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에어팟을 샀다. 에어팟을 빌려 써보고는 '무선의 자유로움'에 반해서 사야겠다고 고민한 게 반년은 넘었다. 안드로이드 유저니까 에어팟을 사면 100프로 활용을 못할 테니 다른 것으로 사려고 알아봤는데 영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 상태였으면 올해 말까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살 수 없었을 텐데, 마침 동생이 사내 장터에에어팟이 게릴라 특가로 떴다고 알려줘서 샀다. 지난 1주일 동안 에어팟은 출퇴근길은 물론이고 설거지, 빨래 널기 등을 할 때 무료한 시간을 꽉꽉 채워줬다. 아마 올해 가장 잘 한 소비가 될 것 같다. 선에 묶여 불편하게 다녔던 지난 나날이 안타깝다.
나는 평소 야외를 달릴 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발소리, 숨소리를 들어야 하고, 외부의 위험요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뛰면 별로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제자리를 뛰는 러닝머신의 경우 바깥을 뛰는 것보다는 조금 지겹다. TV를 보긴 하는데, 선이 걸리적거려서 이어폰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를 못 듣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에어팟이 있지 않은가? 이제 '무성'의 아쉬움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에어팟을 산 다음날 야심차게 에어팟을 끼고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페어링 시도를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잡혔다. 그 이유를 며칠 써보고 깨달았다. 케이스가 있어야 내 기기를 찾아낼 것이 아닌가. 콩나물과 케이스는 한 몸, 항상 같이 다녀야 한다. 그래서 어제 러닝머신을 뛸 때는 케이스 채로 들고 갔고, 페어링에 성공해서 TV 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었다. 감격 또 감격!
마침 야구경기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야구를 보면서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NC 선발 구창모가 1회에 두들겨 맞고 시즌 최다 실점인 4실점을 했다. 경기 시작할 때부터 해설자들이 구창모를 류현진에 갖다 대질 않나 오늘 경기 끝나면 자책점이 1점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대길래 '아 좀 작작하지... ' 싶었는데 역시나 과한 찬양의 결과는 참혹했다. 직전까지 해댔던 구창모 찬양이 머쓱했는지 '공은 나쁘지 않은데 키움 타자들이 10개 구단 중 빠른 직구를 가장 잘 친다'며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는 모습이 짠했다. 이것도 영상으로만 봤으면 그저 갑갑했을 텐데 해설로 들으니 위로가 되었고 1회에는 얻어맞았어도 2회부터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게 됐다. 안타깝게도 내가 7km를 뛰는 동안 1회를 겨우 마쳤지만 말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서 다시 야구중계를 켰다. 4회인데 투수 교체는 없었고 4점 이후 추가 실점도 없었다. 얻어맞고도 멘탈 잡고 잘 던졌나 보네, 역시 구창모군 하며 해설자들의 구창모 찬양에 공감했다. 지긴 했지만 에어팟 덕분에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동안부터 해서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 까지 끊김 없이 해설자들의 경기 중계를 들을 수 있었다. 해설자들은 구창모를 찬양하고 나는 에어팟을 찬양한다. 에어팟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