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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Feb 03. 2020

실존적 똥 폭풍을 헤쳐나가려면?

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고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은 적이 있다. 일단 신경을 끄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쓰레기통에 처박혀 다리만 보이는 발바닥 위에 새가 멀뚱히 앉아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어떤 꼬마가 싸이의 춤 동작을 추면서 노래했다.

"나 완전히 새됐네~~~"

그래서 한참 웃다가 다시 눈여겨본 표지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이라는 글자가 에 띄었다.

나의 책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를 쓴 뒤라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긴다'는 의미가 더 와 닿던 것이다.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책에는 그렇게 쓰여있지만, 지금까지 나는, 우리는 ,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고 신경 쓰고 열심히 살아가라고 훈련받으면서, 내가 나를 다그치면서 살아왔던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 책을 골랐고 읽기 시작했다.


근래에 책을 읽고 기록해 둔 다이어리를 다시 보면서 혼자 키득거렸다. 그때도 감탄스러웠지만, 다시 봐도 감탄스럽기 그지없는 황홀한 표현 때문이다.

들어는 봤나, '똥 폭풍'!!!


너 & 나
우리, 함께여서 다행이야

책 한 권을 탈탈 털어서 한 줄을 건진다면 나는 단연 이 부분을 고를 것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없을 것 같은 명문, '똥 폭풍' 이란 글자가 나에게 엔도르핀과 삶의 의지를 무한 제공하고 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겠다'의지도 '똥 폭풍'이상의 강력한 힘이 없을 것이다.

인생의 재난 상황. 똥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길은 말 그대로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코와 눈을 가리고, 최대한 몸을 낮춰 똥에 덜 맞고 덜 묻는 수밖에 없다. 똥 폭풍이 지나가기를 지나갈 수밖에.

우리에겐 일종의 실존적 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객관적인 눈으로 내가 지금껏 인생의 의미를 어디서 찾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기, 실존적 위기를 겪기, 똥 폭풍을 헤쳐나가기!!! 고통은 과정의 일부' (중략)
- <신경 끄기의 기술> 중에서...

우린 똥 폭풍이라는 실존적 위기 앞에서 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재점검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서 의미를 찾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야 그걸 딛고 올라가고 싶은 방향이 보인다. 지지리도 복 없이 살았다고 느껴진다면 이젠 복도 좀 받고 싶고, 가난하고 궁색하게 살았다면 이젠 돈 벌고 당당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고, 하는 일마다 안되고 절망했다면 이젠 날개를 훨훨 펴고 날아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책에서는 인생의 바닥을 똥 폭풍이라는 유쾌한 명제로 표현했다. 그 이상 찰떡같이 와 닿아 붙어버리는 표현이 또 있을까.


옛날 드라마에도 나온 적이 있고, 한국어 표현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거나 어이없는 상황, 헛소리하는 누군가에게 퍽큐를 날리듯 내뱉는 말.

"아나 똥이다!"

이 말은 '야!, 여기에 똥이 있어, 헛소리 말고 이거나 먹어'라는 의미로 정감까지 넘치게 느껴지는 말이다.

듣는 이에겐 실로 '실존적 똥 폭풍'에 해당하는 충격을 주는 고급 어휘가 아닐 수 없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에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도 많이 나오지만, 그 말들의 집대성이다. "문제없는 삶을 꿈꾸지 마, 그런 건 없어,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꾸도록" 하라고 말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나는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고통을 견디고 이길 수 있길 바란다. 다투고 싶지 않지만, 나의 행복과 내 삶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쟁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나의 책, 내 인생에서 '남편'을 다는 것은 중의적 표현이다. 단지 남편을 뺀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존한다거나 내가 내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 삶에 위협으로 다가오는 존재는 과감히 빼겠다는 뜻이다. 내 행복과 꿈에 위배되고 함께 갈 수 없는 존재나 모든 상황에서 내가 빠지겠다는 의미이다.

게임을 할 때 지든 이기든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길 게임인지, 지게 될 게임인지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끝까지 가볼 것도 없다 여겨지는 게임은 중간에서 꺼버리는 것도 내 선택이다. 재미없는 게임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게임이다. 즐겁지 않은 게임이다. 애초에 그건 내가 원하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행복에는 투쟁이 따른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행복은 문제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성취감은 자신만의 투쟁을 선택해 감내함으로써 얻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신경 끄기의 기술.

실존적 똥폭풍에서 살아남은 스승들을 찾아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

풍이 휘몰아칠 때는 신문지라도 덮어쓰고 웅크리든지, 삽이라도 들고 몰아치는 똥 폭풍을 받아쳐내던지. 똥 폭풍이 가라앉으면 깨끗이 3박 4일을 씻어내고 (그래도 똥 폭풍의 여운은 가시지 않더라도) 머릿결을 휘날리며 향긋한 꽃길 찾아 걸어 나가는 당함도 갖출 일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의 바닥을 치고 올라가며 득도한 기술이 최고로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닐때 신경을 꺼버리는 것, 그 또한 신경끄기의 기술이 아닐까. 단, 내 인생이 아닌 다음에야.

내 인생에서 신경을 꺼버리면 그것이 바로 실존적 똥폭풍인 비상상황이다. 내 인생에서 신경을 끄지 마라, 고통은 과정의 일부이다.  

똥폭풍을 헤쳐나가 태풍의 가운데로 들어가면 잠잠한 눈이 보인다.

현재 나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가두는 폭풍이 내 삶에 휘몰아치고 있다면, 찻잔 속의 폭풍이 찻잔을 넘기를.

내 삶 전체가 폭풍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폭풍은 그저 찻잔 속의 폭풍임을 깨닫기를. 금새 잔잔해지고, 그저 찻잔 속에서 멈추어버릴 소용돌이쯤으로 신경을 끌 수 있기를.


신경끄기의 기술을 읽고. by 아인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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