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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Jan 23. 2020

12. 열두 번째 편지

건축심문 #12

L. 12


from house



열두 번째 편지

#12



2020년에 묻는 첫 안부


효 형에게, 

새해, 여전히 복 가득 담은 다양한 설계 작업들이 삼간일목 사무실에서 진행 중이겠죠?

형이 보내주신 지난해 마지막 질문이 새해까지 이저우 구성원들에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줄은 꿈에도 모른 채.ㅋㅋ 이렇게 시작되었죠.



 개인주의적이고 가족이기주의 적인 요즈음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공동체의 삶이 우리에게는 얼마만큼 절실하고필요한 것일까요우리는 공동체 마을(동네고향)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이번 정리는 ‘집씨’가 합니다.

막냉이 ‘참치’가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야근 때문에 지쳐 있기에. 

결론적으로, 주신 질문에 대한 이저우의 공식적인 대답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단지집 한 채 지어 살아보고 있을 뿐입니다도시보다는 한적한 교외에서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으로따로 혹은 같이 사는 듀플렉스 형식으로겨우 5년째 접어드는 지금까지’라고. 


삼간일목 질문의 기준을 추측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그냥 우리가 받아들인 기준에 맞춰 그렇게 밖에 정리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풀겠습니다.


나 이외에, 삶이나 일상에서 고려할 누군가가 하나라도 더 있다고 느낀다면, 그 순간부터 ‘공동체’는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든 동물이든 혹은 현상이든. ‘공동체’는 그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저우’는 구성원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나 가족이기주의가 공동체의 대척점 쪽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개인주의적이고 가족이기주의적인 요즈음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이저우 사람들이 대답할 수 있는 지점은 여기까지 인 듯합니다. 


공동체의 삶이 우리에게는 얼마만큼 절실하고필요한 것일까요?’라는 물음에, 얼마나 절실한 지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관계나 규모, 기준이 뭐가 됐든 ‘공동체’를 의식하고 인식하는 삶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동체 내에서 이해와 배려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관건이겠지요. 질문을 거대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런 수준의 저희들 일상 예를 들겠습니다.

이저우는 물리적 공간으로 일단 마당과 주차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은 입차 순서나 출차 순서에 따라 차 3대의 주차 위치가 거의 매일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각 집에 지인들이 방문하게 되면 일정이나 규모 등을 고려해 주차할 위치나 시간을 수시로 공유한 후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해줍니다. 방문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집이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계절적 이유(겨울/눈/강추위) 등으로 저집 ‘참치’에겐 특정 위치가 고정되기도 합니다. 1년 365일을 가장 일정하게 또 일찍 출근 업무를 수행하는 ‘참치’의 차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숲 속 혹한의 겨울 새벽을 견뎌낸 후 재빨리 출발할 수 있도록 겨울엔 늘 주차 박스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겨울 아침에 차를 운행해보신 분들은 모두 아실 테죠? 야외에 주차된 차 시동을 걸고, 전면 유리에 얼어붙은 성에를 긁어낸 후 냉장고 같은 차량 실내를 데우는 시간과 노동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다른 구성원 모두 차를 관리가 편한 주차 박스에 넣어두고 싶겠지만, 자신들보다는 아침에 가장 분주한 참치를 이해하고 배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공유 공간이지만 상황에 맞게 특정 집에 더 배려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겁니다. 이집 저집 모두 이웃한 서로의 일상을 서로 인식하고 의식함으로써, 불편하거나 난처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쉽게 해결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아, 중요한 걸 까먹었네요. 삼간일목도 아시고 계시죠? 사실 이저우 공간에는 주차 박스가 없습니다. 설계도엔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주차 박스는 맞은편 이웃의 것입니다. 터 닦기 후 주차 박스만 만들어놓고 아직 집을 짓지 않은 이웃 주인분의 허락과 배려로, 지금까지 저희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주차 박스 실내엔 총 2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습니다. 이저우 구성원들이 모두 사용해도 되겠지만 저희는 1대 자리만 사용하고, 나머지 1대 자리는 이웃한 다른 분들을 위해 비워두고 있습니다. 배려받은 만큼, 배려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공동체는 어디든 그 나름의 형태와 의미로 형성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형태나 의미와 적합한 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형태와 의미가 맞다 느껴도 실제 부딪혀보면 간극이나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오기 마련일 테니까요.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더 비중을 두며 ‘공동체’를 고민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마을(동네고향)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뭐 이저우는 아직은 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희의 모습은 ‘공동체’보다는 ‘공동주거’라는 정의가 더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합니다.  


삼간일목이 왜 갑자기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그 속에 또 어떤 모습과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물론 이걸 질문으로 보내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진 몇 번의 식사/식후 자리를 통해 이저우 구성원들이 벌인 논란들도 한 문장들로 요약해서 첨부합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세요. ㅋㅋ 


참치_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 하기로 한 것 아닌가이건 반칙이다!’ 

발레_질문에서 말하는 <공동체>가 도대체 뭐냐? <공동체>의 의미나 범위(기준)가 어디까지인가?’ 

집씨_질문의 <우리>는 누구인가?’ 

발레_‘<개인주의적이고 가족이기주의적인 것>이 과연 요즈음만의 문제인가그리고 그것은 부정적이기만 한 흐름이고 변화인가?’

집씨_ ‘<공동체의미는 한국 전통의 가부장적인 사회로의 회기 아닌가?’ 

참치_이 질문은 일문일답의 내용에 적합한 질문인가?’ 

국패_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인가?’ 

발레_ 이저우는 <공동체>인가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저우집 고양이 공동주택?


삼간일목의 질문이 가져온 이런 논란과 의문들을 메일로 되받아보시는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요? ㅎㅎ

저희의 올해 첫 궁금증을 보냅니다. 벌써 4년째로 접어드네요. 이저우에서.




만약 이저우 이집의 소유권이 삼간일목에게 있고, ‘저집의 거주자(소유자)를 선택하여 같이 살 권리가 있다면(물론저집은 소유권은 거주자가 지불하고 가짐지인이나 가족들 중 누구와 함께 살고 싶으신가요만약 그런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건축 알못(예비건축주)들이 들어도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ㅋㅋ


아무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음력설 전에는 오지 않겠지요?

명절 인사와 함께 보냅니다.

가족들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 이저우 모두들 대신하여, 집씨 -



2020.01.18


집씨


이저우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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