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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곰곰 Nov 17. 2019

#11-4. 잊을 수 없는 십시일반 콘서트

다시는 예전만큼 나를 미워할 수 없다.

나는 인간관계에 확신이 없다시피 했다. 누군가 나를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적이 잇던가. 안정적으로 환영받을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러니 피곤해지고, 그래서 인간관계를 다듬으려 노력하는 걸 회피하게 되고, 그러니 더 확신이 없어지고... 

결혼식 뒷풀이로 십시일반 콘서트를 할 마음을 먹었던 것도 '어차피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결혼식으로 모인 김에 각자 준비한 노래를 부르게 만들면 재미있겠지' 하는 생각에서였지, 엄청나게 적극적인 사랑을 받으리라는 기대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네 결혼식에서 엉뚱한 축가로 깽판 놓을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거면 아예 따로 모여서 놀자~'하는 마음가짐은 덤. 어쩌면 십시일반 콘서트가 아니라 노래방 같은 걸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음, 그래, 노래방 재밌지. 짖궂은 노래방 생일 파티 비슷한 걸 기대하고 공연장(펍)에 들어갔다.


그 안에서 


결혼준비기간 내내 울먹울먹했더 동생은 뒷풀이 무대에서도 울먹울먹하며 노래를 불렀고

뮤지컬 동호회 친구들은 뮤지컬 동호회답게 내가 부탁한 노래에 연극적인 연출을 더했고

동생의 각별한 친구는 빛나는 제스쳐를 곁들인 노래를 불렀고

합창단에서 만난 친구들은 시간을 쪼개 아카펠라와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노래를

출장이 겹쳐 결혼식에 오지 못한 친구는 미리 찍은 원맨아카펠라영상을

고등학교에서 같이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언니는 fly me to the moon의 프랑스어 버전을

취미 밴드를 하는 짝꿍의 직장 동료, 나의 동아리 친구들, 나의 동아리 친구의 밴드 친구들은

각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유쾌한 노래들을 준비했다.

결혼식 이틀 전에야 급하게 사회를 부탁한 친구들은 그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준비했을지 모르는 재치있는 멘트로 모든 걸 매끄럽게 만들었고

언제 준비했는지, 학생회 친구들은 어디선가 그들과 함께 찍은 내 사진들을 모아 축하 영상을 만들어 틀어줬다.


공연 활동을 어설프게나마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안다. 공연을 올리는 게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인지. 여러 명이 모여 한 팀으로 준비하면 연습 시간을 잡는 것부터 얼마나 큰 일인지. 현생과 본업으로 바쁜 나날에 연습시간을 빼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래서 더더욱 강조했던 것 같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놀자고, 규모가 크고 좀 더 정돈된 노래방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지만 내가 받은 건 농담으로도 짖궂게 굴지 않는 진지함, 정성스레 다듬은 노래들, 그리고 노래하는 내내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이었다.


'그냥 재밌게 놀자고 내가 기획한 파티가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가 될 줄은 몰랐네.'


저녁 여덟 시에 시작한 십시일반 콘서트는 밤 열한 시가 되어야 끝났다.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빛내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하며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고, 이렇게 즐거운 날을 준비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이 모든 걸 시작했던 것 같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 - 적어도 나랑 비슷한 사람들 - 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다른 사람의 사랑과 정성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것도 이렇게 엄청나게. 누군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나를 괴롭혔던 날들을 떠올렸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던 사람이니, 이런 날이 있었다고 갑자기 달라지진 않겠지. 아마도 첫 결혼기념일을 맞기 전 나는 예의 그 자기혐오에 빠져서 괴로워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는 나를 마음을 다해 좋아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생겼다. 

나는 앞으로 예전만큼 나를 미워할 수 없을 거고, 오늘은 남은 평생 나를 살릴 빛나는 기억이 될거야.


공연이 뒷 순서에 잡혀서 맥주를 많이 못 마신 친구들에게는 나중에 따로 맛있는 걸 사줘야지. 오늘 내가 받은 걸 잊지 말아야지 - 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잠은 여전히 오지 않았지만, 그대로 괜찮았다. 이 잠 못 이루는 떨림까지 잊지 않아야지.


그렇게 나의 첫 유부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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