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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an 31. 2019

부모를 타인으로 바라보는 시각

부모를 분리된 타인으로 볼 때 우리는 더 성장합니다.

가을이 저물 무렵 취재차 양재천을 찾았다.

해 질 녘에 환상적으로 물드는 핑크 뮬리와 가을 특유의 아름다움에 한껏 맘을 빼앗긴 채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장소를 이동하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몰래 찍은 도촬 컷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평화롭기도 하면서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들어 찰나를 급하게 카메라에 담고 계단을 내려왔었다.

포이동의 가을이라 이름 붙인 이 사진이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나서 생각이 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저 파란 고무 슬리퍼 때문일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일평생 희생밖에 모르고 글도 모르던 엄마가 서서히 치매와 유사하게 기억을 잃어간다. 그러나 가족을 위한 희생에 익숙해진 엄마는 그마저도 가족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병을 견디다 그만 일이 터지고 만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 아들 내 집으로 가다 혼자 길을 잃고 만 것.. 그 길로 엄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아버지와 자식들은 다방면으로 엄마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그렇게 시간만 흐른다. 그 과정 속에서 엄마의 일생을 이해하고 돌아보게 되는 그런 내용.. 희생의 대명사로 불리던 '어머니'들의 대표적인, 어찌 보면 조금은 진부한 소재거리.. 그러나 읽다 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어머니와 얽힌 사연으로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내용.. 나 역시 한동안 엄마가 떠올랐고, 엄마와 아옹다옹할 수 있는 시간이 갑자기 정지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엄마.. 나에게 무한정 베풀어 주는 존재.. 무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존재들.. 그들이 가족들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민 존재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



엄마를 결국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엄마는 더 이상 현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사람 찾는 전단지를 붙이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그들의 공통된 증언..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어요. 얼마나 걸었는지 엄지 발등이 뼈가 드러나도록 파여있었고 고름도 상당했지요. 거지꼴이었어요."


엄마는 기억이 모두 사라진 그때 자신이 일평생 가장 많이 신었던 파란 슬리퍼를 신고 살면서 자식들과 좋은 기억이 있던 곳을 찾아서 모두 걸어 다니느라 그 지경이 된 것 같다. 몸을 쓰느라 막 신는 파란 슬리퍼가 아닌, 좀 더 편한 신발을 자주 신었더라면 발등에 처참한 상처는 나지 않았을 텐데.. 


무언의 희생을 강요한 가족들이 엄마에게 준 상처가 바로 그 발등의 상처가 아닐까.. 싶어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나 보다. 소설책을 덮었는데도 계속 그 파란 슬리퍼의 환영이 머리에 선한 이유가..



엄마의 삶은 퍽 고단했던 듯싶다. 

선산에 묻혀 죽어서도 또 가족들과 함께 있기보다 자신의 집으로 가서 쉬겠다고 하는 엄마다.

행복으로 위장된 그 세월이 엄마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 가늠이 되어 가슴이 아렸다.


아들, 딸들은 말했다. 

엄마의 일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픈 희생으로만 점철되진 않았을 거라고..

엄마는 또 엄마 나름의 인생이 있으니까.. 인생의 모든 지점이 희생으로 균일하게 덮여있진 않을 것이다.

엄마의 인생이 온통 희생이어서 아플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아마 우리 자식들의 원죄와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책 뒤편 가수 이적의 서평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소중한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던 일상에 경종을 울린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일기쓰 듯, 물 흐른 듯 화자가 바뀌며 전개되는 신경숙의 문장력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

좋은 소설에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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