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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r 14. 2021

자본주의 주체는 돈이 아닌 인간이다.

돈이 정한 인생 방향, 과연 괜찮을까?

당신들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가?

노동시장에서 나는 얼마의 몸값에 거래되며, 행여 현재 그런 가치가 없더라도 얼마나 큰 자산이 될 가능성을 가진 원석인지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하루를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렇다 할 근사한 흐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결국 하루 동안 그대로 열려있던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렸다.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생계비보다도 어쩌면.. 채용시장에 혹은 사회에 내놓을 나를 정의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사람은 여러 종류로 나뉜다. 삶을 대하는 태도, 돈에 대한 집착 등 경계선을 하나씩 추가할수록 더 세분화된 구역 안에 유사한 존재들이 밀착하여 제법 비슷한 색깔을 낸다. 맹목적인 부(富)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 거기에 더해 비난받을 일도 서슴지 않는 어떤 이,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오로지 정신적인 어떤 것만 가치 있다 여기는 배고픈 자, 이도 저도 아닌 경계선 즈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반문하는 존재들.. 각기 다른 성질의 색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다이내믹하게 흐를 수 있는 원동력을 갖는다. 사람들은 성격이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색채를 어렴풋 가늠하며 비슷한 부류들에게서 나오는 안정감을 공유하고 그렇게 삶을 살아나간다.


하지만 종종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 있다. 결코 유사하지도, 섞여봤자 다른 아름다운 색채도 만들 수 없는 부류들끼리의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그렇다. 나 자신의 색깔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삶인데 짧은 시간 타인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사고는 인생에서 빈번히 일어나곤 한다.


반년이 넘도록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며 절절히 구애하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반신반의했는데 계속된 나의 차가운 태도와 무시에도 불구하고 구애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겨울에 시작된 구애가 폭우에도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그의 마음이 진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조심스레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전해온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엔 생각보다 큰 분쟁이 발생했고 위기의 순간에서 그는 정확한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도의적인 몇 마디 사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일이 경찰서로, 법원으로 굴러다녔다. 그 사람의 가공된 계획에 의해서.. 그와 나는 결혼에 각각 한 번씩 실패한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굳이 차이가 나는 것은 직업의 안정성과 자가주택의 소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사건의 프레임을 이렇게 짰다.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자신의 돈과 직업을 보고 의도적인 일을 벌였다'는것.. 그렇게 그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던 오랜 구애는 갑자기 나의 의도적인 접근으로 성격을 바꿨다. 증거도 없이 그가 주장하는 프레임에 각색된 고소장을 보던 날 나는 소름 끼치는 황당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와 똑같은 색깔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은 무혐의가 되고 되려 이후의 흐름은 내게 유리한 정황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의 세상에선 이런 사고가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상대적인 부에 밀리는 사람은 누구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쟁취한다. 따라서 가난한 자의 탐욕은 실로 엄청나다' 각색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고소장에 적어 내려 간 그는 사회의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가치관 속에 살아간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듯싶다. 사람의 가치가 철저히 돈으로 순위 매겨지는 자본주의의 냉정한 부작용 같은 관점. 자기 세계의 그 왜곡된 프레임으로 다른 세계에 사는 내 목을 옭아매려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틀렸다. 그리고 나는 이 사회를 채우고 있는 절대다수의 중간색이 무엇인지 궁금해 그 사건을 다시 소송에 부쳤다.


도저히 어떻게 해도 성실한 근로소득으론 부의 간격을 좀처럼 좁힐 수 없는 세상. 그래서 젊은 세대가 결혼도 출산도 미래도 포기하는 세상. 그리고 모두가 자신들처럼 돈의 힘에 속절없이 조종당할 것이라는 철저히 비인간적인 어리석은 믿음들.. 자신의 색을 몰라 경계선에서 서성이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떠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그래도 아직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임을 외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잔뜩 낀 경제 거품이 조금은 가라앉고 이웃집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만이라도..


스스로를 브론즈 등급이라 생각했던 나를 돌아본다. 어쩌면 이 의식의 흐름도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철저히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로 나눈 인간 등급.. 내 무의식 속에도 그런 사고는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그래서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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