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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ug 12. 2019

때론, 느리게 걷는 내가 밉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긍정하는 엄마의 존재

이제 그만 일어나라 재촉이라도 하듯 늦은 아침 고요를 깨는 택배 아저씨의 문 두드림 소리. 집 안에 있으면서도 일부러 인기척을 죽이고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린다. 차가 마당을 떠나는 어렴풋한 소리를 인지하고 나서야 잠옷을 대충 여미고 현관 밖을 빼꼼히 내다보았다. 라면박스보다 조금 더 작은 하얀 스티로폼 상자. 냉장고의 차가운 온도를 갈망하는 그 하얀 상자가 모두가 출근해 적막해진 복도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콜라겐 덩어리 피부에 좋와요-

-처음 해봐서 맛이 없네. 하나씩 꺼내서 데펴먹어요-


봉지마다 주둥이를 야무지게 꽁꽁 싸서 박스 안에 차곡하게 정돈해 넣은 엄마표 반찬들. 하나씩 봉지를 풀어 용기에 담을 때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작은 메모장을 발견하게 된다. 마흔이 다되도록 여적 꿈을 좇으며 사는 못난 딸 그래도 먹고 힘내라고, 철자도 다 틀려가며 한 글자씩 눌러쓴 그것들을 보다가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는 나. 나는 정말 못난 딸이다.


최근 몇 개월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왜 난 여적 이모양일까로 시작해 마음 상태가 차츰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어린날의 가난한 가정환경에까지 그 화살이 돌아가고 나면 그제야 바닥을 찍고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하는 우울감. 이젠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마치 여름날 장마철이 돌아오듯 그건 내 인생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이제 곧 시작되겠거니 했다가 언젠가 곧 떠나가겠지 생각하고 마는 그런 성격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울함이 몰려오면 덩달아 함께 떨어지는 식욕 때문에 근 몇 달 동안 배불리 무언가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늘 허기진 육체는 정신의 빠릿함을 앗아갔고 구멍이 숭숭 난 허약한 정신세계는 다시 힘없는 육체를 공격해댔다. 마음이 아플 때 제대로 챙기지 못한 식사는 그렇게 우울증의 늪속으로 나를 깊이깊이 밀어 넣었다. 


열무김치, 꼴뚜기 볶음, 전복장아찌 그리고 박스의 여백을 꼼꼼히 채워 넣은 봉지 김까지, 반찬들을 용기에 옮겨 담고 100리터 작은 냉장고에 차곡히 쟁여 넣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열무김치 한 조각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텁텁한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덜 익었는지 조금은 씁쓰름한 풋내가 났다. 그러나 씹으면 씹을수록 열무잎이 주홍빛으로 머금고 있던 담백하고 깔끔한 양념물이 혀를 감돌았다. 싱그러운 풋내와 깔끔하게 퍼지는 매운맛이 지난 몇 달 동안 잠자던 식욕을 가만히 건드리기 시작했다. 푸르디푸른 열무 잎사귀, 그 위에 루비처럼 간간히 박힌 고춧가루들, 식욕을 자극하는 주홍빛 국물까지... 미각과 후각, 시각으로 그것을 충분히 대면하고 나니 더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냉동실에 소분하여 넣어놓은 쌀밥을 해동하고 급하게 계란 하나를 뚝딱 부쳐내어 양푼에 한데 넣고 참기름을 휘휘 둘렀다. 음식을 앞에 놓고 '먹고 싶다'는 정확하고 분명한 생각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벌겋게 잘 비벼진 열무비빔밥을 숟가락 가득 퍼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한 숟갈, 두 숟갈 목적의식이 분명한 숟가락질을 거듭하면서 문득 '잘 살아야겠다' 하는 희미한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몰려와 볼이 터져라 우걱거리던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선 결국 굵은 빗방울을 '쏴아'하고 쏟아내었다. 타닥타닥 창에 부딪치다 이내 창틀을 넘어서고 마는 빗물. 열중하던 숟가락질을 멈추고 이미 시야가 부예진 창틀로 다가섰다. 오랜만에 참으로 시원하게 쏟아붓는 여름 장맛비. 창문을 닫고 한동안 거기에 서서 거친 빗줄기가 유리창에 요란하게 그려대는 형체 모를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희미하게 석유냄새가 나는 듯했다. 비 오는 날 처마 아래서 부침개를 만들어 내던 엄마의 석유곤로, 바로 그 냄새인 것 같다. 2019년, 내가 사는 빌라 안에서 절대 날 리 없는 석유곤로 냄새.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된 후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희미하게 풍겨오는 그 냄새를 맡곤 했었다. 


