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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순 Oct 26. 2024

빈티지가 아닌 빈티지 옷가게(4)

거꾸로 된 저울

  오픈을 하루 앞두고 선물을 받았다. 개업일은 11월 11일이었다. 산산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밤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재이가 찬기를 데리고 매장으로 들어와 호주머니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다. 물방울무늬의 포장지를 두른 직사각형 선물 상자였는데 혹여나 금괴가 아닐까, 하고 기대했다가 오 분이면 다 먹어치울 빼빼로 과자란 사실에 실망했다. 재이는 실망 가득한 내 두 팔을 움켜잡고 이 빼빼로 같이 나의 앞날이 곧게 쭉 뻗어 나갈 거라며 부유하던 내 기분을 일시에 뭉쳐주었다. 가끔은 재이의 저런 타고난 낙천성이 부러웠다. 아니 자주.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심정까지 들여다볼 줄 아는 여유. 이 어려울 일을 재이는 쉽사리 해내곤 해서 때때로 내게도 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지만 이내 곁에 재이가 없을 때면 언제나 혼자 비끗댔다.


  아마, 그런 걸 걱정했다.


  손님이 오면 반갑게 인사해, 손님이 물어보면 착하게 말해, 손님이 나가면 흔쾌히 배웅해. 마치 반드시 지켜야 할 삼계명이라도 되는 듯 내 가슴에다 빼지 못할 못을 박았다. 그래, 손님이 오면 반갑게 인사할 순 있어. 근데 어떻게 착하게 말해. 착하다는 게 어떤 형상인데. 살아오며 착한 형상을 본 적도 없는데 재이는 매번 목도해온 선지자처럼 이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 사질 않고 나가는 손님에게까지 흔쾌히 배웅하라는 뒷말이 거슬렸다. 장사는 거꾸로 된 저울로 언제나 가벼운 쪽이 가라앉는 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주인은 손님보다 가벼워야 하고, 가벼운 쪽이 가라앉으니 손님을 우러러보라는 왠지 그런 뜻인 것 같았지만 나는 재이의 바람대로 우러러볼 마음까진 없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별점에 목숨 거는 식당 주인들. 그들은 거꾸로 된 저울에 매달려 자신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아등바등한다. 적어도 나는 직물로 된 것들을 팔아 갓 나온 따끈한 음식처럼 다 식어버릴까 노심하며 배달 보낼 일은 없고 그래서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목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나는 온라인 몰을 운영할 마음 역시 없었다. 퇴근 후엔 내 시간을 갖고 싶었고, 장사하는 사람 또한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걸 주변에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재이에게 받은 빼빼로 과자를 데스크에 올려두고 열평 남짓한 작은 매장의 전경을 바라다보니 이제 정말 시작한 것 같아 긴장이 눈꺼풀 자락까지 밀려와 달달 떨렸다. 과연 손님이란 존재가 존재할까. 그리고 여기로 올까. 온다면 어찌 응대해야 할까. 내가 고르고 고른 이 옷들에 과연 돈이란 가치를 써서 지불할까. 이제까지 면접을 준비하던 때와는 전연 다른 불안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불안이 아닌 책임감이란 걸 알아차렸다.


  마지막 점검을 끝마치고 가게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오래전 치러 잊고 지낸 수학능력평가 전날 밤으로 되돌아가 침대 위에 바르게 누워 일찍 잠들려고 발버둥 쳤지만 어쩐지 유튜브에 접속해 빈티지 창업, 이란 단어를 검색대에 넣고 있었다. 검색된 수많은 영상물 중 창업을 권하는 쪽보단 되레 반대하는 쪽이 많았고 이제야 왜 이런 현실이 눈에 들어온 건지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순 없어 이렇게 된 김에 작은 빈티지 옷가게로 시작해 크게 성공한 인물들을 찾아가며 억지로 위안했다. ‘유나이티드 애로우즈’도 처음에는 조그마한 소품숍으로 시작했대. 거기에 일하다 나와 창업한 ‘빔즈’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수원에 있다는 그 편집숍도 빈티지 옷가게로 시작했다잖아. 다행히 조금만 뒤적거리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성공신화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서 다행히 눈꺼풀도 내려앉았다.


