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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순 Oct 26. 2024

빈티지가 아닌 빈티지 옷가게(11)

오드아이

  로스앤젤레스 상공에 정체불명의 미확인 비행물체 15대가 포착되다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이후 12,000 피트 상공에 거대한 비행체가 일순 지상에 그림자를 그리며 정지된 채 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공습경보가 발령됐고 육군은 대공포로 일제히 조준 사격을 가했다. 군 당국은 격추되었을 비행체의 잔해를 수거하기 위해 나섰지만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해 데이비드 존스는 태어났다.


  그는 열여섯 살 때 한 소녀를 두고 학교 뒤뜰에서 싸우다가 금속 반지를 낀 조지 언더우드의 주먹질에 왼 눈을 가격당해 응급 수술을 했는데 영구적인 동공 확장을 막진 못했다. 그의 왼 눈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해 깊은 마리아나 해구가 연상되는 코발트블루의 오른 눈이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다.


  혈액형은 나와 다르게 B형. 데이비드 존스에서 데이비드 보위로 개명한 지 이 년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매번 다른 정체성을 부여해 매체에 나타나 앨범들을 발표했고 음악계를 넘어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영화 「라비린스」(Labyrinth)에도 출연해 악역을 맡았다. 이후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 줄리안 슈나벨의 「바스키아」(Basquiat)에 앤디 워홀 역을 맡아 출연했다.


  보위는 가족력으로 인해 언젠가 자신에게도 자폐적 증상이 발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한순간도 죽음과 결부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이복형은 조현병으로 인해 자살한다. 보위는 마치 언젠가 자신이 발현할 조현병을 염두에 둔 듯 매번 새로운 가면을 쓰고 MTV에 등장해 연기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면서도 어쩐지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도 그의 죽음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Space Oddity」를 발표한 직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었고 전 세계인 모두가 지켜보던 가운데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며 “한 사람에게는 단지 조그마한 발자국에 불과하지만, 전 인류에게는 하나의 큰 도약이다”라는 역사에 기록될 준비된 대사를 무전으로 송신한 뒤 무사 귀환했는데 보위의 노랫말 속 톰 소령은 끝끝내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보위는 장발의 여인이 되었다가 화성으로 떠난 뒤 자신이 외계인임을 자백했고 급기야 스스로 관(옷장)에 들어가 죽기로 작정했다. 스스로 관(옷장)의 문을 닫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마지막 앨범 『Blackstar』가 발매된 직후 보위는 소설처럼 사망했고 이러한 모든 극적인 사건을 멀대 남자가 알려주었다. 나는 카페를 한번 빙 둘러보았다.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고 재이와 나는 블랙스타에 함께 앉아 있었다. 벽면에 걸려있는 사진과 그림 속 인물은 모두 한 사람인 데이비드 보위를 가리켰고 그의 마지막 앨범명이 상호가 되었다고 남자가 말하는 와중에도 카페 안은 북적였다. 그러니까 이 블랙스타에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연유는 그 잘난 보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오로지 내가 돈을 들여, 아니 재이의 돈을 빌려 광고 받은 덕분이라 직고하고 싶었는데 그가 먼저 내 가슴께로 손을 내밀며 제 이름은 재희입니다, 하고 소개하는 바람에 맥이 빠졌다.


  “재이요?”

  “재희요.”

  “재이?”

  “재희.”


  두 번이나 확인한 다음에야 정확히 이해한 나는 재이와 재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은 외형적으로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표준 신장에 속하는 재이는 혼자 떼 놓고 보면 제법 커 보였고 그건 전적으로 작은 두상과 긴 팔, 긴 다리 덕분이었다. 재이의 피부는 황갈색을 띠지만 찬찬히 바라다보면 어느새 희멀겋게 변했는데 이는 피부와 상반된 그의 밝고 푸른 눈동자 탓이었다. 눈동자 위로 닿을 듯이 이어진 짙은 눈썹과 두껍지 않은 콧방울, 반달로 유연한 곡선을 그린 턱과 건조한 수염 자국, 좁다란 골반에 비해 직각의 평평한 어깨에 달린 기다란 두 팔이 허리께 아래까지 내려와 매번 두 손이 갈피를 잃었지만 재이의 창백한 눈동자가 모든 시선을 위로 가두었다. 그건 안광과는 달랐고, 마치 어떤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과도 같았다. 재이의 눈동자는 보위를 알게 된 후로 창백을 넘어 마리아나 해구처럼 헤아릴 수 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무심코 재이에게 빠져버린 의문이 조금이나마 풀린 것 같아 내 옆에 앉은 재이를 다시금 바라다보니 또 가늠할 수 없이 깊고 푸르고 신비로워 산소통을 잃은 스쿠버가 되어 심해로 끝없이 빨려 내려갔다.


  “사과받을게.”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여러 번 되물었다.


  “사과받기로 했어.”


  처음에는 심해로 빨려 내려간 스쿠버처럼 정연 선배의 목소리도 함께 아래로 가라앉아 되물었고 나중에는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몰라 되묻고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에야 당시 내 감정이 당황이 아닌 당혹이었다고 타인에게 명확히 구술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나도 모를 감정을 멋대로 규정짓곤 내 속에 머물던 많은 나를 탓했었다.