"엄마 아빠 없는 동안 우리 큰딸 고생 많았지? 

막 부쳐낸 고소한 부추전을 조금 떼서 호호 불어 내 입속으로 넣어주며 엄마는 말했다. 추적추적 처마 끝에서 떨어지던 빗소리와 콩기름에 고소하게 익어가던 부침개 지지는 소리, 온 힘을 다해 화력을 쏟아내던 석유곤로의 희미한 그 석유냄새. 부모님과 모처럼만의 따뜻한 휴일을 완성하던 아름다운 소리와 냄새 그리고 추억들. 비 오는 날은 트럭으로 물건을 떼 장사하는 부모님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미 장사를 나가신 부모님의 빈자리가 휑하니 더욱 크게 느껴지곤 했다. 나 역시 아직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나이였지만 어린 두 동생을 챙기며 어설픈 부모역할로 하루를 보냈었다. 밤이 돼서야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그렇게 힘든 몸을 뉘어 겨우 쪽잠을 자고 다시 물건을 떼러 새벽녘 푸른 박명 속에 집을 나서던 뒷모습이 기억 속에서 아련하게 떠올랐다. 다섯 식구가 함께 누워 자던 단칸방, 부모님 나가시는 기척에 눈을 뜨면 이부자리가 가지런히 정돈된 그 빈 공간에 상보를 덮은 밥상이 놓여있었다. 단출한 몇 가지 찬과 일을 나가는 바쁜 와중에도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밥상 편지가 그 안에 단정히 자리하고 있었다.


-밥은 밥통에, 부뚜막에 두부조림 올려놔써요. 사랑해요, 우리 딸-


연탄보일러 부뚜막에 놓인 세월 묻은 양은냄비, 아귀도 잘 맞지 않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큼직하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조린 두부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었다. 자박하게 온기를 머금은 국물은 아이들 입맛에 맞게 맵지 않았다. 고운 고춧가루 양념을 입고 큰딸이 잠에서 깰 때까지 부뚜막에서 조용히 맛을 더해갔을 엄마표 두부조림. 사실 두부조림은 장사를 나가는 엄마가 사흘이 멀다 하고 자주 준비한 반찬이었다. 적당히 물릴 법도 한데 우리 삼 남매는 부모가 자리를 비운 휑한 집에 모여 앉아 아침밥상에 놓인 그 두부조림을 매번 참 맛있게 먹어치웠다. 두부조림의 맛보다는 몇 시간 전 집을 나선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였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모두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부침개를 지져내던 석유곤로 냄새와 부뚜막에서 뜨끈하게 잠자던 두부조림까지 한바탕 추억을 소환한 비 오는 어느 날 오후. 반찬통마다 붙어있던 엄마의 짧은 편지들을 한데 모았다. 연분홍색 메모지에 볼펜으로 눌러쓴 여섯 개의 작은 편지들. 중간중간 철자가 틀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더 아렸던 엄마의 사랑.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눈으로 훑어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가슴을 스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배운 것 없다고 남에게 무시당하며 세 아이를 길러내야 했던 그 삶이... 호의호식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부족함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그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 습관처럼 무너져 아파했던 요 몇 개월의 못난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보내주신 반찬 잘 받았어요. 열무김치가 좀 덜 익었는데 아주 맛있네. 비 오니까 엄마가 어릴 때 해주던 두부조림도 생각나네. 다음에 집에 놀러 가면 나 그거 해줘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딸이 오랜만에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일까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도 한껏 들떠있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난 마흔의 딸은 결국 그 시절의 아이가 되어 다시 반갑게 엄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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