  내가 수입해 오는 빈티지 의류는 대다수 일본산이었다. ‘NO재팬 운동’이 한창이었고 유니클로가 여기저기 문 닫으며 폐업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진 시기였지만 그 여파가 한낱 동네 골목에 자리한 열평 남짓한 빈티지 옷가게에까지 미칠 거라 걱정하진 않았다. 심지어 내가 번 돈이 바다를 건너 일본 영토로 흘러갈 염려 또한 없었다. 기껏해야 킬로 당 몇만원 남짓 돈을 지불해 떼 오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이 물류 허브 역시 산발의 남자가 도맡았기에 내가 하는 일이라곤 한국 계좌에 돈을 넣어주는 정도였다.


  “돈을 드리면 옷이 온다고요?”

  “옷이 팔린 뒤 돈을 주면 되는 겁니다.”


  뭔가 거꾸로 된 게 분명한데 산발의 남자는 거짓 없다는 망망한 눈빛으로 자신이 쌓아 올린 거대한 옷 무덤을 빙그르르 둘러봤다. 나도 따라 한번 빙그르르 둘러보았다. 반년 전에 보이지 않던 브랜드들이 이젠 내 눈에도 익어 들어왔다. 나이키, 카파, 겐조, 꼼데가르송, 이세이 미야케. 그리고 그 브랜드 앞으로 빈티지가 붙어야 완성됐다. 빈티지 나이키, 빈티지 카파, 빈티지 겐조, 빈티지 꼼데가르송, 빈티지 이세이 미야케. 공부한 효과가 있다는 기분에 들떴는데 나의 우쭐한 감정을 읽어낸 건지 남자는 제 이름은 한강은입니다, 하고 들뜬 분위기를 금세 환기했다. 뒤이어 예금주 한강은이 아니면 입금하시면 안 됩니다, 하며 강한 어조로 짚어줘 이름이 아닌 예금주를 알려줄 심산인 걸 깨달아 얼른 내 예금주명도 알려주었다.


  “김루리예요.”

  “네.”

  “김루리로 입금된 게 아니면 제가 아니에요.”


  물론 ‘짝’도 등급이란 게 있어서 미국발 브랜드 폴로 랄프로렌 제품만 한가득 압축해 모아놓은 컬렉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가품을 구별할 눈을 가지지 못했고 무엇보다 메이커 상품을 마진까지 남겨가며 모두 팔아낼 자신이 없어 일반 등급의 짝만 주문했고 그에게 받은 옷들을 행어에 모조리 진열한 뒤 집에 돌아와 오픈 일을 기다리며 선잠이 들었다.


  오늘은 하얀 길고양이를 봤어.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그런지 도망가기는커녕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거야. 게다가 쓰다듬어달라며 하얀 털이 뽀송이 난 이마를 내 종아리에다 비벼대는 거 있지. 길고양이, 길고양이, 도둑고양이. 도둑고양이라고 하는 어른 싫어, 도둑이라니, 하얀 도둑을 봤어? 본 적 없어, 그러니까 길고양이지, 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개업 당일 예약해둔 헤어숍으로 갔다. 매번 면접 때마다 가던 곳이라 여느 날처럼 원장은 어디 면접 봐, 하며 으레 물어왔고 나는 잠시간 망설이다 창업하게 됐다며 작은 반전을 주었다. 원장은 도도록하게 솟아오른 자기 광대에다 두 손을 얹곤 너무 잘 된 일이라며 특별히 더 신경 써주겠다고 선심 썼는데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차라리 천원이라도 깎아주지 그래. 후에야 그 천원이 마진에 끼치는 영향을 깨달았지만 개업 당일까지만 해도 내가 저 원장과 동일한 생업전선에 뛰어든 시의 부적절한 소상공인이란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정오를 앞둔 하늘은 유난히 화창했고 쇼핑하러 가기 딱 좋은 온도였다. 미쳤다, 미쳤어. 이러다 대박 나는 거 아니야.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어느 한 역에선 쾌재를 부르고 또 어느 한 역에선 망했다며 고사를 지냈다. 그렇게 온탕, 냉탕을 열댓 번 오가고 나서야 내 땅, 비로소 내가 점령한 가게 앞에 당도했다, 물론 월세를 따박따박 납부하지 않으면 언제든 내가 꽂아둔 깃발이 송두리째 뽑혀나가겠지만. 이미 지난밤 청소를 끝낸 터라 매장 안은 깨끗했다. 하지만 나는 괜스레 총채를 한 손끝에 쥔 채 영혼 없이 여기저기를 털어댔다. 분명 노동 중인데 이 매장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여인인 내가 고상하게 여겨졌다. 미쳤다, 미쳤어. 총채를 꾹 쥐고서 쇼핑몰에서 30% 할인 쿠폰을 끼워 이십만원만 지불해 구입한 전신거울을 빤히 응시하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포즈를 따라 취해 보았다.


