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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명상, 시끌벅적하면 안 돼요?

[생각편집숍 아이템 06] 시끄러운 명상 타이머

by 이승주
목욕의 신.jfif [휙!휙! 이건 권투가 아니라 명상인 것이여! (출처: 웹툰 목욕의 신)]



“자, 호흡하세요. 들숨에 후~, 날숨에 하~!”


한때 요가를 다니며 '명상'을 배운 적이 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손을 배꼽 주변에 모으고. 머리를 맑게 비우는 호흡에 집중하며,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분명 '잡념'을 비우는 것이 명상의 기본이라 했는데. 이상하게 그 '비우는 일' 만큼은 쉽게 실천하기 어려웠다. 온갖 명상앱을 전전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오히려 내 머릿속은 더 시끄러워졌을 뿐. 오히려 내 두뇌는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명상이라고? 자꾸 잡생각만 떠오르는데? 그리고 잘 봐! 다 비슷비슷한 앱뿐이잖아!'


실제로 회사에서 유일하게 풀리지 않았던 딱 한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명상 APP'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로마 향초, 싱잉볼, 그리고 고요한 티베트 느낌의 음악까지.


후아! 이건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전혀 다른 명상을 원하고 있었다. 저 미국의 유명한 동기부여 코치 '팀 페리스'의 화려한 쇼처럼. 같이 수다 떨고, 웃고, 울고, 심지어 격하게 춤까지 추는 그런 '시끄러운 명상'을 말이다.


명상을 '놀이'처럼 즐길 수 없을까?


그래서 내가 떠올린 한 가지 생각은 이것이다. 명상을 '놀이처럼, 축제처럼' 즐길 수 없을까?


사실 명상의 목적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생각의 정화', 맑은 생각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생각의 맑음'만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주변이 조용하든 시끄럽든 특정한 '격'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실제로 '명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목욕'의 역사를 찾아 기원후 216년 로마로 떠나보면, 카라칼라 황제가 완성한 세계 최대 목욕 단지 '테르마이'가 나온다.


이 목욕단지가 얼마나 컸는지, 한 건물에서는 한 번에 1600명이 동시 목욕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크기를 쉽게 비유하면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혹은 '축구장 7개'를 나란히 붙인 정도였다고. (이건 지금 기준에서도 대단하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이 목욕탕의 크기가 아니다. 바로 목욕탕에서 '잠잠한 명상'이 아닌 로마 특유의 '시끌시끌벅적한 토론문화'가 이어졌다는 것. 가령 유명 철학자들은 목욕탕을 아예 토론의 장소로 삼아 논쟁하고, 정치인들은 목욕을 하며 이런 은밀한 이야기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갈리아 정복해? 아님 말어?”


심지어 목욕탕엔 운동장, 도서관, 상점, 간이식당을 설치해 늘 시끌벅적했고. 목욕을 즐기는 와중,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조각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명상의 조용함' 대신 '명상의 수다스러움' 내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다채로움'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명상이었어!”


러시의 바쓰밤, 고요함을 거부한 감각 폭발 놀이터


비슷한 결로, 내가 유독 사랑하는 브랜드가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러시(Lush)다.


러시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야말로 코가 먼저 반응한다. 라벤더, 로즈, 시트러스, 민트 등 온갖 향들이 정말 화려하게 확 몰려든다. 분명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입욕제'를 파는 곳인 만큼, 명상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브랜드일 텐데, 솔직히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긴 그야말로 향기의 시장통!


특히 분홍, 파랑, 보라, 금색, 반짝이는 글리터까지 박혀 있는 바쓰밤들을 보면, 마치 '외국 사탕 가게'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무슨 맛이 나나, 고요히 입에 대어 보기도?)


그래서 나는 '화려한 명상'을 즐기고 싶을 때마다, 러시의 입욕제 여러 개를 기분대로 골라 욕조에 풍덩 빠트려 버린다.


“슈우우욱!”


바쓰밤이 물에 녹기 시작한다.


우선 시원한 탄산수 같은 소리가 나고, 무지개 같은 색이 스르륵 번지고,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나고, 곧이어 '이상한 솜사탕 나라'에 온 것 같은 재미있는 향기가 퍼진다. 달리 말하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모두 깨어나는 '오감 축제의 시간!'


그리고 이 공간에 그날 땡기는 BGM까지 틀어주고 나면 (그것이 트로트든, 팝송이든, 애시드 재즈든) 여기가 바로 '내 세상'이다. 또 한 번 강조하면, 이건 '고요한 명상'과 확실히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감각의 향연'이다. 조용하지 않고, 시끄럽고 화려해도, 오히려 더 감각이 확실하게 깨어나는 맑은 명상!


'러시(Rush)'의 모토가 '다채로운 놀이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난 이렇게 시끌벅적한 목욕을 하며, 혼자 생각을 주억거린다.


굳이 요가원에서 명상을 해야 해? 이렇게 바쓰밤 몇 개로 충분한 것을.


