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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Oct 01. 2019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행복에 대한 두려움, '안헤도니아'

사랑하는 그녀 클로이와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 그는 어느 날 비롯된 클로이의 극심한 통증에 몹시 걱정이 된다.


"뭔지 모르겠어. 머리가 갑자기 심하게 아팠어. 콱콱 쑤시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닐 거야. 아, 아냐 젠장, 또 시작되네."



통증을 호소하는 클로이를 보다 못해 그는 달려가 의사를 수소문해서 불러왔다.

그녀의 고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닥터 사베드라는 안헤도니아라고 진단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하다고 규정한 병이었다. 스페인의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한 병이라고 했다. 이곳의 전원적인 풍경에 들어오게 되면 갑자기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면, 행복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길 정도로, 생리적 반응이 몸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간 곳은 스페인 발렌시아 뒤편 산속의 아라스 데 알푸엔테라는 마을, 그곳에 개조한 농가에서 지내며, 테라스에는 덩굴식물이 그늘을 드리웠고, 근처 호수에서는 수영도 할 수 있었다. 이웃에는 염소를 한 마리 기르는 농부가 있어서 그들을 반갑게 맞으며 올리브기름과 치즈를 선물로 주었고, 수영을 하러 가서는 맑고 파란 물에 뛰어들었다가 시드는 햇볕을 몸에 말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테라스에 앉아서 포도주 한 병과 올리브를 꺼내놓고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클로이는 말한다.


"여기서 평생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시작되는 통증...

클로이의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아서 결국 의사를 부르게 된다. 아스피린을 먹었으나 잠을 자지 못했고 그녀는 복통과 두통을 호소했다.


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그냥 머리에 안헤도니아가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행복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 무의식적으로 불안해할 수 있다.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영원할 수는 없을 텐데 어떡하지...' 하는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과 의심, 염려... 바로 옆에 온 행복에 대해 오히려 잃을까, 내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심리.


*헤도니아(행복)


영원하지 않을 행복, 다시없을 그 행복이라면 행복이 찾아온 순간 더 소중하게 가꾸고 나누는 것, 그것이 행복을 이어갈 수 있는 방편은 아닐까.

무지개 너머의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기대 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 작은 일상 속 무수한 만남과 시간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행복을 찾아 가꿔나가고 싶다.


"무례하게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의 즐거움을 넘겨버린 일이 많지 않을까?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겠지만, 완전히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사랑의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생각해본다.


다음에 스페인 아라스 데 푸엔테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행복한 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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