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
D-3
하루 꼬박 동전세탁소로 들락거리며 판매할 의류를 가져다 세탁했다. 건조된 옷들을 탈탈 털어 펴 보니 처음에는 안 보였던 좁쌀 같은 구멍 자국들이 듬성듬성 드러났고 소매가 해져 터진 것도 눈에 띄었다. 빈티지란 게 원래 낡은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외계 행성에 조난을 당한 공룡처럼 초조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구멍 난 자국들을 재이에게 보여주자 좀먹은 거라는 답장이 왔다. “좀먹었다고?” “좀벌레가 먹은 자국.” “세탁 전엔 안 보였어.” 세탁 후에야 원단 조각들이 탈락해 파먹은 흔적들이 드러난다고. 그러니까 이건 복권 같은 거라고. 긁어봐야 알 수 있는데 왠지 꽝이 부지기수 같았다. “당첨 없는 꽝 같은 거지.” 재이가 놀리듯 답장을 보내왔다. 뒤이어 내게 정말 몰랐냐며 되물었고 내가 정말 몰랐다고 답장하자 대책 없는 아가씨라며 쏘아붙였다.
그래, 손님들도 다 이해할 거야. 여긴 빈티지 옷가게니까.
내가 빈티지 옷가게를 차리려고 결심한 건 유행 때문만은 아니었다.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상권을 따라 우후죽순 생겨난 빈티지 옷가게들은 나와 사정이 다를 거라 여겼다. 취업에 실패한 내겐 당장 큰돈이 없었고, 돈이 없는 사람이 신용 점수 역시 좋을 리가 없어 대출한도가 밑바닥 수준이었다. 이게 만약 익스트림 스포츠라면 맨땅에 헤딩하겠다는 열혈 선수에게 가산점이라도 부여해줄 테지만 금융권은 냉혹했다. 무일푼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한 나이 든 회장들의 가르침이 먹혀드는 시대는 이미 침몰해 가라앉은 지 한참 지나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면 피가 나겠지, 아마. 피가 나면 치료를 받아야 할 테고, 그런데 나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여유도 없다. ‘돈 없는 사장님도 할 수 있는 창업.’ 때마침 구식 스쿠터 한 대가 내 가슴께에 광고 명함을 픽 꽂고는 와리가리 지나쳐갔다. 순간 운명의 종소리가 울려 스쿠터가 뿜어낸 매캐한 매연을 뒤따라가 보니 무수히 많은 광고 명함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버려질 운명, 하고 푸념했다. “사장님, 돈이 한 푼 없다 이 말씀이죠?” “한 푼까진 아니고…….” 수화기 너머로 카랑한 목소리의 남자가 나를 멋대로 사장으로 추대시킨 뒤 묻지도 않은 사무실 주소까지 알려주었고 혹여나 싶어 직접 찾아가 보니 허름한 옷가게였다. 1층으로 된 단층 상가인데 녹슨 슬레이트 지붕 탓에 합의만 끝마치면 언제든 굴착기를 몰고 와 부숴버릴 거 같은 상태의 판잣집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경관이 있다니. 안으로 들어서자 미소 좋은 존 F. 케네디와 호기 가득한 청년 기무라 타쿠야의 매서운 눈빛이 빨간 페인트로 범벅된 벽면에 대충 포스터로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목이 갈변한 티셔츠, 소매가 짤막하게 수선된 재킷, 올이 여러 군데 나간 바지가 철제봉에 두서없이 걸린 채 독한 나프탈렌 냄새를 풍겼다. 한가득 쌓인 옷더미의 정중앙에 놓인 마호가니 의자에 걸터앉아 밑단이 다 쓸린 콘밀 사의 통이 넓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나보다 족히 열 살은 많아 보이는, 그런데 실제론 두 살만 더 많다며 고백해 삼촌이 아닌 오빠라고 불러야 마땅해진 이 남자는 가게를 차릴 보증금만 있다면 옷은 알아서 생길 거란 전능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어떻게요?” “잘 봐요. 옷을 팔면 돈이 생길 테고, 그 생긴 돈으로 내게 돈을 갚으면 다시 옷이 생기는…….” 자기 말에 자기가 꼬인 남자는 갑자기 설명을 멈춘 뒤 헛기침을 뱉곤 천장 위로 시선을 무심히 옮겼다. 천장에 대롱 매달린 할로겐전구가 이따금 깜빡였다. “무한 동력 같은 거죠. 일단 해 봐요.” 정말 두서없고 맥락 없고 매력 없는 사업설명회였다. 