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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Feb 04. 2021

거지 언니, 잘 지내고 계세요?

인생, 참 녹록치 않더라..

1년째 미용실을 가지 않아 길고 푸석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거울에 비춰보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거지 언니..


초등학교 입학도 아직 이른 동네 꼬마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그 언니를 이렇게 불러댔다. '거지'라고..

마흔을 넘기며 조금은 탁해진 낯빛과 더 이상 싱그러운 연분홍빛을 포기한 마른 입술. 거기다 관리를 포기해 등허리 아래로 엉기듯 헝클어진 긴 머리까지.. 흡사 거지 언니로 불리던 그 여인과 참 많이도 닮아있었다. 


지금은 신도시가 들어서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1986년 경기도 어느 농촌마을. 그 시기엔 배고픔과 가난이 지금보다 더 일상과 가까운 시기였다. 굳이 발악하며 숨기지 않아도 될 만큼 세 집 걸러 한 집이 가난에 심하게 찌들어있던 시기. 거지 언니와 우리가 살던 마을은 대다수 주민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다. 부자들의 시선에서 모두 거지 같아 보였을 고만고만한 경제 수준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집 누군가의 소박한 사치와 허영을 부러워하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경계를 나누며 살고 있었다. 


그런 어른들의 미성숙한 생각과 행동들이 아직 코 흘리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아이들은 무릎이 헤진 바지를 입고 허옇게 버짐이 일어난 얼굴로 거지 언니의 작은 비닐움막에 돌을 던지며 놀려댔다.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형편없는 세간살이가, 찬 바람에 펄럭이는 움막의 비닐조각이 아이들 눈에도 딴에는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경제 수준의 사람임을, 그래서 함부로 찧고 까불어도 될 안전지대임을 확신하게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조소와 함께 폭탄처럼 쏟아지던 작은 돌들은 그녀의 비닐움막에, 까맣게 탄 솥단지에 아무렇게나 부딪치며 타당탕 소리를 냈다. 마치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처럼. 하지만 거지 언니는 그런 아이들에게 고함을 치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돌세례가 끝나면 밖에 어수선하게 널어진 세간살이를 정리해 움막 안으로 사라지곤 했다. 족히 서른 중반은 돼 보였던 그녀에겐 일가족도 없는 듯했다. 늘 위아래로 까만 옷을 입고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렸던 거지 언니. 까만 옷은 옷이라기보다 헝겊이라는 느낌에 가까웠고 허리까지 늘어진 긴 머리는 단지 방치하여 길게 늘어진 그런 모습이었다. 그때 그녀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무려 35년이 지난 지금 그다지 깊은 관계도 없었던 그 사람의 안부가 왜 궁금해진 걸까 스스로 의아한 생각이 드는 오후.


돌팔매 무리에 끼어있던 꼬마는 그때 그 언니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세상 마지막 사랑임을 약속하던 반쪽은 그 맹세를 허무하게 저버렸고 십 년 후에도 이렇게 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던 고민은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책하고 후회하는 날도 참 많았다. 모두가 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건 아닌지, 행여 스스로에게 너무도 헐거운 성공의 기준을 적용하며 합리화하진 않았는지.. 하지만 나라는 영혼의 존재가 바라본 육체적 나는 결코 그렇게 방만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이번 생에 이 육체에 깃든 '나'라는 사람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육체를 먹여 살리는 일도 녹록지 않은데 영혼의 정체성을 찾고 건강히 지켜내기 위해 또 다시 영혼을 팔았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개인에게 성공이란 정말 정해진 때가 있기라도 한 듯 좀처럼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그 지친 육체를 '나'의 영혼이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된다, 언젠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영혼은 금방이라도 '나'의 육체를 버리고야 말 것 같았다. 드디어 원하던 길로 나아가는구나 싶은 시기에 듣도 보도 못한 전염성 호흡기 질병이 길을 막아섰다. 작가를 고용할 사업계획이 전면 틀어진 소규모 회사들은 연이어 미안하단 메시지를 약속이나 한 듯 전송해왔다. 수도 없이 겪어본 실패지만 참 익숙해지지 않았다. 일이 줄어들수록 '나'의 영혼은 자꾸만 '나'의 육체를 버리고 싶어 졌다.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겨 꽤 오랫동안의 쉼을 주고 싶었다. 사람이 싫었고 너무도 힘들었다. 버리는 것도 숨기는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산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TV로 보며 밤마다 맥주를 홀짝였다. 



그때 그 거지 언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혼자 그 외지고 후락한 마을에 혼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희미한 기억으로 그때 그 언니는 그곳에 그리 오래 머물진 않았다. 몇 개월 뒤 마을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갔지만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불을 때느라 검게 그을린 커다란 벽돌과 볼품없는 움막은 그대로 있었지만 언니의 모습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영영 볼 수 없었다. 살아있다면 벌써 노인이 됐을 그녀.. 어디에서든 그녀가 행복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길 빌어본다. 35년 전 그녀의 그 시렸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지금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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