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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곰곰 Nov 17. 2019

#12. 딱 한 걸음 유난스런 결혼식

결혼식 준비 이야기를 마치며

우리는 왜 이런 유난스런 결혼식을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이야기를 1년 반에 걸쳐서 하고 있을까. 


몇 년 전 셀프웨딩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스몰웨딩이라는 말도 나왔다. 주로 결혼준비의 허례허식에 소모되는 비용,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것들을 거부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나 또한 가장 보통의 결혼준비 소비항목 중 대다수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그 단어들에 관심을 보였고,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소비를 피하는 것이 반드시 총 비용을 줄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결혼식에서 빼고 싶은 게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 빼고 싶은 것을 모두 빼고 나니 채워야 할 빈자리들이 그득히 남았고, 빈자리를 채우는 우리만의 뭔가를 만드는 비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흰 드레스를 거부해보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쏟았던 시간, 결국은 짧은 드레스로 타협을 본 후에는 적당한 의상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시간, 부모님과 싸우고 상처입어서 정신을 못 차렸던 며칠... . 게다가 재주 많은 친구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디테일은 또 어떤가. 400명이라는 하객 규모는 또 어땠나. 이 결혼식은 작지도, 저렴하지도 않았다. (잘 안 맞는 대학원이긴 했지만) 석사과정까지 그만둬가며 공들인 사치의 끝판왕이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이 연극을 마무리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나는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이 정말 싫었다.


남의 결혼식에 뭐 그렇게 왈가왈부하냐는 말을 들을까 입밖에 낸 적은 없지만, 그 결혼식들은 매번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켜켜히 박힌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문제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판을 조금이라도 짤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멀리 그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결혼식에 올, 나와 비슷할 친구들이 그 복잡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우리는 얼마나 성공했을까. 우리는 결국 순결의 흰색도, 드레스와 구두도, 축의금 문화도, 시스 헤테로 커플만의 축제도 밀어내지 못했다. 각각의 핑계와 이유는 충분했다. 한국에서 웨딩드레스가 아닌 드레스를 구하는 선택지가 '음악회 드레스' 아니면 '홀복' 뿐이라서. 내가 치마와 단발이 워낙 잘 어울려서. 초대한 사람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베풀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우리가 시스 헤테로 커플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우리였기 때문에 딱 그만큼밖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였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 - 주로 내 친구들 - 이 그 결혼식을 아주 즐거웠던 축제로 기억해줬다. 완전 우리(또는 나)다운 하루라서, 둘이 고심했을 흔적이 느껴져서. 자기도 불편했던 걸 거부한 게 반가워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용기가 되었다'는 말이 가장 기뻤다. 누군가에게 용기와 영감이 되는 건, 내가 나여서, 우리여서 하지 못한 것들의 가능성을 다시 열어주니까. 나의 최선이 아주 사소한 불씨가 되어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가장 자신다운 것을 시도할 디딤돌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결혼식을 즐겨준 친구들이 결혼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그 하루를 연출할까. 비슷한 시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시도들을 했을까. 한 걸음만큼의 유난스러움들이 번져서 어떤 미래를 가져올까. 벌써부터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단단한 지지를 보내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으로 우리가 우리 몫의 유난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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