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의 하루 Apr 18. 2024

21주  차 - 응답하라 모봉이

40주의 임신 기간 중 절반을 지났다. 임신과 출산이 왕복 달리기라면 우리는 이제 반환점을 막 돌았다. 여기까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아이들이 대견하지만, 다태아는 산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출산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까지, 그리고 도달하고 나서도 섣부른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그래서 최선을 다해 아내와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보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마도 임신 전 몇 개월, 출산 후를 통 틀어서 지금이 가장 여유로운 시기일 테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해외여행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보다 설렘과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행복한 것처럼, 우리는 예비 부모가 될 생각에 흠뻑 빠져있었다.


21주 차가 되면서 엄마 배 속 아이들이 바빠졌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 어느덧 아내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나도 태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태동이 강해졌다. 20주 이상인 태아는 바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신기해서 엄마의 배를 두드리는 걸까. 마치 세상에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처럼.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오던 태동이 특정 시간이나 특정 순간에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거나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는 의미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같이 손을 배에 대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너희들의 엄마, 아빠란다. 우리도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잘 부탁해’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생물학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연결이 되어 있다. 현시점 유일하게 독립적인 개체인 아빠는 어떻게든 이 가족 결합에 들어가고 싶어 진다. 우리 사이의 유일한 보호막인 아내 배에 손을 대고 속삭임을 자주 한다. 아내가 잠들어 있을 때나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요즘 우리 부부가 같이 보기 시작한 드라마 ‘킹 더랜드’를 볼 때마다 아기의 태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드라마를 재밌게 보는 엄마의 감정을 아이들도 느끼는 걸까? 이제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조심해야겠다는 자기 검열이 생긴다.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는 피하고 음악도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노래 위주로 틀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다 보니 아내와 이전에 재밌게 봤던 믿고 보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서서히 이런 삶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이전 20화 20주 차 - 육아휴가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