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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Feb 19. 2023

아빠는 싫어도 괜찮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2023. 2. 19. (일)


"아빠... 싫어!"


21개월을 갓 지난 첫째 꿀떡이는 요즘 말이 늘고 있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어주면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제법 문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많이 하는 말이 하필이면 '아빠 싫어'다.


특히 밤에 자러 세 가족이 함께 침대에 누우면, 꿀떡이는 아내 옆에 딱 붙어서 '아빠... 아냐! 엄마만!'이라고 외치며 나를 밀어낸다. 이게 아이라 귀엽다고 웃어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누운 자리에서 계속 '아빠 싫어!'를 연달아 외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어 은근 섭섭하다. 한 번은 삐진 척을 했더니 옆으로 스윽 다가와 내 이마를 냅다 내리쳐버리는 승부사 기질(?)을 보이기까지 했다. 왕섭섭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고 심각해지기도 했는데, 아침에는 또 눈 뜨자마자 '아빠?' 하며 나부터 찾고, 씨익 웃으며 내 손가락을 잡고 나가서 놀고, 평소에 장난도 제일 많이 치고 놀 때도 잘 논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아빠 싫어!'를 외치곤 하는 것이다. 일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꿀떡이는 대체 왜, '아빠 싫어'라고 외치는 걸까?



우리 좋았잖아...니가 위험하게 선반에 올라가도 잡아주고, 물놀이도 하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놀이터도 갔는데 왜 싫은거야



"아빠는 '싫다'라고 해도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럴 거야."


어느 날 밤, 하도 '아빠 싫어!'를 외치는 첫째 아이에게 삐져서 등을 돌리고 있는 내게 아내가 해 준 말이다. '오.. 멋진 해석인데?'하고 생각해 보니, 진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꿀떡이는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싫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떡이와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하시고 비교적 자주 만나시는 양가 부모님의 경우, 꿀떡이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안돼!'라고 제지하시곤 한다. 그럼에도, 꿀떡이는 울거나 떼를 쓰면 썼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싫다'라고 직접 표현하진 않는다. 유독 아빠인 나한테만 '싫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아내는 이걸 나에 대한 신뢰로 해석한 것이다. 근데 왜 엄마 너한테는 싫다고 안 하냐는 질문에는 '그건... 난 엄마니까'라는 굉장히 찝찝한 답변을 해주었지만.


아마도, 꿀떡이는 '자기표현'을 배워나가고 있는 과정인가 보다.


아직 만 2살이 안된 꿀떡이는 아마도 본인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아이가 표현하는 '좋다' 또는 '싫다'는 어른인 우리가 해석하는 개념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꿀떡이가 밤에 '아빠 싫어!'라고 때의 의미는 어쩌면, '밤에 잠을 때는 엄마가 나를 안아주면 좋을 같아요'일 수도 있. 실제로, 꿀떡이는 '아빠 싫어'를 외치는 동시에 발을 간지럽히면서 깔깔 웃기도 하고 품에 안겨서 눈썹을 만지기도 한다. 다만, 내가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안는 재우려는 시도를 하면 눈치를 채고 재빨리 품에서 빠져나와 아내에게 달려가 안기곤 하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그 대상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무엇을 할 때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또 싫은지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 대상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이건 비단 아이뿐 아니라 어른인 우리도 그렇다. 어른인 우리가 아이와 다른 점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나 불안한 상황 속에서 감정을 감추는 데 이미 익숙해졌다는 것뿐이지 않겠는가.


어느 날 오후, 그렇게 '싫다'던 나를 꼭 안고 잠이 든 첫째 꿀떡이


아빠는 '싫어'도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아빠를 싫어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도 주욱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언제든지 싫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깊은 신뢰가 꿀떡이와 아빠인 나의 관계를 탄탄하게 지탱해나갔으면 한다.


'아빠 싫어', 다시 보니 자랑스러운 말이다.


그래도 너무 많이 들으면 섭섭하다. 어서 '아빠 좋아'도 가르쳐야지.


손도 쪼끄만 게. 백날 싫어해봐라 내가 널 싫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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