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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May 18. 2021

잘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저항의 언동 1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기도 하고요. 바로 저만이 하고 있는 ‘사소한 저항의 언동’입니다. 음, ‘저항’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그렇게 해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몇 번의 주저함과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요?’ 또는 ‘잘 있었어?’라고 묻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기에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닐 수도 있겠고요, 친하지만 상황이 되지 않아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사이도 있을 겁니다. 혹은 어쩌다가 길에서 마주친 지인에게 건네는 당연한 인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잘 지내요?     


근황을 잘 알 수 없는 사이일 터이니, 요즘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할 수 있으니 뭐, 잘 지내 보여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그냥 쉽게 지나가는 인사치레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뭔가 딱히 건넬 만한 말은 없고 인사는 해야겠는데 말이지요. 그럴 때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라고 안부를 묻는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저항까지 한단 말인가요?      


사실 오랜만에 보는 사이거나,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거나 미팅이나 행사에 갔다가 만나는 경우 ‘잘 지내요?’라고 묻는 것은 ‘안녕하세요.’의 의미와 흡사합니다. 빠른 인사법에 가깝지요. 그래서 ‘잘 지내고 있느냐’에 대한 무게는 가볍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부 인사를 받은 상대방 역시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 전날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크게 상관없이 며칠 전 친구와 다툼이 있었는가와 상관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잘 지냅니다.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묻는 말은 정말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고 싶다기보다 안부를 묻는 상대방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 거나 ‘잘 지내고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고요. 그리고 이 마음은 무척 소중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잘 지내고 있다.’고 응답하기를 기대하며 묻는 물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사회적인 약속처럼 말이에요.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와 상관없이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저는 자동반사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어요. 상대방이 그 이상의 답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저 역시 저의 시시콜콜한 어려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잘 지내냐는 인사는 빠르게 흘러가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아프고 쉬게 되면서 비뚤어진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잘 못 지내고 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하기 싫다고요. 그래서 대답해 보았어요, 아니 나 잘 못 지내고 있어. 요즘 힘들어, 라고요.      


어떤 사람은 당황했습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지요. 그러면 저는 재빨리 답을 조금 수정해 그 사람을 안심시킵니다. 상대방은 그제야 기대했던 대답이 충족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당황하면서도 왜,라고 물어봅니다.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저의 근황을 들어줄 시간과 마음을 내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저 역시 어떻게 지내고 있었냐고 물어보면 그도 자신의 요즘을 들려줍니다. 우리의 인사는 조금 느리게 흘렀습니다.       


저는 그즈음부터 잘 지내고 있냐는 말을 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잘 지내기를 어물쩍 믿어버리거나 의미가 빈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난 어떤 인사를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다 떠올린 것이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는 인사였어요. 하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요? 하지만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것에는 저의 판단이 들어 있지 않아요. 상대방에게 온전히 자신의 안녕을 물을 수 있도록 발언의 기회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만나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지요, 어떻게 지내냐고 말입니다.      


물론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성에 따라 대답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상황과 마음이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지요. 많은 분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무척 다행이고 반가운 일이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잠시 머뭇거리면서도 자신의 근황을 얘기해 줍니다. 잘 지내고 있는 요즘, 조금 어렵게 지내고 있는 근황이 뒤섞인 자신의 일상을 말이지요. 그럼 자연스럽게 대화는 이어집니다. 혹 길게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인사는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길어집니다.      


아, 제가 ‘사소한 저항’이라는 제목을 달았지요. 저의 저항은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사람에게 잘 못 지내고 있다고 대답하는 거예요. 생각보다 그리 쉽게, 빠르게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주저하면서 얘기해요. 물론 제가 온종일 어렵고 힘들게 지내지는 않습니다. 일상이란 ‘잘’ 지내고 ‘잘 못’ 지내는 그 어드메의 지점에서 머물며 시시각각 변동하니까요. 저는 그 진동의 추이를 조금 더 드러내고 싶었어요, 물론 상대방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냥 뻔한 말, 누군가가 기대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전의 저였다면 저도 당황했을 겁니다. 당연스레 ‘잘 지내요?’라고 물었는데 상대방이 ‘아뇨, 저 요즘 잘 못 지내는 것 같아요. 왜냐면 말이죠....’라고 대화를 이어간다고 하면 적잖이 놀랬을 겁니다. 어, 나는 이걸 기대하고 물었던 게 아닌데.      


지금도 역시 저는 잘 지내냐는 말 대신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다 가끔 습관처럼 잘 지내고 있냐는 인사가 무의식에서 나올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상대방과의 관계성을 생각해 어떨 때는 잘 지내고 있다고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하지만, 그냥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싫어서 ‘잘 지낼 때도 있고 못 지낼 때도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그럴 때면 누군가는 ‘맞아, 맞아요. 저도 그래요.’라고 대답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안녕’이란 뜻은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손쉽게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도 실은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생각해 보니,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자주 반복적으로 하는 인사말이다 보니 그 의미를 종종 잊습니다. 매번 의미를 진하게 찾아 오랜 시간 인사를 나눌 수는 없지만 매번 빠르게 지나가듯 건네는 인사말에 약간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글을 다 읽고 보니, 에이 이게 뭐 저항이야,라고 싶은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흘러가는 대화 속에 찰나처럼 만들어지는 빈 공간을 만들었던 순간이 서로의 안부를 조금 더 느리고 진하게 물었던 순간으로 번지는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그 변화에 멋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글을 쓰고 다시 읽어 보니, 제가 하게 된 저항의 언동이 '잘 못 지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진 않았나 싶네요. 어떤 사람은 정말 잘 지내고 있어서 잘 지낸다고 얘기했는데도 말이지요.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 버리는 인사를 붙잡고 싶었던 것이고요. 꼭 잘 지낼 필요도 없다고, 그것이 애써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님을 말하고 싶었으니까요.


다음 주 오늘은 두 번째 ‘사소한 저항의 언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건강하세요.’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고민의 지점은 남아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저의 생각만이 가득했는데 다음 이야기는 다른 이들이 먼저 시작한 고민도 나눌 것을 약속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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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Trail "Kings of Convenience"

* 편리왕들의 12년 만의 완전체 곡 입니다. 흑흑. 어떻게 지냈나요,를 꼭 물어보고 싶은 분들입니다. 6월이면 앨범을 발매한다고 하지요, 길게 기다린 보람이 빛을 발합니다 :) 동영상 재생은 어려우니, 곡 제목을 클릭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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