  “고상해, 아주.”


  “빈티지는 고상한 것과 거리가 멉니다.” 내가 예금주명을 밝히자 강은이 충고하듯 말을 이었다. “앤틱이란 단어는 매끄러운 표현이지만 사실 그들은 야생에서 놀던 야수들이죠.” 나는 가만히 경청했다. “뭐, 빈티지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입던 옷, 남의 옷이라고들 말하는데, 옷은 주인을 따지지 않아요.” 강은은 앉은 채로 붉은 벽면에 걸린 스타디움 재킷 한 벌을 빤히 응시했다. 아주 빨간 바탕 위로 날인을 휘갈긴 스투시였다. “그러니까 잘 맞는 옷이란 건 없죠. 옷은 옷일 뿐이니까. 다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을 판다고. 루리 씨도 이제 시간을 파는 거예요. 시간을 팔다 보면 시간을 잊게 되고, 그러다가 시간에 파묻힐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강은은 오래전 스티브 맥퀸이 입었던 포플린 재킷과 사막화를 신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으로 순례를 떠난 성직자도 아닌데 강은의 표정은 세상을 품은 듯이 결연했다. 탄식하며 아, 네, 하고 한숨을 내뱉은 기억이 전신거울 앞으로 연기처럼 피어나 고상한 나의 모습을 삽시간에 지워냈다.


  오래된 물건. 금물에 적신 빈티지 레이밴과 가수분해가 온 조던. 언뜻 보면 이 공간은 암살당한 락스타의 거대한 옷방처럼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시간을 한 십 년, 이십 년 뒤로 감아둔, 외부 세계와는 단절되어 따로 노는 곳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나는 이 모든 게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좋았다. 이 좋은 감정을 한껏 만끽하던 도중 예기치 않게 첫 손님이 인기척을 내며 가게 문을 열어젖혀 들어왔다. 딸랑. 풍경소리. 못난이 진주 목걸이에 연식이 된 싱글 버튼 트렌치코트를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첫인사를 뱉고 나자 내가 나를 껴안듯이 어색해서 매장까지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순간 나는 입사 면접 때마다 반달눈을 지으며 습관적으로 내뱉던 안녕하십니까, 를 외치려다 입을 틀어막았다. 첫 손님은 대꾸 없이 고개만 살랑 끄덕이곤 좌측에서 우측으로 옷들이 진열된 행어 사이를 무심히 통과했다. 오목하게 파인 날개 뼈 사이로 긴 머리칼이 모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좌우를 쓸며 찰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스피커 선조차 연결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낮의 매장은 적막했고 마치 어두운 밤, 아니 광활한 우주 속에 저 중년 여성과 단둘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이란 어릴 적 이름 모를 동네 언니와 주고받던 손뼉놀이처럼 언제 끝날지 모를 아득함만이 밀려왔는데, 순간


  “이거 얼만가요?”


  하고 중년 여성이 나를 가득 채운 아득함과 어두운 밤을 한꺼번에 저편으로 밀어내 주었다. 담배를 입에 문 금발의 커트 코베인이 프린트된 라지 사이즈의 티셔츠였다. 이만원이었지만 오픈 특가로 반값 할인 중이라며 없는 사실을 꾸며내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건네받은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꽂은 나는 기기가 뜻대로 작동하지 않아 허둥댔다. 아니 기기는 멀쩡한데 머릿속이 하얘져 지난날 단말기를 설치하러 온 직원이 알려준 결제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꼬여 헷갈렸다. 아, 재이 카드로 미리 연습해볼걸. 후회가 밀려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딱해 보인 건지 손님은 자신의 신용카드를 뺏곤 지갑에서 현금 만원을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나는 목줄이 묶인 강아지도 아닌데 가게 문 앞까지 졸졸 따라 나가 첫 손님을 배웅했다. 납작 엎드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건만 재이가 충고했던 삼계명을 몸소 실천하며 몸에 든 불순물을 모두 빼내 최대한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아직 오픈 전이지. 차츰 긴장이 풀리면서 미소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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