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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때문에 죽고 싶은 아이들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도 없어요-

by 집공부

해마다 성적을 비관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률은 2016년 기준 10만 명당 7.8명이며, 10년째 대한민국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라고 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죽고 싶은 이유 1위는 학교성적(41.9%)이고, 그다음으로 가족 간 갈등(24.5%)이라고 한다.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에서도 자살률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청소년 자살은 다분히 충동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평소 꾸준한 상담과 모니터링을 통해 자살징후를 미리 발견해서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자살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초등학교 1·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성장기 학생들이 흔히 경험하게 되는 정서·행동 발달상의 문제를 조기 발견하고 악화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검사 결과 나타난 관심군 학생에 대해서 면담조사를 진행한다.

이 검사 결과를 학부모들에게 알려줄 때 참 조심스럽고 힘이 든다. 내가 고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학급당 1~2명 정도가 관심군 대상에 속했다. 결과에 따라 일단 학생과 상담을 하고 이후 학부모의 상담을 진행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전문적인 기관에서의 상담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순영이는 예쁘고 성격이 밝으며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다. 집안도 부유하고 교우관계도 좋은 아이다. 그런데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여 관심군으로 분류된 케이스다. 기간제 교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감해하는 담임 선생님을 대신하여 학년부장인 내가 상담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일단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선생님, 저는 매일 죽고 싶은데 죽을 시간이 없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문젠데 어떻게든 시간을 내봐야지.”

아이가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처음에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하면 더욱 우울감이 깊어질 수도 있어서다. 나는 순영이의 기분을 바꿔주기 위해 일부러 가볍게 대꾸했다.

“저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기계 같아요.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어요.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거니까 지금 죽을래요.”

순영이에게 조심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제가 살 수 있는지 들어보세요. 저는 과외 선생님이 7명이예요. 집에 가자마자 국어 선생님이랑 2시간 수업, 그다음에 수학 선생님, 그리고 영어 선생님….”

순영이가 시험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부모님은 과외선생님 숫자를 늘린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공부 노래만 부르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워 죽고 싶다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목욕탕에 들어가서 죽으려고 했어요. 제가 울면서 휴대폰으로 유서를 남기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노크를 하시더라고요.”

목욕탕으로 얼굴을 내민 엄마는 “시간이 좀 걸리니?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동안 이거 읽어.”라면서 신문의 사회면 사설을 넣어주었단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방으로 돌아갔는데, 화장대에 오늘 외워야 할 한자를 떡하니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조차 없어요.”

순영이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장담하는데, 너희 부모님은 너를 정말 사랑하셔. 하지만 부모님들도 부모라는 역할을 처음 해봐서 그래. 네가 공부 잘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최고의 자식 사랑인 줄로 생각하셔서 그러신 것 같아. 선생님이 부모님과 대화를 잘 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절대 죽겠다는 생각하면 안 돼.”

난 순영이와 상담을 마친 후 순영이의 부모님께 연락했고, 며칠 후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셨다. 순영이의 마음 상태에 충격 받지 않으셨을까 걱정했지만, 순영 어머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상담실로 들어섰다.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겠다는데 뭐가 잘못이죠? 선생님이 몰라서 그렇지, 제 친구는 아이한테 저보다 더 많은 과외를 시켜도 아무 문제없는데…. 저희 아이가 관심 받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아이는 제가 더 잘 압니다.”

상담하는 내내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지금 부모님께 자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고 있어요. 정말 사랑하신다면 부모님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마시고 아이의 생각을 물어봐 주세요. 정말 순영이를 위한 길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 주세요.”

어머니는 상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이후 순영이는 가출을 감행했다. 학교에 출석은 했지만, 전과 달리 공부는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잠만 잤다. 어쩌면 순영이는 부모에게 자신은 공부하지 않을 테니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부모의 지나친 성적에 대한 집착은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성적에 너무 집착하면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절대로 맛볼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그 배움의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필요와 방법으로 배워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보다 잘했느냐가 아니라 어제보다 발전한 오늘의 모습을 인정하고 격려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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