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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09. 2019

나에게 집중하며 저지른 실수

모든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수 없다.

얼마 전 누군가가 제게 그랬습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해주는 것들 얻어먹고 주워 입고 살 거냐고.. 부모님께 미안하지도 않으냐고.. 그 사람의 말대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거나 물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이런 특별한 날 부모님께 해 드리는 효도를 반의 반도 못하고 있다는 거죠. 본인은 곧 부모님 해외여행을 시켜드릴 거라며 월급이 채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제게 부모님 해외여행 한 번 시켜드릴 것을 권하더군요. 


이런 날만 되면 참으로 세상 못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잘 되고 나면.. 그때를 위한 유예기간.. 나이가 낼모레 마흔인데도 아직 벗어나지 못한 유예기간.. 못난 나를 원망하면서 오늘 그 친구의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체 난 언제까지 이러고 살 것인가를.. 그러면서 예전에 써 놓은 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열심히는 사는 것 같은데 대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인생.. 너무 답답해서 써놓은 말들.. 이 글에라도 생명을 주고 싶은 밤이군요.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아직은 너무도 못난 딸에게 괜찮다.. 말해주셔서..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0년 전에도 세상으로부터 도태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고, 지금도 그 두려움과 삶이 짓누르는 마음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이젠 자유롭게 청춘을 주장하기에도 민망한 나이가 된 나는 여전히 빈손으로 부모님 댁을 찾았다. 그리고 결혼으로 본가를 출가하기 전, 삶의 고민들로 무거워진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걸었던 천변을 10년 만에 다시 혼자 천천히 걸었다.     


돌아보면 한 순간도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10년 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멀어진 동료들의 뒷모습이 점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혼, 사기, 일관되지 않은 짤막한 커리어 이력들 그리고 그로 인한 우울증까지.. 생각해보면 인생의 교차로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빨간 신호에 어김없이 걸렸던 것 같다. 아니, 무질서하게 진로를 침해한 차량과 부딪히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나 난 여전히 앞을 향해 가고 있다. 핸들에서 손을 떼 진 않았는데, 과연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두 가지 찬이 전부인 단출한 식사를 하며 우연히 틀어놓은 TV 채널에 눈이 멈춘다. 청년 퇴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획일화되고 강압적인 조직문화를 거부한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 그 번뇌의 시간들을 딛고 일어선 성공스토리들.. 확실히 그들은 소위 ‘난 놈’들이었다. ‘1% 성공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범한 99%가 용기를 얻어 무작정 직장을 때려치우면 안 될 텐데..’ 이제는 공감을 넘어 무던해진 관찰자가 된 나는 까끌한 밥숟갈을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며 생각한다.     



10년 전의 나 또한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입사한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 그러나 ‘다들 왜 저렇게 살지?’ 싶은 사람들로 가득한 조직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퇴사를 실행하기까지 걸린 1년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조직의 일원들에게 일어난 과로사, 유산, 암 발생 등을 목격했고, 나 역시 새벽녘에 퇴근하여 잠드는 날이 거듭될수록 악몽으로 시달리는 밤들이 길어졌다. ‘그래도 견디면, 언젠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삶이 ‘인생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하게도 점점 더 난해해져 갔다. 늘 ‘모르겠다’라는 결론, 명쾌한 답도 없는 그 질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다.      


28세, 32세라는 1% 난 놈들의 성공스토리를 들으며 내일모레 마흔인 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럼 난 뭐, 인생 망친 건가? 살아봐라 이것들아, 인생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더냐.’ 첫 직장을 호기롭게 박차고 나와 불안한 미래에 숨죽여 떨었던 26세의 나를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이 마치 세상 가장 힘든 짐을 짊어진 사람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있어 그때의 사건은 단조로운 질서를 유지하며 책장에 꽂혀있는 책처럼 덩어리를 구성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큰 고통이 작은 통증을 집어삼켜 사람의 감각을 잠시 속이듯 인생을 이리저리 휘젓고 뒤흔든 지난 일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처음으로 방황하던 26세의 나, 멍청하게 눈뜨고 사기를 당한 32세의 나, 사랑에게 배신당해 쓰러진 34세의 나, 그밖에 수도 없이 무너지고 상처 받았던 모든 기억 속의 나에게 다가가 ‘그래도 괜찮아’라며 등을 쓸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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