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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Mar 05. 2024

젊음에 대하여







올해 만난 부장님은 존경할 인간 하나 없던 이번 학교에서 유일하다시피 괜찮은 분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 분으로, 매사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궂은 일에는 앞장서 모범을 보여주셨다. 나도 나이가 들어도 저러한 합리성을 잃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몇일 전 부장님께 새해 인사를 보냈는데, 마지막까지도 부산으로 가는 나에 대한 걱정과 잘할 수 있다는 덕담을 잊지 않으셨다. 그저그런 덕담 주고받기였지만 1년동안 많이 의지했던 부장님의 말이라 마음이 찡해져 눈물이 나려고 했다.


2021년, 같은 학년의 교육과정 담당 선생님은 3월에 개인적인 이유로 휴직을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멘붕에 빠졌고, 말은 안했지만 가장 큰 걱정은


'누가 교육과정을 대신 할 것인가.'


우리 학년의 지배적인 의견은 내가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난 고3 학부모니 봐줘.

- 난 여름에 수술해. 못해.

- 난 애가 둘이나 있어서. 일찍 집에 가야해서 안돼.


모두들 각자의 핑계가 있었고, 나를 베짱이라며 욕하고 다니던 사람들조차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너는 다이빙 갈 시간도 있으니 교육과정을 할 수 있겠네.

- 젊고 빠르고 똑똑하잖아.

- 집에 애도 없고 남편도 착하잖아.


그럴꺼면 니들은 집에가서 애나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학교는 왜 나오냐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반드시 교육과정을 담당해야만 할 운명이었다. 나는 그들 말대로 애도 없고, 애완동물도 없고, 건강했고, 교육과정을 짜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론 직장은, 학교는, 사회는 가장 만만한 사람이 모든 것을 떠안는다. 모두가 그러라고 하고 있었다. 이게 내 운명이려니 체념했지만 부장님은 달랐다.


"학년 교육과정 자원하실 분."


묵묵부답


"그럼 제비뽑죠."


사람들은 일순 당황했고, 웅성거렸다. 모두가 내가 한다고 잠정적 결론을 내린 후였기 때문이다.


"전 애가 고3인데요."

"전 올 여름 수술하는데요."

"전 육아시간 써서 나가야하는데요."


모두들 각자의 이유를 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부장님은 이런 시선들을 알고 있으셨을까? 아니면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시는 걸까? 그깟 교육과정 뭐라고 날더러 하라 그러면 싫은소리 몇 마디 하고 하려고 했는데.


"각자 이유들이 있죠. 그러니 제비뽑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비를 뽑았고, 결과적으로 절대 교육과을 못한다는 선생님이 맡았다. 그 선생님은 어린 아이가 두 명이라 육아시간을 쓰느라 매일 오후3시에 퇴근을 하는 분이었다. 나이는 50이 다 되어 가지만 부장을 한 경험도, 심지어 교육과정을 짜 본 경험도 없다고 하였다. 제비에 뽑힌 후 자신의 이런 저런 상황을 설명하다 급기야 눈시울이 붉어지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저 울음은 꼭 나를 향한 원망 같았고, 사람들은 '왜 니가 하지 애를 둘이나 키우고 독박 육아 하는 사람을 시키냐'는 원망의 눈빛도 보냈다. 그래. 그깟 교육과정 내가 할테니 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고 했는데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내가 많이 할께요. 걱정마요. 내가 다 할께요."


결국 올 한해 교육과정을 맡은 선생님은 부장님의 도움으로 한 해를 잘 운영했고, 많은 부분은 부장님이 하셨다. 사람들은 내가 자원해주길 바랬고, 부장님도 젊고 경력있는 누군가 자원한다면 일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나에게 '해라'라고 명령하지 않았고, 나는 그 후 부장님을 많이 의지했다. 웬만해선 내 속 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음에도 처음으로 이 학교에서 힘들었던 일과 나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장님도 본인의 이야기를 나에게 많이 해주셨다. 우린 학기말에는 명백히 친한 친구였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의례 그렇게 된다. 자신의 친한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어 뒷담화를 하거나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잘난척을 하고 권력자에게는 굽실대다 만만하고 어린 사람에게는 불합리를 당연시하게 여긴다. 자신에게 곤란해지거나 불편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어디 나가면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숫자와 외모로 나이드는게 아니라, 마음이 나이가 들어가는게 아닐까.







하지만 부장님은 아침에 가장 먼저 학교로 와서 8개 반의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두셨다. 이유라면 개인적 사유로 늦게 오는 선생님들 반 학생은 복도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8개 반의 모든 문과 창문을 매일같이 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부장님은 그 일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부장님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은 "줘 보라."며 자신이 가져가 자주 대신 해주셨고, 그래서 가장 아주 늦게 퇴근하시는 날이 많았다. 모나고 삐뚤어진 나뿐만 아니라 아기를 기르는 워킹맘에 대한 애정도 가지고 있으셨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공평한 시각을 잃지 않으셨고,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셨다. 무리에서 좋은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욕을 먹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하셨다.



부장님은 60이었지만 명백히 젊은 사람이었고, 나는 올 한해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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