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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순 Oct 26. 2024

빈티지가 아닌 빈티지 옷가게(7)

옷가게 옆 카페

  ‘팔지 않는 것. 팔지 않을 것. 팔아선 안 될 것’ 들을 떠올리며 노트에 기록하고 보니 개업한 지 스레 오 일이 지나가 있었다. 그동안의 매출은 처참했다. 그러니까 하릴없이 저런 거나 끄적대고 있었겠지. 한편으론 나란 인간을 되돌아보게 했고, 되돌아본 김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초등학교 2학년 때 빨간 장지갑에 든 이만원으로 다마고치를 산 것과 중학생 때 보석함에 속 금반지를 몰래 훔쳐 팔아넘긴 도둑년이 바로 나였다며 자백했다가 갚아야 할 빚만 되레 늘어났다. 정말이지 이 공간은 시간을 감아둔, 외부세계와는 단절되어 쓸데없이 나를 참회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지겨웠다, 벌써.


  정오에 출근해 밤 아홉 시에 퇴근하는 시간 동안 혼자 이 안에 처박혀 있다 보니 누군가를 마냥 불러내고 싶단 충동만 들끓었고 가장 손쉬운 방법인 재이를 찾는 일로 해결했다. 이때부터 습관적으로 스피커모드로 재이와 통화했는데 매장 안이 재이의 음성으로 꽉 차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지니처럼 고독감이 조금이나마 덜 했고 견딜 만해졌다. 그사이 이경에게도 한 번 전화가 왔고 괜한 자존심에 네가 간 이후로 매출이 급증했다는 거짓말만 늘어놓고 끊었다. 이경은 토마토 젤리 같은 웃음소리로 킥킥대며 내게 산 재킷은 잘 입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순간 회복되기 힘든 무력감이 배꼽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는데 때마침 누가 가게 문을 열어젖혀 들어왔다.


  깔끔한 청색 앞치마를 두른 한눈에 봐도 키가 큰 젊은 남자였다. 그는 우리 가게 옆 길모퉁이에서 일한다며 건방지게 턱짓으로 가리켰고 심심하면 카페로 놀러 오라며 해맑게 웃어놓곤 정작 우리 매장에 진열된 빈티지는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절대 당신 카페로 가서 매출을 올려주는 불상사 따윈 없을 거라고. 아니 상도덕도 없다니까, 하며 여느 때와 같이 재이와 스피커모드로 통화하며 조금 전 있었던 일화를 토해냈다. 재이는 차분한 어투로 지근거리에 있는 점포들에 시루떡은 돌렸는지 하다못해 개업 인사는 건넸는지 따지듯 물어왔고 내가 당연히 안 했지,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자 상도덕도 없는 건 바로 너라며 무안을 줬다.


