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커피에 빠트린 냉동 파인애플
처음부터 ‘빈티지’란 단어가 뇌리에 박힌 건 아니었다. 학기 초 정연 선배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고 마주치게 되면 인사 정도만 나누던 사이였다. 그래서 도서관 중앙 계단의 층계에서 맞닥뜨린 선배에게 저기, 선배님, 하고 내가 용기 내어 먼저 물었을 때 응, 하며 선배가 행성만 남아 궤도를 잃은 태양처럼 나를 흐리멍덩히 쳐다보며 대답했을 때,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하고 몽실하게 묻기라도 했다면 별로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숫기가 없고 낯도 가리고 심지어 대인기피증까지 있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비키세요!”
아니 비키세요, 라니. 여전히 침대에 누우면 그 장면이 아른거려 이불을 찬다. 흠칫 놀란 선배는 “미안”이란 손짓만을 허공에 잔상으로 남겨둔 채 서둘러 나를 비켜 지나쳐갔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지만 미안, 이 한마디조차 선배의 목소리는 산소통을 잃어 심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스쿠버가 외치는 필사의 구조 요청처럼 내 귓가에 가닿기도 전에 모두 바스러졌다. 정확히는 선배가 밀폐된 장소에 있을 때면, 조별 과제 발표로 강단 위에 설 때면 내뱉은 말의 절반의 절반 정도만이 오롯이 살아남아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선배가 하는 말들 이국적이지 않니?”
발표를 마치고 강단 아래로 내려오는 선배를 지그시 응시하던 이경이 수줍은 얼굴로 볼펜을 휙 돌렸다. 지금이면 그거 그냥 어눌한 거야, 하고 정곡을 찌를 테지만 그때 나는 이경이 꺼낸 이국적이란 표현에 완전히 매료당해 선배가 마치 오래된 프랑스 무성 영화 속 불어를 쓰던 T존이 선명한 외국 배우처럼 느껴져 낯선데 와락 품에 안기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이후 정연 선배와 또 한 번 만남의 자리가 있었는데 조교가 주선한 술자리였다.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학과 담당 교수였던 김 교수가 아끼던 은색 펜텔 만년필이 사라져 조교가 학과생 모두를 한곳에 모아둔 채 술을 먹여 떠볼 참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그 만년필. 말이야. 얼만지. 알아? 교수님이. 그러던데. 이십만 원이랬나 그래. 내 월급으론. 꿈도 못 꿀. 만년필이지. 너희들에게도 그럴 테고. 욕심이 날 만 해.”
조교는 도마에 올려둔 냉동 생선을 둔탁하게 썰 듯 말의 마디마디를 토막 내 끊어가며 이어갔는데 그 순간마다 둥글게 마주 앉은 순진한 동기들과 눈을 한 명씩 맞춰가며 의심했다. 자기가 무슨 관심법이라도 발휘해 범인을 색출해낼 수 있다고 믿는 건지 한껏 무게를 잡아 올라오는 기침마저 함부로 뱉을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런데 말이야. 그게 또 가격 문제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교수님 작은딸이 사준 생일 선물이래. 알아? 생일 선물.”
순간 그런데 말입니다, 의 진행자 목소리와 겹쳐 들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조교는 자기가 우스운 존재라는 걸 전혀 모르는 듯 연신 진지한 얼굴로 소주잔을 허공에 뻗었다. 교수가 얼마나 괴롭힌 건지 손톱 위로 거스러미가 잔뜩 나 있었다.
“이 한 잔에 다 솔직해지는 거야. 좀 살고 보자.”
