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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장 May 16. 2018

필라테스, 습관의 묘약

운동 3부작 - (1) 

삶의 습관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일상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가능하다. 틀어진 체형 교정을 위해 시작한 필라테스를 통해 삶의 습관을 다시 쓰게 된 채소장의 ‘75번의 PT가 일으킨 기적’과 마음가짐의 묘약에 대하여.



어쩌다 운동은 호객행위가 됐나

‘핫요가로 확실한 체지방 감량을 느껴보세요! 고급 요가 매트 증정. 선착순 모집.’ ‘아직도 뚱뚱하고 못생기셨나요? 이제는 못생기기만 하세요! 000 피트니스.’ 오늘만도 벌써 여러 장의 홍보 전단지를 받고 말았다. ‘운동해야 하는 건 나도 알고 있다고!’ 이 값싼 마케팅은 제 주제도 모르고 사람들의 심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때로 얇은 종이 한 장의 부추김은 가뜩이나 버거운 삶에 또 한 번의 파장을 일으키며 건강과 아름다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자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강력한 동기부여로 이어지긴 힘들어 우린 3개월 혹은 6개월간의 요가 혹은 피트니스센터 등록금을 작심삼일로 날려버

리기 일쑤다. 내가 필라테스 전문 학원으로 발길을 돌린 건 적어도 이런 전단지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종목’이기 때문이었는데, 그건 아주 계획 없이 이뤄졌지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언젠가 지인이 추천한 내 첫 번째 필라테스 학원은 ‘시작은 제대로’라는 오랜 캐치프레이즈에 힘입어 선택한 신사역 부근의 시설 좋고, 넓은데다 강남의 야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진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돼 PT 24회를 끊었다. 아마 그날의 상담사가 개떡같은 설명을 했더라도 신용카드를 내밀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그녀는 그즈음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호감가는 한 마디를 날렸다. “운동을 안 할 수없게 만드는 끈질긴 선생님으로 붙여드릴게요!”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거나 혹은 해 오던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생각해보면 30대가 된 이후로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선배 바쁘죠?” “차장님, 너무 바쁘신 거 아는데요….” “네가 시간이 나겠니.” 꽤 오랜 시간 사람들은 이런 ‘미사여구’를 통해 내가 스스로를 바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바쁠 때도 많았지만 더러는 바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 7월 17일에 일어난 나의 필라테스 학원 등록 사건은 체형 교정이라는 명목을 앞세운 ‘내 삶의 빈틈 만들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날마다 ‘리셋’

