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좋지 않았다. 과정은 좋은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 꽃밭에서 여인과 찍은 사진 말이다. 문제는 단 하나, 나. 커다란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머리는 바람을 맞아 아햏햏. 청춘 미녀와 아재 야수. 어느덧 사진으로 내 얼굴 보기 두려운 나이가 됐다. 김사장과 김차장은 아내에게 보낸다며 협박을 시작했다. 야수 데리고 사는 천사에게 몹쓸 짓을 할 것인가, 나쁜 놈들!
한바탕 웃으며 식당에 갔다. 김사장과 하노이에서 함께하는 마지막 저녁. 일이 많은 그는 나보다 하루 먼저 한국행. 김차장은 장풍을 쏘듯 딤섬을 주문했고, 디너 맥주와 함께 캬아! 식당에 사람이 아주 많고, 시끄러운 상황에도, 남자 셋은 완전히 우리에 집중했다. 김사장이 말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이 비웠어.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우리는 “올~.”
김차장이 “혼자서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 묻자, 김사장은 재빨리 “아니.” 둘은 떠나고, 나만 홀로 방에 남았다. 지금껏 친구들과 함께 있어 몰랐는데, 하노이 밤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열심히 여행한 탓에 남은 힘이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 보는 것도, 음악 듣는 것도 힘들었다. 누군가 연락을 해볼까 하는데, 한국은 이미 잠들어있다. 문득, 외로움이 찾아왔다.
지난해 김차장이 한국에 왔을 때, L과 셋이서 모인 적이 있다. 그는 어렵게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얘기하며, 때때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책 읽고, 음악 들어. 운동도 좀 하고. 아, 낮에는 햇빛도 좀 쐬고 그래.’라고 했다. 쉽게 내뱉어진 말, 진심을 담기는 했지만, 그 깊이를 다 알지 못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카톡이 왔다. ‘와이셔츠 좀 널어줘.’
나는 누구? 우리 집 빨래꾼! 친구 잘 입으라고, 있는 힘껏 털어 널었다. 할 일이 생겨 좋았고, 그를 위한 일이라 기뻤다. 참회의 빨래 널기. 오늘 밤 김차장에게 ‘왔어? 잘 자!’란 말을 꼭 해야지. 그런데 눈이 슬슬 감긴다. 비몽사몽간에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 죽여 걷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김사장의 코골이 대신에 무서운 악몽이 찾아왔다.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는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투성이다. 가끔은 내 마음도 내 마음처럼 안 돼 서글플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