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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곰곰 Mar 20. 2019

#8. 모두를 위한,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은 노래

이성애자만의 결혼식이 아닐 수 있었을까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축가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기도 전부터 축가를 불러줄 사람이 정해놔서,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노래해줄 사람을 섭외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뮤지컬 덕질을 함께해준, 좋아하는 뮤지컬을 통째로 외워서 둘이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며 놀았던 내 동생. 솔직히 별로인 언니를 많이 좋아해 준 동생. 노래를 더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동생이 속상해할 게 뻔했다. 그런 위기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짝꿍도 고민 없이 싱어송라이터인 동생에게 축가를 의뢰했다. 동생의 애정을 무급으로 이용해 먹는 나와는 달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였다.

각자가 원하는 축가는 조금 달랐다.

짝꿍의 조건 : 1. 결혼식에 어울리는 2. 적당히 유명한 3. 좋은 노래
나의 조건: 1. 결혼식에 어울리지만 대놓고 축가스럽지는 않은  2. 우리 결혼식에 추가하고 싶은 내용의 3. 좋은 노래

짝꿍은 일찌감치 <행복한 나를>을 골랐다. 하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축가를 확정하지 못했다. 1번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까다로운데 2번 조건이 아주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뭔가를 선언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잘 알았지만 입밖에 내기 쑥스러워했던 것도 같다.

나는 우리의 결혼식에 이성애 중심적이지 않은 요소를 하나라도 넣고 싶었다.

우연히도 지인들의 커밍아웃이 겹치던 시기였다. 너무나도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에서, 운 좋게도 이성애자 커플이라서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거부했던 ‘보통의 결혼식’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게 기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내가 결혼식에 초대한 사람이 배제되었다는 감정을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다. 비겁하게 제도권으로 도망가지 않겠다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TPO에도 어긋나지만 -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나에게는 이걸 힘주어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뭘 하든 기만이고 주제넘은 짓이었다. 나는 제도권 안에 안락하게 있는 사람일 뿐인데. 입을 열어봤자 '동성결혼과 다양한 가족형태를 지지하는 멋진 나!"에 도취하는 자의식이 될 것 같았다.

‘차라리 나만 아는 상징을 집어넣을까? 하고 싶은 말에 취해서 우스워질 바에는 슬며시 발화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만약 내 찜찜함을 덜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축가 두 곡 중 하나 정도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겠지. 가사만으로는 게이 커플의 노래라는 걸 알 수 없다면 괜찮을 거야.’

나의 솔직한 조건: 1. 결혼식에 어울리지만 대놓고 축가스럽지는 않은  2. 우리 결혼식에 추가하고 싶은 내용의 성소수자 커플이 부르는 3. 좋은 노래

여기에 들어맞는 노래는 <렌트>의 <I’ll Cover You>였다. HIV 양성 판정을 받은 게이와, 마찬가지로 HIV 양성 판정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드랙퀸/젠더 플루이드의 사랑 노래. 보고 있자면 사회가 어떻게 규정짓는지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는 사랑스러운 커플. 나를 사랑해 준다면 당신의 모든 것이 되겠다는 직설적이고 달콤한 가사.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우리에게 어울리는 곡이었다. 극중 한 인물이 죽기는 하지만 어차피 우리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먼저 죽을 테고. 가사는 우리의 실제 애정표현과 닮기까지 했다. 남성 듀엣을 여성 듀엣으로 바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동생과 동생의 동아리 친구에게 이 노래를 부탁했다.

이 축가의 임팩트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식장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의도한 바가 전달되지 않았다. 따라 흥얼거릴 수도 없는 생소한 노래로 분위기는 어리둥절해졌다. 짝꿍의 동생이 프로의 솜씨로 분위기를 정돈했기에 망정이었다. 축가의 본질적인 기능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임을, 분위기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래와 함께 띄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짝꿍의 기준이 더 현명했고, 적절했다. 이 선곡은 나의 자의식 과잉이었다.

부끄럽다. 하지만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부끄럽지는 않다. 지금까지 알기론 - 누군가가 나에게 아주 크게 실망한 것 같지도 않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결혼을 하면서 결혼제도로부터 배제된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그 제스처를 이성애자 커플의 결혼식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많은 경험과 실패와 실패에 대한 정보가 모이고 나서야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몫의 실패를 했지만, 그 때문에 괴롭지는 않다.

이 경험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CUY_st9c-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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