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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Jul 31. 2019

건축에서 유목하다.

마음껏 산책하라. 건축 안에서.

안도타다오의 명화의 정원 _ 건축의 탄생에서



얼마 전 안도 타다오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하려고 압구정에 있는 약속 장소에 나가고 있었다. 늦지 않으려고 20분 일찍 압구정역에 도착했지만 내린 그곳은 내가 알던 곳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약속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3호선 압구정역이 아닌 분당선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10년 만에 간 압구정이어서 압구정 로데오역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굉장히 당황했다. 검색해보니 잘못 내린 곳에서 압구정역까지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10분 남짓. 택시를 부르는 시간에 차라리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약속 장소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은 내가 걸어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해는 그들 뒤에서 붉게 내려앉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 멋진 옷을 걸치고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당당하게 착착 거리를 걷는 모습들 사이에서 석양이라니. 그것은 후광이었고, 거리는 거대한 패션쇼장이었다. 난 눈이 부셨다. 장소와 빛이 그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때는 19세기. 장소는 파리의 어느 아케이드. 산업혁명으로 빽빽이 밀집된 도시에는 돈이 많은 멋쟁이(dandy)들과 게으름뱅이(flaneur)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멋진 옷에 강아지를 끌고 온 동네를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는 게 그들의 목적이라고 시작하는 책이 있다. 이 내용은 렘 콜하스 '광기의 뉴욕 Delirious New York'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콜하스는 들뢰즈가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라'라고 이야기한 노마드(nomad)를 자신의 건축에서 풀어내고 있다.

건축의 탄생 중 렘 콜하스 편에서
건축의 탄생 중 렘 콜하스 편에서

그는 건축 안에서 지속해서 돌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이 암스테르담의 '쿤스트할'과 시애틀의 '중앙도서관'이다. 보통 우리는 산책을 할 때 목적지를 두지 않는다. 산책 자체가 목적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이것을 건축 안에서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건축적 산책로'를 만들었고, 거기다가 콜하스는 밀집 사회의 기본 욕망인 과시욕을 덧붙여 그만의 '건축적 산책로'를 다시 만들었다. 안도 타다오 역시 '건축적 산책로'를 자주 사용했다. 콜하스가 과시를 위한 산책이었다면, 안도는 사색을 위한 산책이었다. 그는 동양 특유의 차경 수법으로 만들어진 공간 안을 걸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한 건축을 만들어 냈다. 제주도의 '본태박물관'과 교토의 '명화의 정원'이 대표적이다.



하루는 궁금한 게 있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왕좌의 게임에 대한 글이 있어 뭐에 홀린 듯 클릭했다. 한참을 보다가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심리학에 대한 글이 있어 다시 옮겨 탔다. 읽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해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 흔히들 이렇게 길을 잃고 방황을 한다. 자기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잊어버린 채 쇼핑몰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거나, 살색이 난무한 사이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고 본의 아니게 후방을 경계하게 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이런 현상은 온라인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후방을 경계하는 현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길을 걷다 보면 더 빨리 가기 위해 건물을 가로지르거나 지름길을 통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건물의 1층은 필로티로 구성된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행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을 자극한다. 그래서 상점을 지나치다 보면 상품에 현혹되어 오히려 가던 길의 시간이 짧아지기는커녕 더욱 길어져 가던 목적지의 도착 시간을 늦추고 만다.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모든 곳에 형성된 자극 점은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이런 방황하는 행동들은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심리적인 것을 이용해 지어진 것이 현대사회의 구천이라고 불리는 백화점과 같은 쇼핑몰이다.



돌아다니는 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유목은 본능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지구력이 뛰어나 살길을 찾아 유목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행동 패턴이 건축에서도 나타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여행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하니 반박할 수도 없다. 자신을 보여주려고 하는 과시도,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사색도 유목하는 습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나쁜 액운이라고 말하는 역마살(驛馬煞)을 면면히 살펴보면 유목하는 인간 본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는 그 의미를 바꿔 죽는다는 의미의 살(煞)을 산다의 생(生)으로 바꿔 쓰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내가 매번 여행 갈 때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74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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