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여섯 주인공과 여섯 주인공의 관객들
사진작가님 감사했습니다.
다행히도 마트에는 적당한 하얀 브래지어가 있었다. 11시에 메이크업 샵에 도착하니 나머지 가족들의 메이크업이 절반쯤 진행되어 있었다. 휴, 다행이다. 지금부터는 시간표대로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다. 우유 꿈은 개꿈이었어.
샵에는 두 직원과 우리뿐이었다. 사실 누가 더 있을 공간도 없었다. 직원 둘이 운영하는 의자 둘 짜리 오피스텔이었으니까. 이 샵을 고른 이유는 첫째가 ‘신부 공장’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싫어서요, 둘째가 집과 식장에서 가까워서, 셋째는 ‘안경 메이크업’에 대한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는 걸 두 달 전 졸업사진 메이크업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메이크업은 아주 귀여운 잔소리(“안경 쓴 것도 잘 어울리는데 안경 없는 게 너무 예뻐서 아깝네요..”)와 아주 귀여운 맞받아침(“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 결혼식 때 고려해 볼게요!”)과 함께 1시간 만에 끝났다.
시간이 남아서 건물 1층 할리스커피에서 동생과 짝꿍과 노닥거리다 식장에 갔다. 이때부터는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짝꿍 부모님의 메이크업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입장 리허설을 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사진을 찍어야 하니 급하고, 사회를 맡아준 내 선배 겸 짝꿍의 학교 동기와 막판 동기화도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고, 로비에 배치한 포토존은 괜찮은지, 단골 카페 사장님이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챙겨주신 커피는 잘 있는지....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하객들(주로 내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인사하랴 사진 찍으랴 가족들에게 손님들을 소개해주랴 바빠졌다. 사진작가님은 사진을 찍으려고 각을 잡아두면 다른 친구들이 (사진 찍는 중인 줄 모르고) 난입하는 게 계속되자 어느 순간부턴 포기하고 이 즐거운 혼란 통을 찍기 시작했다.
곧 짝꿍의 친구들, 양쪽 부모님의 직장동료 대학 동기 육아 동기분들도 로비로 모여들었다. 파티의 여섯 주인공은 서로의 관객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고, 어느덧 입장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