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왼쪽 길

by 초코머핀

아주 오래 전인 1996년의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을 갔다. 소풍장소는 그때 핫했던 용인 에버랜드였고, 반 별로 다 같이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단체 전용 놀이기구를 타며 하루를 보냈다.


에버랜드 (from Wiki)


그러다가 귀신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 그 귀신의 집은 통로의 형태였다. 일렬로 줄을 서서 들어가면 양 옆에서 귀신이 한두 번씩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키는 구조였던 것 같다. 통로도 좁아서 학생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들어가고 맨 마지막에 선생님이 따라오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귀신의 집은 앞이 아예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곳이었다. 그래서 길을 따라간다기보단, 그냥 앞 친구를 쫓아간다는 느낌으로 조심조심 갔다. 그렇게 한 발씩 가다 보니 해골과 귀신이 불쑥 나타나 놀라긴 했어도, 쭈욱 지나가면 금방 끝날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앞 친구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앞 친구 발만 보고 쫓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 혼자 어둠 속에 휩싸였다! 마침 내가 멈춘 그 자리 바로 정면에는 괴상하게 생긴 귀신이 있었다. 바로 피해서 가야 하는데 양 옆으로 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면의 그 귀신은 자꾸 보니 무서워졌고, 막막해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앞에서 움직이지를 못하니 뒤에 오던 친구들도 내 뒤에 똑같이 멈춘 후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무서워서 다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멈춰서 울고 있었나? 맨 마지막에 오던 선생님이 길이 막힌 이 상황을 보더니 뒤에서 크게 소리치셨다.


"거기 앞에 빨랑 움직여!!"


맨 앞에 있었던 나는 움직이라는 재촉까지 받으니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다.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그냥 일단 딱 한 발짝만 왼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안 보였던 앞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귀신의 집은 중간에 길이 살짝 꺾인 구조였다. 대충 아래 그림처럼 말이다. 단지 너무 어두워서 내 눈에는 살짝 꺾인 그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한 발짝을 내딛으면서 보인 나머지 길은 너무나 스트레이트였고, 나는 엄청 크게 울어버린 쪽팔림을 뒤로하고 재빠르게 귀신의 집을 빠져나왔다.


~_~



이제는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이 모든 게 진짜였는지, 아님 내가 만들어 낸 건지도 잘 모르겠는 이 경험을 나는 가끔 떠올린다. 내 방식대로 살아가다가 벽처럼 느껴지는 무엇이 내 앞에 나타날 때, 나아질 방법을 몰라서 답답할 때 재밌게도 그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때처럼 옆으로 조금만 움직여보면 여태까지 했던 걱정이 다 무색하게 길이 보일지도 모를 테니 한 번씩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여태까지 해보지 않았기에 모르지만, 하다 보면 무릎을 탁 칠만한 시원한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세상에 막힌 길은 없으니 언젠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다줄 새로운 시도들 ㅎㅎ

keyword
이전 01화미국에서 1인 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