“자, 호흡을 천천히 내쉬면서 머리부터 천천히 숙여 척추를 하나씩 하나씩 말면서 스트레칭할게요. 어깨에 힘은 빼시고요. 올라올 땐 배에 힘을 주고 천천히….” 필라테스는 ‘천천히’와 ‘하나씩’의 운동이었다. 매시간 가장 먼저 하는 이 스트레칭 동작은 내 뼈와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준비운동이자, 며칠 전 교정한 몸이 어김없이 삐뚤어져 예전의 제자리로 돌아갔음을 환기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잠깐, 필라테스에 대해 소개하면 우선 창시자는 조셉 필라테스다. 그는 1945년에 쓴 자신의 저서 <Return to Life>를 통해 이 운동요법을 ‘조절학(Contrology)’이라 불렀는데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과 나쁜 자세, 불균형한 호흡을 건강을 위협하는 3가지 요인으로 손꼽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 원리를 강조했다. 바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집중’하고, 몸의 ‘중심’을 확실하게 느끼며, 파워 하우스(아랫배와 엉덩이 부분)를 깨우기 위한 ‘호흡’을 적용하되, 동작의 난이도에 맞게 운동할 수 있는 ‘조절’ 능력을 갖추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동작과 동작 사이의 ‘흐름’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알고 보니 필라테스는 ‘거북목 증후군’으로 언제나 뻐근한 목과 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던 내가 꼭 해야 했던 운동이었다. 그동안 나는 이렇게 환상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두고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10번 하고 나면 느낌이 다를 것이고, 20회 하고 나면 눈에 보이게 달라질 것이고, 30회 하고 나면 당신의 신체가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예견한 조셉 할아버지의 말이 더러 와 닿는 순간들도 경험했다. “너도 필라테스 해 봐.” 어느새 나는 이 말을 달고 살면서 지인 중 필라테스인들을 만났을 땐 어김없이 상대의 코어를 만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여기, 여기 코어랑 등 근육 만져볼래요?”라며 복부와 등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프리 필라테스와 매트 필라테스를 비롯해 리포머, 캐딜락, 체어, 스파인 코렉터, 레더바렐 같은 기구를 옮겨 다니며 트레이닝해도 몸속 코어가 도무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운동 후 리셋? 주 2회, 각 1시간씩의 운동 효과는 심적 만족보단 적었다. 더러 있었더라도 장거리 출장을 다녀오면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짧은 시간에 근력을 소환하기엔 여전히 나쁜 자세로 일관하는 삶의 저항력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흥미로운 목표가 생겼을 때 나는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이쯤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내 몸의 관성에 맞설 사소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행법을 다시 배우다 “목 빼고 걷지 마세요!” “목이요, 목!” 작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리는 트레이너의 목소리. 앞으로 빠진 목과 걸음걸이를 지적받으면서 좀 다른 접근으로 근력을 쌓아올리고 있는 이곳은 한남대교 남단에 위치한 나의 두 번째 필라테스 학원이다. 24회의 퍼스널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 후배 에디터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곳을 소개받았는데 ‘30분’ 단위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게 선택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운동 시간이 1시간에서 30분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비용도 반으로 준다는 의미어서 부담이 줄었고, 트레이닝 시간 앞뒤로 유산소운동을 추가하면 총 운동시간은 기존대로 1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지난 24회 레슨은 생각 없이 써내려 간 ‘자세 교정, 근력 증진, 복근 강화’라는 목표를 채우기엔 터무니 없는 시간이었다. 다만 비싼 강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규칙적인 플랜을 세울 수 있게 됐고, 단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탄력성’이 향상됐다. 회복탄력성이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고 주위를 돌아보며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중간중간 비워낸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나의 두 번째 필라테스학원에서 건진 성과는 놀라운데, 무려 걷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앉아서 생활하는데 자가용이나 버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걸을 일이 적다 보니 정확하게 발의 아치를 사용한 보행법을 잘 몰라요. 트레드밀에 올라가서 다리를 직각으로 들고 뒤꿈치부터 엄지발가락까지 천천히 발 안쪽 아치를 쓰면서 걸어보세요. 이때 목의 긴장은 빼고, 어깨의 밸런스를 맞춘 다음 견갑골을 조이세요. 복부에 힘 주시고요.” 트레이너의 말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그동안 직립보행형 인간이 맞았나’ 하는 의문과 동시에 ‘뭐야, 이렇게 걷는 거였어? 이거였다고?’라는 반문으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이 보행법을 요즘은 길을 걸으면서도 적용하고 있는 중인데 (이제야) 제대로 걷는 것만으로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발의 아치를 사용한 보행법과 파워 하우스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는 연습을 같이하다 보면 몸의 안쪽 근육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게 균형을 이루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지난 24회의 레슨과 달리 매일의 컨디션을 따져 내 몸의 균형을 찾아주는 근육 이완과 근력운동을 반복한 이번 51회의 레슨은 ‘주 2회, 겨우 30분씩의 트레이닝이 일으킨 반전효과’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타이트한 근육을 시시때때로 풀어주니 우선 생리통이 싹 사라졌다. 퇴근 후 폼 롤러를 활용해 스트레칭하는 횟수가 늘고 있고, 교정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매시간마다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릎 사이에 15cm 크기의 오버키 볼을 꼭 끼고 앉아 척추를 곧추세우고 최대한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며 원고를 쓰고 있다. 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씩 깔아놓은 매트는 좀 미워 보이더라도 내 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소품으로 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단, 체중 감량 효과는 전혀 없다. 운동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더 많이, 더 즐겨 먹기 때문인 것 같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삶에 

중심을 잡고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필라테스는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발목을 선사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기분 좋아지게 할 힘이 

분명히 있다.



그깟 8개월간의 필라테스

오늘날 경제학자는 물론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혹은 소설가나 에세이스트에 이르기까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그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무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자주 행복을 느끼지 못한 건 세대의 특이성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여지나 노력을 적게 하면서 에너지를 흘려보낸 탓이 클 거다. <심리학자, 운동을 말하다>를 쓴 마이클 오토와 제스퍼 스미츠는 ‘운동 자체도 일종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하지만 운동하면 우리 몸이 다른 스트레스 요인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운동은 우리 몸이 특정한 요구에 적응하라고 떠미는데 이렇게 규칙적이고 계획된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대체로 몸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필라테스라는 규칙적인 스트레스를 유지한 덕분에 보다 행복해졌다고 자부한다. 그러면서 만족스러운 삶의 한 요소를 체험할 수도 있게 됐다. 지금 이 생각이 단지 플라시보 효과일지라도 지난여름, 필라테스 학원으로 내 등을 떠밀었던 미풍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하지만 자세가 좀 나아졌을 뿐 나는 아직 코어도 갖추지 못한 애송이 필라테스 예찬론자에 불구하다. 그리고 내가 코어와 복근에 집착하든 말든, 내 트레이너는 몸의 축이 돼줄 발목 트레이닝을 가장 우선시한다. “직립 보행하는 우리가 제대로서 있으려면 디딤돌인 발과 나머지 몸을 지탱해 주는 발목의 역할이 중요하니까요. 나머지 뼈나 근육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발목이고요.” 혹시 자신의 삶에서 에너지가 줄줄 새나가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속는 셈치고 필라테스 강습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 교육심리학 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말대로 현대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스스로의 삶에 중심을 잡고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필라테스는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발목을 선사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기분 좋아지게 할 힘이 분명히 있다. 마음가짐과 좋은 습관이 바로 그 묘약이다.






*<ELLE Korea> 2016.03에 게재된 아카이브 편집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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