  “네. 선배, 그때 미안했어요.”


  무려 두 학기나 지나서야 내 사과를 선배가 받아들였다. 비키세요, 이 한마디가 불러온 나비효과를 선배도 나도 몰랐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어려서 비굴한 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선배는 종종 그땐 너무했어, 라거나 여전히 미안하지, 라는 뉘앙스로 나를 떠보았고, 그때마다 나는 사과했고 또 사과했고 또다시 사과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선배와 사귀고 있단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꿈과 희원이 가득한 동산에 자유이용권을 끊은 나는 놀이기구를 무한정 탈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됐음에도 주변 사람에게 마음껏 떠벌릴 수 없었다. 여전히 선배는 그 후배와도 사귀고 있었기에.


  “눈이 오묘하네요.”


  심해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재희가 건져내 주었다.


  “저요?”

  “재이 씨요.”


  재이는 예가체프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음미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는 재이의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카페는 한산해졌다. 붉은빛이 공기에 묶여 간신히 옅게 번진 채로 바 테이블에 닿았다. 드립포트를 쥐고 커피를 내리는 재희를 올려다봤다. 큰 키만 눈에 익었는데 자세히 훑어보니 눈 끝보다 긴 얕은 눈썹과 선명한 콧대에 비해 작은 콧방울과 콧구멍, 햇볕에 그을릴 거 같지 않은 모공이 없는 흰 피부, 드립포트를 쥔 가느다란 손가락마다 탈색된 솜털이 보였다. 그의 외관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온통 우겨대는 통에 뒤로 뺀 내 어깨도 모르는 사이 앞으로 뉘어져 무장을 해제한 채 물었다.


  “아인슈페너를 비엔나라고 쓰네요?”


  재희는 흐트러짐 없이 커피를 내리며 대답했다. 그거 아세요? 원래는 비엔나로 쓰다가 다들 아인슈페너로 바꾼 거예요, 하고 드립포트를 바 테이블에 천천히 내려두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모두 비엔나라고 쓸 때 저는 아인슈페너라고 불렀고 아인슈페너라 쓸 때 비엔나로 바꾼 거죠.”

  “그럼 다들 협심이라도 해서 비엔나로 다시 바꿔 쓰면 아인슈페너라고 쓰겠네요?”

  “네. 그럴지도.”


  한숨이 밀려왔다. 도대체 뭐가 우스운지 재이는 옆에서 혼자 키득거렸다. 나는 가슴께에 놓인 머그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재희는 내가 든 머그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비엔나커피는 뭐든 올려 마실 수 있어요. 아이스란 없거든요. 차가우면 원두의 향이 죽으니까. 뜨거운 커피 위로 차가운 걸 올려 마셔야 해요.”


  여기엔 찬 음료가 없었다. 그 흔한 제빙기가 일으키는 소음조차 없었고 개방된 조리대에 비해 카페가 동굴처럼 고요했다. 재희는 블랙스타를 찾아온 손님에게 찬 음료가 없다며 매번 부연설명을 덧붙였고 덕분에 홍보가 되기 전까진 대부분 주문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제야 왜 이제껏 이 카페가 텅 비어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아이스크림을 올려달라고 부탁하면 올려주나요?”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지금 마련할까요?”


  재희의 기세에 더는 물어보기가 곤란했다.


  “왜 옷가게 이름이 이름으로 된 건가요?”


  곤란한 질문엔 곤란한 질문으로 답한다고 재희가 곤란하게 물어왔다. 나는 왜 가게 이름이 '이름'으로 되었는지 말해주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재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칸트의 물자체 같은 거군요.”


  물과 자체는 알지만 물자체는 몰랐고 담배 켄트는 알지만 칸트는 몰랐기에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을 거라고 웃어만 보였다. 서둘러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그잔이 예쁘다거나 노출 콘크리트와 화이트 앤 블랙으로 채운 내부 인테리어가 모던하다거나 보위란 아티스트는 몇 살까지 살았는지, 신고 있는 첼시 부츠의 굽을 뺀 키는 몇인지, 성형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는지, 하루 매상이 얼마나 나오는지, 당신 정말 빈티지엔 관심이 없는지, 그냥 우리 가게에 진열된 빈티지에만 관심이 없던 건지 물어보기엔 바를 틈에 두고 나를 내려다보는 재희의 눈빛이 너무나 진솔하게 느껴져서 그가 억지로 꾸며낼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아무런 물음도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대신


  “이 그림은 조지 언더우드의 작품이에요.”


  하고 숨겨둔 초콜릿을 내게 건네 듯 말을 꺼냈다.


  “보위를 오드아이로 만들었다는 그 친구 말이죠?”


  조지 언더우드의 주먹을 맞은 보위의 왼 눈동자는 색을 잃어가며 결국 동양인처럼 갈색을 띠게 되었다. 보위는 자신의 왼 눈을 가격한 조지 언더우드를 유년 시절 내내 원망했는데 훗날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자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고마움을 전했다. 오른 눈은 서양, 왼 눈은 동양을 담고 보위는 동서양을 오가며 활약했다. 때마침 카페에는 그가 발표한 「China Girl」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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