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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Mar 25. 2024

19주 차 - 그냥 제주도 여행

19주 차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남들은 태교여행이라고 부른다지만, 우리는 딱히 태교보다는 ‘원래의 우리라면 지금 쯤이면 우리 한 번 여행을 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떠난 여행. 아내가 지금부터 직장 휴직을 시작하고 다음 달부터는 베이커리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니, 어디론가 같이 떠나야 한다면 지금밖에는 시간이 없었다. 특히 아내 배가 점점 더 불러오고 있기 때문에, 몇 주 뒤면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주라도 일찍 여행을 출발하는 게 더 자유롭게 우리 둘 만의 여행을 만끽할 수 있기에 바로 짐을 쌌다.


여행의 목적지는 제주도. 원래는 괌을 갈까, 해외여행을 갈까 고민했었는데 가장 가깝고 가장 안전한 제주도로 결정했다. 괌에는 얼마 전 역대급 태풍으로 인해 아직도 피해복구 중이고, 동남아 휴양지로 가자니 임산부 입장에서는 치안 및 위생, 혹시나 모를 사건사고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후보지에서 탈락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막혀있던 해외여행이 풀리면서 제주도 여행 바가지요금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숙소 가격은 여전히 높다. 특히 이번에는 아이들이 뱃속에 있기 때문에 더 편하게 묵을 수 있는 수영장과 내부 휴식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는 ‘힐링’ 호텔을 위주로 예약했다. 이제야 배가 좀 나와 누가 봐도 임산부로 보이는 초기단계지만, 여행 전반에서 임산부가 됐음을 실감하는 일들이 많다. 해산물이나 날 음식을 못 먹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독특한 냄새가 나는 곳이나 동물들이 있는 곳은 갈 수가 없다. 오르막이 심한 언덕이나 많이 걷는 코스 또한 제외해야 한다. 몸이 퉁퉁 붓거나 밑 빠짐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기에 산모의 체력과 의지는 상관이 없다. 하물며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도 아기에게 괜찮을까 괜한 걱정이 생긴다.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로서 같이 더 즐거운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가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리가 갈까 봐, 혹은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섣불리 추천하거나 의견을 내기 어렵다.


여행의 마지막, 제주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의 미래를 엿보았다. 비행기를 탑승한 지 30분 남짓, 착륙까지 꽤 남았음에도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한 진동과 떨림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놀라서 동그래진 우리들의 눈이 서로 마주치는 동시에, 시선은 명확한 목적지로 향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가들이 잠들어있을 아내의 배, 혹은 이 진동을 같이 느끼며 누구보다도 불안해할 아기들이 머물고 있는 곳.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기보다 혹은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안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 우리의 모든 우선순위에는 아기들이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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