우린 건배를 했고 또 건배를 했고 또다시 건배를 했고 범인은 나오지 않았고 또 범인은 나오지 않았고 또다시 범인은 나오지 않았는데 조교도 우리도 여태껏 무탈하게 잘 살아남아 있다, 는 옛날 옛적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건 의심의 눈빛으로 가득했던 조교가 아니라 나의 맞은편에 앉아 지구평편설을 믿는 신도 같이 기묘한 표정을 잔 위에 올려놓던 선배였다. 선배는 보기보다 주량이 약해서 우리가 세 번을 건배할 동안 한 잔만 마셨고 그마저도 마지못해 삼켰다. 할리 데이비슨의 라이더 재킷을 입은 선배는 우리 중 제일 취한 사람처럼 두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양옆에 앉은 선배들이 근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잔을 드는 시늉을 하는 선배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술자리 내내 맞은편에 앉아 선배의 짙은 눈썹과 우수에 찬 눈동자만 빤히 관찰했기에 선배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늦은 새벽이 되자 모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했다. 그때까지도 멀쩡한 건 나와 선배뿐이었다. 모두가 확실히 취한 걸 확인하고서야 선배는 취하지 않은 사실을 자백이라도 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한 번을 비끗대지 않고 화장실까지 바르게 걸어갔다.
“정연 선배.”
볼일을 보고 돌아와 흐트러짐 없이 앉는 선배를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선배는 따분하단 표정으로 대꾸 없이 나를 노려봤다.
“미안했어요.”
“언제?”
“그, 그때요.”
“어디서?”
“그, 그 중앙 계단에서요.”
“무엇을?”
실망스럽게도 선배는 육하원칙대로만 대답했고 그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이자 넓이였다. 모른 척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선배는 끝끝내 내가 건넨 잘 익은 사과를 받기는커녕 한 입조차 베어 물지 않았다. 정정하자면 선배는 또렷했고 나는 조금 취해 모든 게 흐릿했다. 우리는 첫차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까워진 기분보다 거리감만 확인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 로는 취조 이상을 벗어나질 못했고 선배 앞에 죄 없는 범죄자가 되어 이유 없이 벌벌 떨었다. 내 감정을 들킬까 하는 염려가 닭살로 피어나 단둘이 마주한 순간이 꼭 편하지만도 않았고, 내가 세 번이나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틴트와 파운데이션을 덧바를 동안 다행이라면 선배는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 한마디만큼은 선명히 기억한다.
“옷 좋아하니?”
패션에 아무런 취미가 없던 나는 잘 보이고 싶단 마음에 무턱대고 좋아한다는 말부터 뱉고 보았다. 그러자 처음으로 선배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담아 웃었다. 순간 내 입이 아니라 뇌가 따라 웃어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이경의 미소가 토마토 젤리라면 선배는 뜨거운 커피에 빠트린 냉동 파인애플 같았다. 쩌릿하게 내 인중을 타고 옥시토신이 삐쳐 나가 이후 선배가 했던 모든 말, 옷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고, 많은 사람을 거친 옷일수록 그만큼 많은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래서 자기 안에 다양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이데올로기란 급행열차를 타고 낡아버린 히피 같은 말. 이건 대화라기보다 반세기 전에 녹화한 인터넷 강의 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오로지 듣기밖에 할 수 없는 일방적인 대화 구조였다. 얼마간 지났을까, 날이 밝았고 첫차 시간이 스멀스멀 다가오자 다급해진 나는 용기를 냈다.
선배, 혹시 번호 알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자 나는 아무 말이나 덧붙였다. “숫자를 좋아해서요.” 대꾸가 없었다. “저는 010을 좋아해요.” 대꾸가 없었다. “앞으로 해도 010, 뒤로 해도 010.” 대꾸가 없었다. “저도 그 많은 영혼과 함께하고 싶어요.” 다행히 선배는 이 한마디에 드디어 반응했고 뜨거운 커피에 빠트린 냉동 파인애플처럼 내 앞에서 보조개를 패며 이미 자기 연락처는 가지고 있지 않으냐며 되물었다. 그러고는 자기 폰을 켜서 내 연락처를 보여주었다. 분명 내 번호였다. 학기 초에 학과장이 학과생들 연락처 돌린 거 못 받았냐고. 나는 못 받았다고. 그러자 선배가 내 폰을 휙 뺏곤 자기 연락처를 입력해 주었다.