  이 동네는 대학을 끼고 있는데도 대학가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만큼 상가가 적을뿐더러 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처음에는 이 대학이 그 대학이 아닌, 노인 대학을 일컬어 대학가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었고, 그건 바로 나의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로변 한 블록 아래 골목에 터를 잡고 일평생 살아온 할머니의 자택이 하필이면 우리 가게의 맞은편이라 해가 뜨고 날이 개면 녹슨 대문 앞에 놓인 철제의자에 앉아 진종일 쇼윈도 안 마네킹을 노려보며 욕지기를 뱉었다. 나는 매장 한편에 숨어 지팡이를 추켜들어 목표물 없이 흐리멍덩히 노려보는 할머니를 경계했다. 내가 고용한 적도 없는데 할머니는 호객을 하듯, 아니 대부업에서 고용한 용역 깡패가 되어 손님들이 우리 가게로 들어오질 못하게 굴었다. 오래지 않아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인해 치매를 앓고 있고 부양가족이 없어 보건소와 구청 직원들이 매일 같이 들락거리며 안부를 살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내 불찰이었다. 발품을 팔아 최적의 위치를 가늠하는 와중에 가장 중요한 걸 간과했다. 맞은편에 사는 할머니가 치매고 치매에 걸려 매일 같이 대문 앞에 앉아 행인들을 상대로 공격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 말이다. 하루에도 구급차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골목 안을 수 번 누비고 학생보단 시트가 벗겨진 유모차를 끄는 노인들이 더 흔하며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저지대란 것도. 공인중개사 직원은 이런 자잘한 단점을 알려주는 대신 대학가이며 빌라가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다는 통계와 그런데도 월세와 보증금이 저렴하다는 숫자로 점철된 확고한 지표를 내세웠고 나란 사람은 단순하게 금전적인 이득만 따지는 속물이라 쉽사리 낚여 도장을 찍었다. 월세는 다음 달이 아닌 개업 당일에 지급해야 한단 기초조차 모를 만큼 무지한 나는 조금 더 기간을 두고 정하자던 재이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했다. “잡스가 그랬대. 펩시콜라 CEO인 존 스컬리에게 평생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고 싶으냐고.” 재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래서 자기한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며 되물었다. 나는 또박또박 당당하게 외쳤다. “몰라. 어쨌든, 그랬대!”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설탕물인 콜라를 모두 들이켰다. 탄산이 빗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6년 동안 지겹도록 등고선을 그려놓곤 정작 깃발을 꽂은 장소가 저지대란 사실조차 몰랐다니.


  그 시각 재이는 간사이 공항에 있었다. 적어도 한 시간 뒤에야 비행기가 이륙할 거라며, ramp-in 상태로 보딩까지 기내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걸 '뻥타임'이라고 불렀다. 뻥타임이야, 하고 재이가 시동을 끈 비행기 안에서 고할 때면 나는 왠지 신이 났다. 여느 때보다 싱겁고 논리 없이 이야기를 마구 주고받을 수 있는 토막이 난 시간이라서. 따지고 보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모든 감정이 정제된 채로 단 하나의 감정만을 또렷이 건져내야 하는, 어떤 소음 공해도 없는, 각자 포근한 침대 매트리스에 반듯이 누워 서로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적막하고 원형적인 시간만큼은 피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건 전적으로 내가 추진한 이 사업이 머지않아 쫄딱 망할 것 같다는 강한 직감에서 비롯됐다.


  “요즘 장사 어때?”


  에어팟을 귀에 꽂은 재이가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다보며 우리 미래의 깊숙한 지점을 파고드는 뾰족한 물음을 건네 올 때면 매번 유치하게 끝말잇기로 잘라내 회피했다, 나는.


  “때밀이.”

  “이상순.”


  다행히 재이는 나와 잘 통하는 편이었다.


  “순대곱창.”

  “순대면 순대고 곱창이면 곱창이지 순대곱창은 또 뭐니.”

  “아니, 먹고 싶어서.”


  착한 재이는 순대곱창전문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 가게에서 오백 걸음 걸어가면 됐다. 길모퉁이를 돌자 전날 우리 매장에 들이닥쳤던 멀대 남자가 떠올랐고 나는 슬쩍 카페 안을 훔쳐봤다. 손님 한 명 없이 텅 비어있었다. 통창 안에는 빽빽한 빛과 백열등과 그 멀대 남자만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는 바 테이블 뒤에 가만히 서서 폰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괜스레 비웃곤 지나쳐갔다. 순대곱창은 특출나게 맛있지도 않았는데 의자 개수보다 많이 찾은 손님 탓에 붐볐고 나는 자본금을 더 들여서라도 음식점을 차렸어야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마트에 파는 레토르트 식품으로 조리해 놓아도 여기보다 맛을 낼 자신이 있었다. 모든 맛집, 모든 장사, 모든 손님.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맛집, 장사, 손님이 아니겠지. ‘모든’ 이 하나가 결국에 맛집, 장사, 사람을 알아서 불러오니까. 내가 오백 걸음을 걸어 알아서 여길 찾아왔듯이.


