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맛을 찾아서
어느 날, 옆집 양조장에서 놀던 한 때와 그곳에 펼쳐진 술밥 익어가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시음유랑단'을 꾸려 어릴 적 맛보았던 막걸리를 찾아다녔다. 무작정 찾아간 오래된 양조장, 그 두 번째 목적지는 영양이다.
60~70년대 갈증 해소 음료는 ‘게토**’가 아니라 막걸리였다. 다른 주종과 달리 마시고 돌아서도 갈증나지 않는다. 그건 당시의 물맛이 엄청나게 좋았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지방 소도시 중에서도 물 좋기로 소문난 영양은 영화 <워낭소리>의 배경이 된 곳으로 여전히 정겨운 시골 풍경이다. 예전 담배와 고추 농사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일꾼들로 붐볐을 땐 막걸리 판매가 절정이었다. 배달 자전거가 쉴 틈이 없었다는 영양양조장은 이젠 홀로 이 동네를 지키는 파수꾼이 됐다. 입구에 들어서니 ‘영양탁주조합공동관리회’라는 문패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란 수식어가 걸려 있다. 일제시대이던 1926년, 압록강 적송을 골조로 건축된 이곳은 낡은 건물이었지만 매일 쓸고 닦은 흔적이 역력할 정도로 정갈하고 깨끗했다. 여기저기에 오래된 양조 소품들이 즐비한 이곳은 드럼통 하나, 대야 하나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영양生막걸리’는 쌀과 밀가루가 반반씩 섞인다. 1961년 정보의 주세법 시행령 개정과 1966년 쌀 사용 전면금지기간에는 밀가루로만 술을 빚다가 1990년 이후 쌀의 비중을 높였다. 요즘 대 부분의 막걸리에 들어가는 인공감미료를 넣기도 하지만 물의 힘이 있기 때문이지 이곳 술 맛은 꽤 밸런스를 유지한다. 단맛이 그리 강하지도, 탄산이 파닥거리지도 않고 칼칼하고 우직하다. 진하고 걸쭉한 느낌보단 약간 묽은 맛. 딱 농부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이게 어릴 적 그 술 맛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역시 모르겠다. 750ml짜리 한 병에 750원, 가격 한번 싸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힘과 술 맛을 보고 나니 그 옛날 이곳의 황금기를 누리던 농부들처럼 뙤약볕에서 벌컥벌컥 막걸리나 들이킬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어깨를 쳤다.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영양탁주합동 054-682-1501,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 540
(사진 설명)
1 매일매일 쓸고 닦아 오래도록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는 영양양조장.
2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술밥 푸는 삽이 세월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3 벽에 걸린 칠판에 빼곡하게 주문량을 써내려 갔을 오래전이 생각나는 풍경.
4 장화를 신고 여전히 바쁘게 오가는 막걸리 장인의 모습.
5 효모가 발효되는 종국실 풍경. 오래전엔 오동나무 국함을 사용했지만 요즘엔 플라스틱으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현재 가격 정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