차라리 신흥 다단계 회사를 믿으면 믿었지 저 남자를 믿을 구석은 하나 없어 보였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구겨 넣은 물이 빠지다, 빠지다 결국 물에 빠져버린 게 분명한 주름진 청바지와 고무 쪼리가 지푸라기 같은 털 난 엄지발가락을 붙잡고 허우적댔다. 꼭 저런 차림새를 한 남자들의 기본값은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한 산발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저 못 미덥던 털보의 제안을 단검처럼 가슴속에 품은 채 휘두르지 않고 반년을 더 버텼다. 믿을 구석이 아닌데 그를 만난 이후로 더는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나를 제압할 만큼 위압적이지 않았다. 면접에 탈락했다는 통보가 오면 재이에게 빈티지 옷가게를 차릴 기회가 왔다며 으레 허황된 말을 늘어놓았고, 실제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일을 저질러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기일까. 무일푼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한 나이 든 회장들의 가르침이 아직은 유효할지 모를 거란 긍정 신호가 뉴런을 휘감았다. 실제로 나는 대출금 없이 창업에 성공했고, 언제나 실패라는 이름만 휘장처럼 따라오다 무언가 근사한 짓을 벌였다는 감정적 포만감이 일시에 몰아닥쳤다. 그리고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두 나를 알아서 사장님으로 높여 불렀다. 물론 망하길 간절히 기도하는 대부업체들의 스팸 문자였지만.
그래, 이제 사장이란 호칭도 얻었고 이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더는 누군가에게 필요해야 할 존재가 아닌, 필요한 존재를 찾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면접자가 아닌 면접관이 되어 면접 예상 질문지를 달달 외울 필요 또한 없어졌고, 직급이 있다면 내 위로는 정수리에 난 뾰루지 말곤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나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는 일인 창업자에 불과해서 나를 찾아올 모든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게 함정이었다. 나는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인상점이나 메타버스 같은 공상과학을 떠올리다가 내가 창업을 결심한 데에는 가난만이 전부가 아니란 기억을 상기했다. 한때 나를 추동시킨 한 남자의 기억. 물론 이걸 재이는 모르고 앞으로도 영원히 몰라야 할 테지만 그 시절 기억이 내 안에 불씨처럼 남아 있고 내 인생이 벼랑 끝으로 몰리자 누가 칼을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불쑥 ‘빈티지’란 단어가 미간 사이로 피어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그 남자는 선배로 불렸고, 선배는 나와 같은 학교에 같은 학과였고 같은 교양 수업까지 이수해서 휴일을 제외하면 항상 마주쳤고 매일매일 색다른 스타일로 강의실에 나타나 나와 동기들의 시선을 압수했다. 제대한 뒤 막 복학했던 선배는 군이 아닌 휴양지에서 머물다 복귀한 미소년 아이돌처럼 모든 생활에 여유가 배어 있었는데, 심지어 잡티 없는 피부와 얇은 눈썹, 짧은 콧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와 재규어 같은 날렵한 몸매를 가진, 그때의 나는 ‘재규어’란 맹수를 실제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모두 다 하나 같이 재규어, 재규어, 하며 신앙심 깊이 불렀기에 선배는 신화 속 맹수가 되어 강의실이란 세렝게티를 지배하는 동물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배의 스타일이 독보적이었다.
아마 그때 처음 그 단어를 듣게 되었다.
“와, 정연 선배가 입으니까 빈티도 빈티지가 되네?”