그래서 내가 꿈꾸는 명상의 세계는


그래서 내가 꿈꾸는 명상의 세계는, 한마디로 '시끄러운 리츄얼'이다.


고대 로마의 화려한 '테르마이' 같은 곳에 모여 시끄러운 '토크', '댄스' 혹은 '개인적 플레이'를 멋대로 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같은 장소.


일단 내가 '멋대로 나를 뽐낼 수 있는' 복장 장착은 필수! 누가 굳이 무채색 혹은 젠한 느낌의 가운만 착용하라 하던가. 나는 그 누구보다 팝한 '체크무늬 녹색 가운'을 입고 명상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팝, 일렉트릭, 재즈,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을 초대해 '로봇 강아지'들과 함께 오프닝 춤을 추고. 평소 만나고 싶었던 토크 연사들을 초대해 열렬한 수다와 에너지를 함께 나누는 거다.


주제는 뭐든 관계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오히려 '머리를 완벽히 비우는 순백의 토크'보다 '머리를 치열하게 굴릴 수 있는' 혹은 '편이 확실하게 갈리는 첨예한 주제'를 이야기하면 더 좋겠다.


왜냐하면 '명상'은 그냥 뇌를 편안하게 하는 최면이라기보다, 자신의 본질을 치열하게 마주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왕이면 '독한 혀'를 놀리고, '독한 논리'를 굴리고. 그렇게 제대로 열내고, 당황하고, 시원하게 땀을 빼는 자리일수록 좋겠다. 그래야 내 안의 묵은 체증, 혹은 묵은 고민들을 더 '확' 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독한 언쟁'이 오간 후엔, 다시 '강-약-중간-약'의 리듬을 즐기는 거다. 가령 중간에 '라이트한 마술쇼'를 끼워 넣거나. 다시 기운이 좀 느슨해졌다 싶으면, 치열한 승부가 오가는 '단체 게임'을 다시 넣어도 좋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두가 원주민처럼 '춤'으로 털어버리는 '집단댄스'가 필수다. 물론 여기서도 춤실력은 관계없다. 손만 꺾든, 전혀 근본 없는 몸짓을 하든. 다시 '순수한 상태'로 털어버리는 그 과정을 즐겨보자는 거다. 사실 고대의 모든 '축제'는 광란의 춤으로 끝나지 않던가. 그것은 일종의 주술적 의식이기도 하다. '나의 좋은 기운' 그리고 '모두의 좋은 기운'을 응원하는 경건한 기도의식!


물론, 단체활동만 있어서는 좀 싱겁다. 개인활동도 철저히 보장되어야 할 법.


나는 명상공간에 마련된 나만의 개인 살롱에서, 마음 가는 대로 팔을 젓고, 발을 구르고, 그래서 또 필을 받으면 열심히 공책에 글을 쓸 거다. “이거 뭐 미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명상'의 정의인 것을.


조용히 앉아 있을수록 잡념이 폭발하는 나이기에, 이렇게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면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격렬히 뇌를 쓰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그렇게 스멀스멀 올라온 뜨거운 '열기'와 '생각'을 가장 격정적 순간에 뜨거운 물로 싹- 씻어버리는 과정. 이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상' 경지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내 나름대로 명상에 대해 정리한 메시지가 있다면, 딱 이것이다.


'명상은 형식이 아니라 상태다.'


고요하든, 시끄럽든, 징징거리든, 화려하든. 그건 정말 도무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냥 내 머리가 다시 '맑은 영혼'으로 총명하게 빛날 수 있다면.


사실 '진짜 삶'은 그리 조용하지 않으니까


혹시 하일권 작가님의 <목욕의 신>이란 만화를 읽어본 적 있는지. 누군가는 이것을 그냥 '웹툰' 혹은 '만화'라 하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또 다른 '명상의 시간'이었다.


이 웹툰의 내용은 간단하다. '허세'라는 백수가 인생의 밑바닥 상태로 '금자탕'에 들어오지만, 선배들에게 다양한 때밀이의 기술을 배우고, 손님들과 속 깊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진짜 삶의 태도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시끄럽고 말 많은 스토리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다 명상이었다.


왜? 이게 진짜 '삶'이니까. 고요한 산속은 비현실적이다. 고요한 요가원도 솔직히 비현실적이다.


진짜 삶은 시끄럽다.


사람들 사이엔 늘 소음이 있고, 대화가 있고, 움직임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오히려 '조용한 저 어디' 보다 이 '시끄러운 삶'과 함께 비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


조용히 앉아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생각하고, 또 살아가면서.


[생각편집숍 아이템 06. 시끌벅적 명상 타이머]


*생각도구 : 고요한 정적을 거부하는 명상

*효능 : 그냥 '내 마음대로' 해도 생각이 비워지는 마법


진짜 명상은 산속이 아닌, 삶에서 일어난다.

만약 당신이 '직장상사의 잔소리' 속에서도 평온을 찾을 수 있다면.

사실 그것이 최고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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