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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곰곰 Nov 17. 2019

#11-3. 우리의 계절은 사랑

우리 기쁘면 기뻐서 행복하고 슬프면 슬펐기에 단단해지는 산책을 하자.

리허설도 교본도 없이 우리의 결혼 기념 연극이 시작됐다.


합창단에서 오랫동안 반주를 맡아온 친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우리는 걸었다. 몇 달 간의 의견 조율 끝에 신랑 신부 동시입장만 하기로 결정하긴 했는데, 막상 어디서 어디까지 걸을 것이며, 계속 등을 보이고 있을지 아니면 어느 시점에는 하객을 향해 돌아설 것인지, 그렇다면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는 걸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어떻게 할지 몰라 하객에게는 뒤통수만 보인 채로 단상까지 쭉쭉 올라가버렸다. '이래서 다들 남들 하는 결혼식을 하는구나, 결혼식 헬퍼는 신부의 세팅을 돕기 위해서만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한 순간, 하객에게 환영 인사를 드리기 위해 미리 단상에 올라 있던 아빠가 "그래도 기왕 이렇게 모인 김에 뒷모습만 보이지 말고 얼굴도 좀 보이게 살짝 옆에 비껴 서있으면 어떨까요"하고 말해줘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아빠 땡큐. 여태까지 들었던 온갖 맘 상하는 말들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잊을게요.


우리는 주례 대신 결혼식의 여섯 주인공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채웠다.


아빠는 사실은 내 손을 잡고 사위에게 건네주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래서 우리와 의견차가 있어서 조율을 해야 했다고.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우리 말이 더 일리가 있더라고. 딸이 누구의 소유물도 아닐뿐더러, 가부장권을 아버지에서 사위에게 넘겨주는 게 적절한 제스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결혼이란 딸을 어디 먼데로 보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맞이하는, 뺄셈이 아닌 덧셈의 행위 같더라고. 신랑 측 부모님께서도 나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여 사랑해주시리라 믿는다고도 말했다.

엄마는 말 대신 우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준비했다 했다. (영상을 만드는 건 동생이 했다) 사는 지역도 살아온 시간도 삶의 궤적도 다르지만 꽤나 비슷한 순간들을 남기며 자랐고, 심지어 가끔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스치기도 한 필연임을 강조했다. 

짝꿍의 어머니는 결혼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의 모습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 익숙하지 않은 모습들에 서로 비난하지 않고, 서로를 더 깊이 만나가는 과정으로 여기기를 바란다 하셨다. 지금은 서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이 어떤 일로 첫 부부싸움을 할지 너무 궁금하다는 말과 함께. 

짝꿍의 아버지는 서로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언어를 쓰기를, 서로에게 따뜻한 집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복을 나누는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하셨다. 


나는 짝꿍에게 함께 웃으면 웃어서 행복하고 울면 울어서 단단해지는 산책을 하자 말했고, 짝꿍은 나에게 어제나 그러했듯 우리는 다투기도 하고 역경도 지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계절은 언제나 사랑일 것이라 말했다. 나의 곁을 허락해주어서 정말 행복하고 고맙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절대적인 편이 되는 동시에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혼인 서약서를 읽었다. 사회자의 성혼선언 후에는 내 동생과 동생 친구의 울먹임 가득한 첫 번째 축가와, 프로 음악인인 짝꿍 동생의 작은 콘서트 같은 두 번째 축가가 이어졌다.


양 가 부모님께 인사, 하객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모든 순서가 끝났다. 우리는 행진을 하며 우리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내가 이 결혼식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잘 전달되었을까. 일단 지루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가족 친지의 사진을 먼저 찍고 나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타이밍이 되었다. 나와 풀의 친구들이 모두 올라가니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나눠 찍어야 한다고 사진작가님이 말했다. 합창단 OB의 결혼식에서 합창단 사람들은 항상 사진을 따로 찍는다는 말을 하도 들었어서 놀라진 않았다. 그럼 합창단 사람들은 따로 찍을게요. 나를 보러 온 합창단 친구들이 우수수 내려갔다. 사진작가님은 그래도 사람이 많아서 한번 더 나눠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음... 그럼 학생회 친구들도 따로 찍을게요. 아마도 내가 이런 유난스러운 결혼식을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운동권의 끝물을 함께 지나온 학생회 친구들이 또 우수수 내려갔다.


첫 사진은 무난하게 찍고 학생회 친구들이 올라왔다. 신부님, 부케 던지시나요-? 단상에 올라간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니----요------!!!!! 그러면 단체사진 손하트 한 번 하고 찍을게요~ 나는 살짝 당황하며 "어... 이 친구들은 아마 손하트는 안 할 거예요"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포즈를 제안해달라는 작가님의 말에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투쟁!"

"?????????????????????"

"투쟁!!!!!!!!!!!!!!!"

그렇게 다 같이 왼손을 늠름하게 올린 두 번째 사진이 찍혔다. 대체 내가 뭘 투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하트가 아니니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합창단 친구들과 '친구들이 새 커플을 둘러서서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그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설정샷을 찍고 사진 찍기도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식장 마무리를 조금 하고 폐백도 환복도 없이 피로연장으로 올라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반가움에 몸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예의를 모르는 어린 신부로 보였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뻤다.


실제 준비 기간 6개월, 구상 기간은 거의 평생이었던 이 연극이 끝났다. 성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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