대학 시절 가장 가깝게 지낸 이경이 토마토 젤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고 그제야 나는 선배의 스타일이 눈에 밟혔다. 어느 날은 미군 군복을 잘라 만든 반바지를 입었고 또 어느 날은 허벅지를 완연히 덮을 만큼 큰 치수의 폴로 랄프로렌 셔츠를 입고 강의실 끄트머리에 앉아 턱을 괸 채 교수의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괜스레 없는 초파리를 쫓는 시늉을 하며 나는 지금쯤 선배가 무엇에 열중하는지 몰래 훔쳐보곤 했다. 선배는 칠판보다 창밖의 캠퍼스를 쳐다보며 사색했고, 마치 우리의 배움은 강의실 밖에 존재한다며 설파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처럼 지성이 충만해 보였다. 그러니까 아테네에서 빨가벗고 턱을 괸 채 석고 조각상으로 굳어버린 그 젊은 철학자가 일순 선배가 되었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언젠가 수업을 앞두고 강의실이 바뀐 적이 있었는데 빈 강의실에 홀로 앉은 선배가 턱을 괸 채 창밖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몰래 선배의 시선을 좇아가 훔쳐봤더니 석조 분수대 앞으로 무리 지어 실습 나온, 교복 치마를 무릎 위까지 줄인 채 재잘대는 여고생들만 보여 실망했다가 이내 모든 걸 통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같이 선배가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어 일순 나를 안심시켰다. 역시 선배는 저급하지 않다고. 누가 못 박은 것도 아닌데 나는 선배를 성인聖人 취급했다. 그러다가 정말로 성인이 된 선배가 그냥 시간에 의해 나이를 먹어 성인成人이 된 나를 버리고 진리로 투신할까 걱정했지만 선배의 출결은 항상 나보다 우수했다. 선배가 강의실에 없는 게 상상되지 않듯 내가 있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며 이경이 이죽거렸다.
나와 이경은 강의실엔 없어도 학과사무실로는 매일 출석했고 그 시절 멜론 핫 차트에 이름 올린 빈지노의 「Aqua Man」을 자주 따라 불렀다. 아쿠아맨을 따라 부르던 우리와 우리들의 물비린내 배인 축축한 음성은 캠퍼스 곳곳에 떠다녔고, 그 힙합 가수의 이름 탓인지 이따금 빈티지 옷을 휘감은 선배의 실루엣이 토막 난 구름이 되어 흩어지다 희멀겋게 내 머릿속에 나타나 나부끼며 아른거렸다.
어항 속에 갇힌 고기들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멍청할지 몰라
네가 먹이처럼 던진 문자 몇 통과
너의 부재중 전화는 날 헷갈리게 하지
너의 미모와 옷 입는 스타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너의 어장의 크기는 수족관의 scale
단지 너 하나 때문에
경쟁은 무척 험하고도 아득해
―빈지노, 「Aqua Man」
어쩌면 이때부터 경쟁이었다. 나 말고도 다수의 동기는, 아니 어린 후배들까지 합세해 선배가 다트판도 아닌데 평생 모아 온 자신의 핀을 선배에게 아낌없이 던져 구애했고 그중 가장 심장에 가깝게 꽂은, 그 시절 하마사키 아유미처럼 탈색하고 매니큐어 색을 매일매일 바꿔 칠하던 어느 후배와 사귀게 되었다. 그래, 둘은 모두 옷을 잘 입었다, 아주. 나는 실연당한 여인이 되어 학과사무실을 빠져나와 배회했고 로비 앞에 선 채로 내 차림새를 흘끔 내려다봤다.
배가 볼록 나와 있었다.(이때는 ‘불룩’이 아니었다.)
마지막 세탁물들을 챙겨 안고 동전세탁소에서 나오자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왠지 내 뱃속 깊은 곳에서 발길질하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든 거라면, 그래서 내가 이 빈티지 옷가게를 차리게 된 거라면, 이 모든 필연적 결과물이 결국 하나의 과거를 관통해 빚어진 것이란 철학적 명제가 철학을 모르는 내 머릿속에 들어와 스쳤다. 어느 학자가 말했다. 기억은 현재의 나라고. 그렇다면 기억과 과거를 반드시 하나로 통일시킬 이유 또한 없다. 기억이 유형이라면 과거는 무형에 가까우니까. 혹여나 선배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그리고 석고 조각상처럼 아직도 사색에 잠겨 있다면 내가 기억인지 그저 과거인지 한번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자 두 손으로 끌어안은 이 빈티지 옷가지가 내게 기억인지 과거인지 먼저 추궁했고, 만약 기억이라면 아플 테고 과거라면 씁쓸할 거란 해답을 내놓았다. 이 둘을 합치면 추억이 되겠지만 결코 우리 사이가 그럴 수 없다는 상실감으로 인해 내가 쥔 옷가지가 사생아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