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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Nov 01. 2019

07. 일곱 번째 편지

건축심문#7

L. 07


from house



일곱 번째 편지

#7



찬 이슬이 맺히는 10월의 한로寒露에 띄웁니다.


형, 

10월도 한 주가 넘게 흘렀네요. 

지금 서울의 가을 아침은 어떤가요?

여기는, 옷깃을 여미는 손길이 더욱 단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9월의 마지막 주에 받았던 메일 속에 형의 즐거움이 묻어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이의 즐거움이 글을 통해 우리에게 느껴진다는 것, 신기하지요?

오늘은 우리의 즐거움을 나눠드립니다.  





" 공간이 정말 삶을 바꾸는 걸까요? 주택에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바뀐 삶의 방식이나 습관 또는 생각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삼간일목이 보내온 질문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삶의 변화가 주택에 살아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도시가 아닌 양평에 살아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두 가지 다 원인인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오늘의 정리는 참치가 맡았습니다.  


남다른 자립심을 가진 집씨는 가장 큰 변화로 자급/자립/자족 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주택은 아파트보다 활용 가능한 공간이 많기 때문에 자급자족을 위한 공간 확보가 큰 장점입니다. 텃밭이 있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퇴비를 만들어 쓰는 것도 가능한데, 양평에 살면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거의 사지 않습니다. 

그냥 물기만 없애고 햇빛에 말린 뒤 바로 퇴비 통에 EM(미생물 효소)과 함께 섞어서 퇴비화시키죠. 그럼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텃밭에 퇴비로 사용합니다. 그 퇴비로 건강해진 야채들을 다시 밥상 위에 올려서 자연스럽게 순환되고 있습니다. 


이저우표 로스팅 커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저우 사람들 4명이 하루에 사 먹는 커피값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많으면 하루에 2~3잔도 마시는데, 4명이 카페에 쓰는 돈을 생각해보니 엄청나더군요.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직접 로스팅해서 커피를 내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집씨. 그렇게 커피 원두를 사서 작업실에서 직접 로스팅을 해봤는데 재미도 있고 나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건수’를 찾은 것 같아 좋았다고 합니다. 

자급자족이 (전원생활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이저우라는 공간이 준 하나의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패 언니는 ‘Simple Life'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도시에 살 때보다 지금 더 생활이 단순해진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실 도시에 있으면 번화가나 주요 미팅 포인트들이 가까이 있어서 평일 저녁에도 친구나 지인을 잘 만날 수 있죠. 그렇지만 양평에 이사한 뒤로는 집도 멀고 지하철 시간도 정해져 있다 보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평일에는 별로 스케줄을 만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 점은 참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번화가에서 사람을 만나는 대신 주말에 친구나 지인을 집으로 초대하게 되고 평일 저녁을 집에서 직접 해 먹게 되고 커피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게 되는 좀 더 단순한 삶이 된 거죠. 주변에선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지 않냐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내 스케줄을 좀 더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는 소모적인 모임이나 만남을 줄일 수 있게 되는 점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회사를 다니면서 전보다 술자리나 저녁 약속 등을 잘 안 하게 되거든요. 물론 중요한 자리엔 가지만 그 자리에 내가 꼭 있어야 하는가를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게 합니다. 대리 운전이 힘들고 금액도 비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술을 마셔야 하는가를 정말 신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 년에 대리 운전할 일이 2~3번 정도밖에 되지 않더군요.  


모두의 공통적인 의견으로는, 주택은 아파트보다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삶을 바꾸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죠. 

특히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경우 공간 변화를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지만 주택은 실내뿐 아니라 실외도 변화 가능한 곳들이 많습니다. 마당이나 데크, 주차장, 대문 앞 등 작은 공간이지만 변화를 줄 수 있는 곳들이 구석구석에 있습니다. 마당이나 주차장 쪽에는 계절에 맞춰 꽃이나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집 앞 데크에는 여름엔 임시 풀장으로, 뒷마당은 텐트 치며 모닥불을 피우는 낭만적인 공간으로도 만들 수가 있는 거죠. 누가 와서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공간은 정말 다르게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적었지만 앞으로 남은 얘기가 더 많네요. 이번 질문은 답변을 1편과 2편으로 나누어서 해볼까 합니다. 너무 길면 기억도 다 못하실 테니까요. 후후 

그럼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To be continued.. 






아, 그리고 이번 질문은 먼저 드릴게요. 생각해 보시고 2편이 끝난 뒤에 답을 적어 주세요. 참고로 이 질문은 이저우 사람들이 최근 양평 문학 박물관에서 열린 신달자 시인의 시낭송회에 갔다가 듣게 된 시인의 인생 이야기 중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입니다.  

질문: 


"시장에 청어 장수 a,b,c가 있었습니다. a와 b 상인의 항아리 속 청어는 매번 금방 죽었지만 c 상인의 청어는 가장 늦게까지 항아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두 장수는 c장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 있냐고 물어봤더니 c장수는 항아리에 가물치를 넣어놔서 청어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어의 천적인 가물치의 공격에 죽지 않으려 애쓰다가 그 생명력이 길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인생에도 가물치 역할을 하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있었기에 보석 같은 시가 나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청어인가요, 가물치인가요? 만일 청어라면, 당신의 가물치는 무엇인가요? "



이 메일이 오늘 시작하는 일상에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길 기대하며, 

양평에서 띄웁니다. 


2019.10.8 이집저집우리집 일동 


이집저집우리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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