이후 나는 옷을 샀고, 그러니까 처음으로 빈티지를 샀다. 선배가 입은 폴로의 옥스퍼드 셔츠를 사기 위해 광장시장으로 갔다. 광장시장 속 구제시장은 길게 이어진 상가 안에 숨어 있었고 이정표를 따라 허름한 계단을 올라가자 가벽마다 한 명씩 서서 먹잇감을 노리듯 내가 자기들 세계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내가 그 세계 속으로 한 발을 내딛자 한 손이 다가왔고 한 손을 뿌리치자 다른 한 손이 나를 붙잡았고 다른 한 손을 뿌리치자 또 다른 한 손이 다가와 “뭘 찾아?” “여기가 제일 싸.” “다 똑같아.” 라는 둥근 폭탄 같은 말들을 돌렸다. 나는 여기저기로 끌려다니다가 사려고 했던 폴로의 옥스퍼드 셔츠는 까마득하게 잊고 무려 백오십만원짜린데 고작 십만원에 주겠다며 자기가 백사십만원을 손해 본다고 억울해하던 보브컷을 하고 입술에 피어싱을 뚫은 젊은 언니가 추천해준 미쏘니 니트를 샀다. 백오십만원짜리를 고작 십만원에 샀다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와 거울 속 나를 들여다보니 웬걸 탈옥범 신창원이 있었다. 거울 속 신창원은 탈옥도 탈주도 할 수 없게 꽉 묶긴 채로 포박되어 나란 인간을 완강히 거부했다. 내 안에 결벽증이 있다는 걸 이날 알게 되었고 단순히 깨끗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가 반응할 수 있는 병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며칠 강의를 빼먹었다. 신기하게 몸은 정직해서 다른 영혼이 깃든 옷이 내 피부에 조금이라도 닿을라치면 강하게 반발했는데 가렵기보다 겉에서 안으로 따가운 기운이 전해져 왔다. 차라리 가려우면 참아볼 참이었다. 이후 한 번 더 광장시장을 찾아 폴로의 옥스퍼드 셔츠, 타미 힐피거의 맨투맨, 버버리 런던의 트렌치코트를 샀지만 역시나 내 몸에 거부당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학교에서 이경에게 전해 들었다. 정연 선배가 다른 학과 후배와 사귀게 되었다고. “정연 선배가 그 후배한테 옷 좋아하는지 물어봤대.” 그 후배는 탈색한 단발머리에 매번 다른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니며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았는데, 전공이 달라 본 적은 없었지만 이름만큼은 우리 학과에 떠돌아다닌 탓에 당장 내 옆을 지나쳐가도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 후배는 불어불문학과에 재학했다. 그래서 선배와 대화가 잘 통한 걸까. 선배는 불어를 쓰니까 나는 알아들을 수 없고, 술자리 내내 알아듣지 못하던 내가 답답하고 무식해 보여서 그 후배를 선택한 걸까. 아니면 프랑수아즈 사강도 모르는 문외한이라 그런 걸까. 에펠탑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상식도 모르는, 파리에 있는 대학들은 이름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는, 프랑스 와인의 산도도 모르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를 단 한 명도 모르는, 계란 지단은 알아도 지네딘 지단은 모르는 무식한 후배라서 그런 걸까. 하지만 코코 샤넬과 루이스 비통은 아는데. 머릿속에서 T존이 선명한 선배의 얼굴이 무성 영화 스크린에 담겨 지나갔다. 선배가 아무리 입을 벙긋거려도 내 귀로 아무런 음성이 전달되지 않는 악몽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나 도서관 칸막이에 숨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책 위로 얼굴을 파묻은 채 끄윽끄윽 ̄ 울었다. 나는 『상실의 시대』 를 껴안고 나오코가 되어 상실감에 잔뜩 취한 채로 도서관을 빠져나와 중앙 계단을 내려가다가 정연 선배와 맞닥뜨렸다. 선배의 옆에는 막 사귀게 된 본 적 없던, 그러나 분명 잘 아는 후배가 밝게 미소 짓고 있었고 선배는 몇 번이고 뜨거운 커피에 빠트린 물러진 냉동 파인애플 같은 웃음을 후배의 입꼬리 안에 빠트리곤 내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