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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Feb 20. 2024

16주 차 - 출산용품은 당근으로

출산일이 조금씩 다가오면서 준비해야 할 것은 마음가짐만이 아니다.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있을 정도로 육아용품 구매 및 준비는 미리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다. 지난번 베페에 다녀오면서 어떤 물건을 사야 할지, 혹은 어떤 물건은 나중에 사야 할지 논의했지만 품목도 다양하고 제조사도 많아 결정을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제조사들은 해마다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여 새롭게 출시하고, 계속 바뀌는 육아용품 트렌드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는 방식은 바로 ‘당근 거래’를 통해 싼 가격에 사서 써보고, 안 맞거나 실패하면 다시 재당근을 하는 형태의 출산용품 재활용이다. 신생아인 아기들은 성향을 미리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부모가 아무리 좋아 보인다고 구매해도 아이들이 싫어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게 육아용품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 2명 아이들 제각각 취향을 도저히 알 수는 없으니 사용기간이 짧은 육아용품은 당근을 통해 구매하기로 했다. 게다가 쌍둥이 산모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도 밖에 돌아다니기도 힘들 터, 미리미리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구매한 물품은 바운서와 바구니카시트, 역류방지 쿠션, 일명 역방쿠 3개다.


첫 번째로 구매한 물건은 바운서. 아내가 바운서 2개가 당근에 싸게 올라왔다고 해서 바로 차를 끌고 출발했다. 판매자 분도 쌍둥이를 키우신 분이고 현재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닌다고 한다. 유치원에 간 아이들의 유아 시절 바운서를 왜 지금 파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비교적 깨끗해보여 거래는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도 처음으로 쌍둥이 선배님을 만난 반가웠고 판매자분도 쌍둥이 육아 후배를 보니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던 듯 싶다. 당장 닥쳐올 신생아 육아보다는 유치원생이 된 쌍둥이 육아 및 교육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다행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쌍둥이 아이들은 서로 같이 놀기 때문에 부모를 조금 덜 찾게 된다는 것. 그리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둘이 서로 의지가 되기 때문에 어디 가서 맞고 오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에게는 조금은 먼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부모인 나와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두 번째로 구매한 물건은 바구니카시트, 아기들이 100일 동안만 쓸 수 있는 물건인데 100일 동안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면 얼마나 나갈까? 아마도 병원 가는 걸 제외하면 사용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근으로 구매했다. 이번에는 어느 주택가의 어둑한 주차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를 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쌍둥이 부모였다. 이제 막 100일이 지난 부모였는데 우리를 보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듯싶다. 거래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있는데 아내가 하도 오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가 떠나지 못했다. 임신이 어려웠던 처음부터, 얼마나 어렵게 아기를 갖게 되었고 출산했는지. 그리고 분유를 바꾼 이야기까지. 다른 분의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가감 없이 오랫동안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100일이 지난 부모가 둘 다 당근거래에 나올 정도로 100일 정도만 버티면 아이들은 일단 밤에 좀 자는 것일까? 40분을 서서 이야기를 듣다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육아를 오래 하다 보면 바깥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겠구나 싶은 이해와 곧 나의 미래를 보는 거울 같아 그 미래가 살짝 두렵기도 했다.


세 번째는 역방쿠 나눔을 받으러 간 당근거래. 너무나 감사하게도 역방쿠뿐만 아니라 남자아기 옷까지 여러 벌 받았다. 단지 안으로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단지라서 아내 혼자 거래를 보내고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기본적으로 육아용품 당근은 하루종일 아이들만 보고 있는 부모들의 대화 욕구 해소 창구이자, 육아 팁을 나누는 담소 시간이라 다른 당근 거래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연령도 다르고, 사는 곳도, 태어난 곳도 다르지만 육아용품 당근거래에는 다른 중고거래에서 느낄 수 없는 끈끈한 전우 동료애가 느껴진다. 아직도 몇 가지 더 당근으로 육아용품을 구매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육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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