜컹덜컹, 새해 첫날의 택시

 레스토랑에서는 계산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레스토랑을 나와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신타그마 쪽으로 쭉 걸었다. 원래 아크로폴리스 근처까지 1시간 가까이 걸어서 이동했었던지라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딜가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새벽, 택시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무작정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신타그마 광장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를 잡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공식적인 야간 할증에, 비공식적인 새해 할증까지 어마무시한 가격이 나올까 걱정이 됐다.

 그러다 겨우 잡은 택시. 새해 첫날의 택시는 연식이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차였다. 거기에 스피드가 최우선인 것 같은 운전기사님의 아슬아슬한 주행. 덜컹덜컹- 야간에 아테네 시내를 질주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집에 이동할 수 있었고, 가격도 5유로만 나왔다. 와우! 야간할증에 새해 첫날인 걸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했던 택시기사님. 새해복 많이 받으시기를.


미역떡

 새해 첫날, 미역떡국을 끓였다. 얼마 전 아시안마켓에서 떡국을 끓일 떡을 사오긴 했는데 국물을 낼 재료가 마땅히 없었다. 아쉬운 대로 미역국을 끓이고 반을 덜어 떡을 넣기로 했다. 소고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선 매번 그냥 미역만 넣어 간장과 소금, 참기름, 마늘 등으로 맛을 내곤 했다. 감칠맛이 아쉬워 다시다를 살짝 넣고, 떡과 만두를 넣어 함께 끓이니 나름 그럴듯한 미역떡국이 완성되었다. 매일 늦게까지 잠을 자는 사촌동생을 깨우고, 언니를 깨워 다함께 미역떡국을 먹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거야, 두 살 먹고 싶으면 두그릇 먹어." 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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