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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28. 2018

어른, 그 또한 나약한 존재

완벽한 어른이 존재할까?


옆집 놈은 어른도 없는 집에 우악스러운 신발 자국을 남기며 성큼 쳐들어왔다.      


“현우 얼굴 저렇게 만든 놈이 누구야!!!”     


두려움에 고개를 떨궜던 6살 꼬마는 그놈의 무자비한 손에 속수무책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는 벽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세 번 들린다.      


“쾅! 쾅! 쾅!”     


흡사 농구공을 벽에 치대듯이, 자비 없는 어른의 손아귀가 6살 꼬마의 조그만 머리를 벽으로 힘껏 밀쳐냈다. 채 말릴 틈도 없이 이루어진 한낮의 아동학대 현장. 옆집 놈은 그제야 화가 조금 풀렸는지 어안이 벙벙해진 아이를 세워두고 그대로 옆집으로 돌아갔다.     

휑한 마당에 아이들만 남겨졌다.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6살 꼬마와 두려움에 그대로 경직되어 버린 그의 누이 8살 꼬마. 


‘아이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졸렬한 미완성품’ 

마당에 남겨진 8살 아이의 뇌리에 처음으로 어른이란 존재가 그렇게 각인되었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이 말하고 있는 어른의 정의.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때 그 6살 꼬마는 현우에게 단지 맛있는 과자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아직 키가 작았던 꼬마는 엄마가 높이 올려놓은 과자 상자에 손을 뻗었고 주춤주춤 앞으로 끌려오던 과자 상자가 급기야는 현우의 얼굴을 스치며 얕은 찰과상을 낸 것이다. 자기 자식 얼굴에 티끌만 한 상처가 가슴이 아픈 게 부모라지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자라지도 않은 6살 꼬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그것은 너무도 과한 형벌이었다. 


이제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그 남매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고작 불쾌한 기억이 아닌,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내내 지우지 못할 인간 내면의 악마를 보여준 그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의해 어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다 자라 성인이 되고, 더 나이를 먹어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되면서 어른의 정의는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갔다. 힘든 어떤 날,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내 마음 상처보다 주변의 이목을, 사회적 시선을 더 신경 써야 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그때.. 스스로를 어른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어른의 정의가 그런 거라면 굳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스타 역사 강사 설민석은 어른이란 다음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첫째,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혜안. 

둘째, 타인을 이해하는 역지사지. 

셋째,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


정확히 점수를 매겨 측정할 수 없는 조건들이지만 과연 나는 이 정의에 비추어 어른이라 불릴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불과 단 몇 초만에 '아니오'라는 결과가 양심에 선명하게 새겨짐을 느낀다. 나에게 혜안이 있었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고, 역지사지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짐을 지워야 했던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며, 염치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악연으로 인연들을 떠나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 끝에 또 하나의 염치없는 생각이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나만 그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이런 기준으로 따지면 완벽한 어른이 어디 있겠어?' 


확실히 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출처 : tvN홈페이지


자주 보는 TV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동훈 캐릭터. 배우 이선균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양심적이고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으로 사는 40대 가장. 3형제 중 유일하게 대기업 부장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대고, 훌륭한 인성으로 회사에서도 따르는 부하직원이 많은 그다. 여느 날처럼 드라마가 끝나고 시청자 게시판을 들여다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나도 박동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남긴 후기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엔 그가 이상적인 어른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설민석 강사의 정의로도, 자신의 민낯을 대면할 수 있어야 어른이라고 정의한 철학자 강신주의 정의로도, 표준대국어사전의 정의로도 박동훈 캐릭터는 어른의 정의에 대어 큰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완벽한 어른의 껍데기 속에서 그의 외로운 본심이 드러났던 어떤 날,


"현실이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인 줄 아니?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벌 다 받고 가면 되겠지 뭐.."


주위로부터 강요되는 어른의 껍데기를 버거워하며 휘청이는 그를 보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 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나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옆집 놈이 떠나고, 멍하게 서있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8살 누이는 엉엉 울었다. 8살 꼬마가 어른의 무자비한 폭력을 어찌 몸으로 막아낼 수 있었겠냐마는.. 8살 누이는 부모의 부재중에 일어난 일은 자신의 책임이란 생각이 들어 동생에게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지금도 되기 힘든 어른의 모습을 8살 꼬마에게서 어렴풋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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