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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Sep 30. 2019

마리안 파워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 중에서

"돈이 없어서 깨달은 교훈은 이랬다. 돈이 없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청구서를 지불할 돈이 없고 집을 잃을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면 정말 무섭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을지라도 안전이 보장되는 집은 살 수 있다. 돈이 없어지면 다른 것들도 전부 사라진다. 물론 어떻게든 버티기는 한다. 삶은 계속되니까. 나름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엄마는 집에 계속 돈이 많았다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도, 직업적으로 그렇게 성공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됐다고도 하신다."

-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 중에서



'정말 무섭다'는 표현을 봤을 때, 나는 정말 무서웠다는 것에 공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감당했던 '월세'내는 날짜는 어쩜 그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월세를 내고 나면 또 월세를 내고, 한 달에 두세 번 내는 기분이 들었다.

통장에 얼마가 입금이 되면, 모이기 무섭게 월세로 빠져나갔다.

아마도, 그 당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월세'였던 것 같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을지라도 안전이 보장되는 집은 살 수 있다'는 말에는 공감을 못하겠다.

돈이 없어서 힘들 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명의의 내 집에서조차 나는 위협을 당하거나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의 표현에 공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의 저의는 이해한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는 것이나, 돈으로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갈 수는 있고, 안전이 보장되는 집은 살 수 없으나 안전이 보장되는 곳으로 갈 수는 있다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돈이 있다면.


어렸을 때 내 작은 손으로 잡으면 한 뼘 가득 들어오는 높이의 약상자가 있었다. 그 약상자를 열어보면 그 안에는 복권이 가득 들어있었다. 하나도 맞지 않은, '꽝'인 복권들.

왜 모아두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빠가 한 번씩 사신 복권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한글을 읽히고, 역사를 배웠다.

어떤 때는 우리나라의 역사 유적지 시리즈 복권이, 어떤 때는 꽃 종류 시리즈가, 어떤 때는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가 소개되어 있었다. 불국사, 다보탑도 복권을 통해 처음 보았고, 무궁화 장미 해바라기, 붓꽃, 나팔꽃 온갖 꽃 이름도 복권으로 익혔다. 우리나라 산천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은지 금수강산이라는 말도 복권을 통해 익혔고 우리나라 고유음식들, 풍물도 복권 앞면의 사진으로 접했다.

나는 복권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카드였고, 놀이였고, 교재였다. 딱지도 접고, 가위로 오리고 그림도 따라 그렸다.

그런데 나는, 내 키가 한 뼘 더 자랐을 때, 더 이상 복권을 볼 수 없었다.

아빠가 더 이상 복권을 사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한 장 두 장 사셨던 복권이 당첨되지 않자 어느 날부터는 마음을 접으셨던 게 아닐까.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복권에 희망을 품지 않고, 묵묵히 성실히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빠에게 내가 복권이고, 복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 내가 꿈꾸는 '나의 복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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