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냐, 이상이냐, 끝도 없이 되풀이 되는 고민
간혹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돼요? 현실에 미련을 버리고 나도 좀 자유롭고 싶은데 막상 실행하려니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곧 다시 현실로 돌아와요. 꿈은 저 멀리 던져둔 채.."
글쎄..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꿈을 좇는 대신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더 치열하게 현실적인 것들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얼마 전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 전화가 왔다.
하지만 기회를 포기하겠단 말을 담당자에게 건넸다.
합격통보를 받기 전부터 고민을 거듭했다. 혹시 합격됐다는 연락이 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영세한 협동조합.. 대표를 제외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이젠 무엇이든 사람들과 섞여서 사회로 나갈 때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한 자리였다.
글을 쓰며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고 4년을 은둔했다.
점점 현실과 따로 노는 나만의 이상한 세계를 구축하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이제 그만 사회에 섞여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뽑아줄 만한 곳에 문을 두드렸다.
지원한 단체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내게 내밀어 준 그들의 손을 거절해 버린 건 정말 죄송한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던 일이 아니었다.
적당히 이유를 둘러대고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눈물이 났다.
'철없는 인간.. 여유를 부릴 처지도 아니면서 여전히 일을 가리고 있다니..'
나이를 마흔이나 먹고 여전히 위태한 줄 위에서 아슬하게 곡예를 하고 있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로 '글 나부랭이' 그것을 쓰기 위해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이에 걸맞은 돈과 사랑 따위의 것들을 포기하며 시간을 할애할 만큼 난 정말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가..
저려질 대로 시들하게 쩌든 귀차니즘을 혹시 예술성으로 착각하며 사는 바보가 아닌지 늘 의심의 눈초리로 스스로를 확인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해 있는데 이웃 블로거의 댓글 알림이 울렸다.
친구의 수도권 변두리 아파트가 6년 사이 5억이 올랐단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학군이 좋은 서울로 이사를 오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형편에 맞게 전세를 살아야 하는데 자가가 아닌 전세, 월세, LH 아파트를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전거지, 월거지, 엘사라고 부른단다. 서울로 이사를 오면 아이들이 전거지로 불릴까 걱정되어 이사를 고민 중이라는 내용이 거기에 담겨있었다.
꿈을 고민하고 같이 웃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일순간 거지로 전락했다. 아파트도 아닌 원룸에 사는 거지는 거지 축에도 끼지 못하려나..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어간다는 생각 뒤로 씁쓸한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다.
재능을 따라 꿈을 꾸고 성실히 근로한 대가로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건 찬사가 아니라 비현실 주의자나 한량이라는 꼬리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사는 게 지옥이다'라는 말 대신 '살아있어 정말 행복하다'라는 말로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순 없는 걸까.. 불로소득이란 잘빠진 세단을 타고 저만치 멀어져 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면서 열심히 견디며 달려온 내 수많은 발걸음들이 한꺼번에 무색해졌다. 견딜 수 없이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딱 한 번만 먹자고 숨겨둔 불안장애 약봉지를 뜯었다. 술이나 약.. 도무지 맨 정신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 그리고 사람들..
그 잘빠진 세단을 타고 자본이 깔아주는 탄탄대로를 씽씽 달리는 사람이 이런 글 따위를 볼리 없다.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릴 뿐인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마음이 헛헛한 사람, 정상적인 것이 바보 취급받는 이상한 현실에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또 우연히 이 세계를 만났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우선 한 가지 진실부터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나에게 또 이 세계와 부딪친 당신에게..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지극히 정상이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희소하게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정상적인 자신을, 열심히 달려온 자신을 주변과 비교하며 못났다 인식하는 자조의 마음부터 고쳐먹어야겠다. 자기 효능감.. 결국 난 잘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나 자신을 믿는 그 마음 하나에서 모든 가능성이 시작된다. 잘빠진 세단을 타든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부르짖든 어쨌거나.. 꿈이나 공유 등의 가치가 좀 더 값을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것이 선한 진리라면 이 혼란의 거품이 사그라들면서 결국 그 방향으로 흘러가겠지.. 우리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싶게 결론을 내기 힘든 글 줄기를 썼다 멈췄다 반복하며 이틀을 보내는 사이, 어제저녁엔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아버지뻘 되는 교수님은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몇 년 전 정년퇴임을 하셨다.
"자네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나?"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하고 있는 제자를 교수님은 늘 걱정하고 계셨다.
"좋아하는 글 쓰며 소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의 말이 내 말 허리를 붙잡고 바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교수님은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셨다.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나도 교수란 직업이 내가 원하던 인생은 아니었네. 젊은 시절, 글을 쓰고 싶었는데 가족도 생기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살아왔지. 지금이라도 꿈을 좀 펼치고 싶은데 사실 잘 안 돼.. 이젠 책을 봐도 이전처럼 감동이나 어떤 느낌이 없고 지병도 있어서 자유롭게 여행도 하지 못하지. 그래.. 젊어서 꿈을 좇아 산다는 건 아름다운 일인 것 같네. 자네가 부러워.."
인생은 유한하다. 가난한 자에게도, 그러나 부자에게도..
돈이나 꿈.. 어떤 것이 비교우위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선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