  우리는 다시금 오백 걸음을 되돌아가 텅 빈, 손님 한 명 안 보이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에는 처음 보는 백인 남성의 얼굴이 큰 액자, 작은 액자를 가리지 않고 월아트로 꾸며져 있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동일인인 데다 한쪽 눈동자만 색깔이 달랐다.


  “오드아이.”


  재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두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걸 오드아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모르면 나처럼 주절주절 늘어트려야 하는 걸, 뭐든 알아서 나쁠 건 없지만 여길 벗어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까먹을 거란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절대 찾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하루 만에 어기다니, 나답다며 시인하곤 바 테이블 끄트머리에 자리잡아 비엔나커피와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차가운 향 뒤에 붙은 맛은 따뜻했다. 원두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러니까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한 나는 정작 커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없었는데, 그건 전적으로 한때 ‘바리스타’ 열풍을 타고 남발하던 사설 협회 중 한 곳에서 쉽게 수료해 딴 자격증이라 그랬다. 1급은 아니라 자랑할 거리는 안 돼도 누군가가 나보다 커피에 대해 잘 아는 체하면 무기 삼아 언급했다.(2급이란 단어는 쏙 빼놓고.)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재이 역시 매번 커피 맛과 향에 대해 내게 확인받았다.


  “이건 아주 산미가 강한 게 과테말라 안티구아 원두를 쓴 거 같아.”


  재이의 드립 커피를 뺏어 한 모금 시음한 뒤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모르는 걸 품평했다. 아는 걸 알려주는 일보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할 때 훨씬 만족도가 높다는 것. 복잡한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친환경 요리보다 맛만큼은 공장에서 찍어낸 정크푸드가 낫다는 것. 살아가는 데 있어 어쩌면 영양보다 열량으로 때운 삶이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풍요로울 거라 자신하던 참에 그 멀대 남자가 우리의 대화 틈바구니에 끼어 들어왔다.


  “죄송한데 손님, 이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입니다.”


  도대체 사람이란 존재는 왜 죄송할 짓을 저지른 다음에야 죄송하다고 덧붙이는 걸까, 하고 나는 심통이 났다.


  “아, 내가 착각했나 봐.”


  애써 침착하려고 애썼다. 죄송할 짓은 저 멀대 남자가 했는데 정작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모르실까 봐, 과테말라 안티구아 원두는 산미가 거의 없습니다.”


  쐐기를 박았다. 나를 쓴맛, 단맛도 구분 못 하는 바리스타로 만들어버렸다. 그쯤에서 나도 멈췄어야 했는데 오기가 생겨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두 나라 거리가 가깝잖아요. 다 비슷비슷하게 재배하고 생산하니까…….”


  옅은 미소를 머금은 멀대 남자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내 말을 끊어먹었다.


  “혹시 모르실까 봐, 과테말라는 남미고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예요. 비행기로 간다면 반나절은 가야 할 만큼 꽤 멀죠.”

  “잘 아시네요. 경유하면 더 오래 걸립니다.”


  항공승무원 아니랄까 봐 재이가 맞장구를 쳤다. 이후로 나는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일그러졌다. 내가 일그러졌단 사실은 얼굴 좀 펴라며 재이가 일러준 다음에야 알아차렸다. 수줍은 척 굴면서 직설적인 저 혹시 모르실까 봐, 라는 화법을 저 멀대 남자의 남은 인생에서 모조리 편집해버리고 싶었다. 편집자가 꿈이었는데. 이경과 나는 출판사 편집자가 꿈이었다. 뜬금없지만 우리에겐 뜬금 있던 꿈이어서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둘 다 자신의 꿈조차 편집 못 해 이경은 IT기업에 취업했고 나는 창업을 하게 됐을 뿐이다. 어쨌든 예상대로 저 멀대 남자는 나하곤 안 맞는 유형이고 여기는 안 맞는 카페다. 무엇보다 이날 이후로 재이는 더는 내게 커피 맛에 관해 확인받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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