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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15. 2023

"아이랑 둘이 다녀올게"

엄마 빼고(?) 아이랑 둘이 외출하기

2023. 2. 15. (수)


"아이랑 둘이 다녀올게."


아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봤다. 


작년 12월에 육아휴직 후에도 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의 장거리 외출은 항상 아내와 함께 다녔다. 차를 타면 아이가 아내를 유독 찾기도 했고, 솔직히 아이와 단 둘이 멀리 갈 자신이 없었다. 익숙한 집도 아니고,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빠르게 진압(?)할 자신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가 울거나 난리를 치면 운전 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러다가 곧 둘째 찰떡이가 태어나면, 첫째와 '단 둘이' 외출해서 시간을 보내기가 더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인근 과학전시관의 유아체험관 예약이 가능하다 하여 용기를 낸 것.


그렇게, 아내 없이 아이와 단 둘이 과학전시관을 다녀왔다. 


비장한 뒷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겁에 질린 사슴 같은 느낌이랄까 (Feat. 귀여운 도시락통)
짐은 간소하게 [물, 도시락, 간식, 비상식량(카레, 김가루), 손수건, 기저귀, 물/손소독티슈, 여벌옷(+양말), 아이 가방, 담요]   *바로바로 꺼낼 수 있어야 함



불안한 느낌은 왜 틀리지 않는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세웠다. 


그랬다. 엄마 없이 차를 타는 게 익숙지 않았던 아이는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울었고, 결국 카시트에서 한쪽 팔을 빼내고 말았다. 다행히 그즈음 지나던 도로에 버스정류장 겸 임시로 정차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대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일단 대화를 시도했다.


나: "꿀떡이 차에 있어서 불편해?"

첫째: "(눈물 그렁그렁) 우웅!!"

나: "그럼 아빠랑 티라노사우르스 노래 들으면서 갈까?"

첫째: "(마음에 들지 않음) 아니야~!"

나: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어서 다른 선택지를 줘야 한다) 그럼 뽀로로 노래 들으면서 갈까?"

첫째: "(더 마음에 들지 않음) 아니야~!~!"

나: "(갤럭시탭을 아이에게 건네며) 그럼 꿀떡이가 직접 원하는 거 골라볼까?"

첫째: "(오호? 이건 처음인데?) .....웅?"


그렇게 갓길에서 선루프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음악도 이것저것 바꾸는 사이에 카시트를 재정비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도착할 때까지 조금 찡얼 대긴 했으나, 크게 난리를 치진 않았다.



막상 놀기 시작하면 엄마든 아빠든 상관없다


그렇게 어렵게(?) 과학전시관에 도착하고 나서는 별문제 없이 재미있게 놀았다. 아니, 막상 도착하니 언제 울었냐는 듯 빨리 들어가자고 소리도 지르고 신나서 날뛰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얄밉기까지 했다.


넓은 곳에 갈 땐 미아방지 가방 필수... 잠깐 눈 돌리면 사라져 버리는 닌자 같은 첫째 꿀떡이


유아체험관에 가서 1시간 신나게 놀고, 중간에 식당에서 도시락 먹고, 수유실에서 기저귀 갈고, 다시 외부 놀이터로 나가 또 1시간을 놀았다. 그러고도 집에 가기 아쉽다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더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시트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놀기 시작하면 옆에 엄마가 있든 아빠가 있든 신경 안 쓴다는 사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신남)



육아가 다 그렇듯, 시작이 어렵다.


아내 빼고(?) 다녀온 아이와의 데이트는 나름 대성공이었다. 출발할 때 부서져버린 내 멘탈만 빼면


아내도 오롯이 혼자 집에 남아 평소 먹고 싶었던 라면을 끓여 먹었다며 좋아했고, 아이도 '아빠랑 놀러 가서 재미있었냐'는 아내의 물음의 '응!'이라며 기미(그림)도 그리고 꽁뇽(공룡)도 봤다고 신나게 자랑했다.


'카시트 탈출 사건'을 포함해 이런저런 난관들이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못할 것은 아니었다. 준비물만 잘 챙겨가고, 중간에 몇 번의 보챔만 잘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단지, 그동안 시도할 엄두를 못 냈던 것뿐. 


사실 육아가 다 그런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지만 또 못할 건 없다.


평소 하루 절반 가까이를 집 밖에서 보내던 나는, 휴직 후 경험한 육아의 많은 것들이 처음이었다. 아이와 둘이 밥 먹기부터 둘이 낮잠 자기, 둘이 집에 있기, 둘이 문화센터 체험 참여하기 등등. 


처음에는 '내가 그걸 어떻게 해'라며 고사했지만, 막상 해보면 별 건 없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울면 달래면 되고, 그래도 안 달래지면 안길 때까지 기다리다 달래면 된다. 그리고 육아엔 언제나 반전이 있어서, 쉬운 것도 어려울 때가 있고, 반대로 어려울 것 같아도 쉽게 풀려나가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육아는,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복잡하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분명 어렵지만, 생각보다 단순하달까?



어찌 보면 육아의 모든 과정도, '시작'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사실은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 게 어려운 것일 테다. 


나 또한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라 평소 섣불리 도전하거나 일을 벌이지 않는데, 육아휴직으로 중간에 합류한 육아가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서 아내 없이 아이와 단 둘이 무언가 하는 것을 유난히 두려워했는데, 막상 해보면 아이가 서툰 아빠를 봐준다(?)는 느낌을 꽤 많이 받는다. 


처음 아이와 단 둘이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칼질도 서툴고 준비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무슨 일인지 보채지 않고 묵묵히 혼자 놀며 기다려주기도 하고, 이번에 둘이 놀러 갔을 때도 아이가 먼저 내 손을 붙들고 수유실로 가서 '응아' 했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건 아내도 겪어본 적이 없다며 매우 놀라워했다.


그렇게, 아이도 아빠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듯하다.


아빠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속도에 맞추어 아이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을 통해 이른바 '엄마 독립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꿀떡이만 해도 그 변화가 보인다고 아내와 얘기하곤 한다.


예를 들어, 엄마가 베란다에만 나가도 놀라서 울던 꿀떡이는, 이제 엄마가 베란다에 나가면 나를 찾는다. 엄마 눈썹이 없이는 절대 잠에 들지 못하던 꿀떡이는 이제 아빠 눈썹을 만지면서도 곧잘 잠에 들고, 엄마가 현관문 근처에만 가도 불안해하던 꿀떡이는 이제 아빠한테 안겨서 엄마에게 '빠빠이'도 잘한다. 무엇보다, 이제 꿀떡이와 나는 엄마 없이도 근처 동물원도 갈 수 있고 놀이동산도 갈 수 있다.  


육아휴직 후 55일, 남편인 나는 '아내 독립성', 꿀떡이는 '엄마 독립성'을 기르며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다.


할 수 있다고 했지 쉽다고는 안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카시트에 안 타겠다고 떼를 써서 잠시 조수석에 앉혀 놀아주는 중)


P.S. 저렇게 용기를 내서 외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꿀떡이 모두 코로나 확진으로 1주일 간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찰떡이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한동안은 꿀떡이와 단 둘이 외출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아버님들 중 아이와 단 둘이 외출한 경험이 없으시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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