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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Feb 01. 2024

14주 차 - 태아 보험


아이들이 레몬 사이즈로 커졌다. 다음에 초음파 사진으로 만날 때는 아이들 키가 10cm 정도가 된다. 아이들이 쑥쑥 성장함에 따라 아내는 임신 부작용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덧도 점점 더 심해지고 갑자기 일어설 때 어지러워한다던지, 아니면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지는 증상이 늘었다. 반복되는 증상으로 아내가 차라리 아기들이 뚝딱 나와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남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호흡이 힘들면 자세를 똑바로 눕혀주거나, 먹고 싶은 걸 사다 주는 정도.


얼마 전 주말에 청소를 하다가 아내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벽에 머리와 몸을 부딪혔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다가 너무 놀라서 아내를 침대에 눕혔다. 호흡이 어렵다며 119를 불러달라는 아내의 말에, 일단 온몸을 펴고 몸을 주물러주었다. 빈혈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커지면서 횡격막 부분을 압박해서 생기는 증상인지는 병원에서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숨 쉬기 어려워한다.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변하는 시기라 아내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혼자 모든 변화를 겪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새벽에 깨면 혹시나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을까봐 한 번씩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산모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을 뱃속 태아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정밀 초음파를 찍은 후에는 태아 보험을 드는 단계가 찾아온다. 이름 없이 태명으로 드는 태아 보험이지만 여기서부터 쌍둥이는 다른 취급을 받는다. 아무리 쌍둥이가 길 가다 자주 보이는 세상이라도 역시 소수 쪽에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보험 사 중에 선택할 수 있는 단태아 아이들과 달리 다태아는 일단 보험사 선택지가 거의 없고 아이들에게 조금만 특이사항이 있어도 보장이 확 줄어들어든다. 그만큼 아이들 건강이 다른 단태아 아이들보다 안 좋을 확률이 높다는 공식적인 선고로 들렸다. 쌍둥이 육아에 대해서 찾다 보니 알고리즘이 쌍둥이 출산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너무 이른 조산으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쌍둥이 아기들을 보여줄 때면 안타까움과 함께 걱정이 찾아온다. 부모로서 인생은 나보다 걱정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얼마 안 되는 보장이라도 받기 위해 태아 보험을 알아보는데 어떤 보장을 선택하고 빼야 할지 너무 복잡하다. 아직 내 앞가림하고 본인 신경 쓰기도 벅찬데 동시에 두 명을 각각 신경 써줘야 하는 건 역시나 쉽지 않다. 몇 페이지 다태아 보험 약관을 비교하면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아이를, 나를 낳고 키우면서 이렇게 어렵고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우리를 키워냈구나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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