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찬 the 하트히터
Mar 04. 2023
25km. 일상에서의 물 한 모금
feat. 마라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작년에 사고로 무릎 부상을 당했을 때 일이다.
하루만 뛰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한데, 거의 두 달가량을 달리지를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었다.
아쉽지만 달리기 대신 짧은 거리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느 날은 한참 걷고 있는데 아스팔트길 한쪽 귀퉁이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크기가 내 손가락만 한 연두색 애벌레였다.
오동통한 녀석이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가는 건지, 꼬물꼬물 기어가는 게 너무나 귀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지켜보는 내내 나만 알 수 있는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마라톤에서 수분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거나, 참고 참았다가 한꺼번에 마시거나, 혹은 아예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은 경기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꾸준한 '물 한 모금'이 중요하다.
일상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들을 경험하고 슬프고, 아프고, 힘이 들 때 무작정 참거나, 한 번에 해결하려고 애쓰거나, 혹은 회피를 한다면, 오히려 고통만 더 커질 수 있다.
그러한 감정들과 상황은 한 번에 잊는다거나 이겨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처럼 일상에서도 꾸준한 물 한 모금이 중요하다.
그날 산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에게는 일상에서의 물 한 모금이었던 셈이다.
물론 물 한 모금은 루틴이나 취미, 여행처럼 내가 노력하며 의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일상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물 한 모금에도 감사하고 기꺼이 누리자.
그렇게 한 모금씩 꾸준히 마셔나가다 보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조금은 더 건강하고 충만하게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