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향기 Mar 21. 2023

전원주택을 팔았다 2

'들어옴'과 '나감'

 이사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아파트에서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오던 날.  논둑길을 따라 익스프레스 5톤 트럭이 천천히 들어왔다. 몇 시간 전에 미리 집에 도착해 있던 나는 그 모습이 마치 무엇이 안겨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자마자 곧 이웃집이 떠올랐다. 항상 내 느낌보다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먼저 챙기는 버릇 때문일 거다. 동네에 먼저 들어와 있던 이웃이 이제는 쓸쓸하지 않을 거라는 뿌듯함과 기다리던 것을 해 주었을 때의 뿌듯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있다가 그 이웃은 우리 집에 들어와 냉장고 놓는 자리며 책장 놓는 자리를 같이 살펴주었다. 우리 남편은 이웃집 아저씨에게 '형님, 형님'이라고 불렀다.  

 이웃이 생겨나고 형제가 생겨난 기분이 들었다. 이 동네에서 형님, 아우 하면서 살리라! 간장, 된장도 같이 담아보고 김장철이면 배추도 같이 비비고, 감자 고구마도 삶아서 따뜻할 때 옆집으로 가져가서 나눠먹어 보리라. 든든한 노후가 마련된 듯했다. 외롭지 않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웃 때문에 시골로 이사를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웃과 함께 시골살이를 한다는 것이 큰 기대였다.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있었나 보다.  저녁마다 보는 Ebs의 '한국기행'에서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같이하고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런 게 사는 거지, 하면서 그들의 삶을 흉내 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는 법은 없다. 산자락에 안겨들어서, 이웃과 함께 살리라는 계획과 기대는 무너져버렸다. 아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너뜨렸다고 함이 옳은 이야기이다. 그것이 이웃 때문이라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좁은 마음 탓이라고,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닭과 아무 데나 똥을 싸는 개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이미 시골살이에 싫증이 나 있었고, 사실은 저녁마다 엄습해 오는 고요와 어둠이 싫어졌던 것이다. 우울과 고요. 처음 이사를 들어오면서 훅 맡았던 거름 냄새가 나를 우울하게 했다. 해가 다른 마을보다 먼저 떨어지고 그러면 금방 어둠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어둠이 싫었다. 하필 집은 동향이어서 정오가 지나면 햇빛이 들지 않는 것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둠이 나를 가두었다. 저녁 여섯 시만 넘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아무 때나 나가서 혼자 걷고 싶었다. 

 사실, 도시 삶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뭔가에 파묻히고 싶어서 들어왔다고 해야 옳다. 남들의 시선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서 놓여나고 싶은 마음, 시선과 평균치의 기준이 늘 나를 옭아맸다. 스스로 변명을 만들고 평균적인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늘 무엇에 다친 마음이었다. 세상에 다쳐서 암에 걸린 사람들이 산골에 들어가 살듯이, 나를 다치게 하는 곳으로부터 벗어나서 구석진 곳을 찾아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안온해질 듯했다. 상추 같은 푸성귀를 키우면서, 감자와 고구마를 키우면서 그것들이 전해주는 햇빛과 따스함이 위로해 줄 거라 믿었다. 거기에 지나가는 이웃의 덕담 한 마디가, " 간장이 떨어졌는데, 간장 좀 줄래요?"라고 옆 집 문을 밀고 들어가는 발걸음이 오랫동안 다쳤던 마음을 위로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너무 감상적이었는가?

 


 

 들어옴... 시골살이의 선택은 떠나고 들어옴이었다.  이제 나가도 될 듯하다. 10년을 살았으니 나가도 될 듯하다. 영원히 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예측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음주가 이삿날이다. 깨지기 쉬운 그릇과 몇 개 화분을 미리 아파트에 옮겨 놓고 기다린다. 그냥 놔두고 가기에는 아까운 식물들. 씨앗부터 커서 이제 무릎만큼 커진 소나무를 넓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꽃잎이 연분홍으로 예쁘게 피는 작약과 수선화 몇 뿌리도 화분에 심었다. 이것들이 아파트에 가서 잘 클지 모르겠지만, 가져가는 것이 부질없는 욕심일 것 같지만, 차마 아까워서 그동안의 애정이 아까워서... 


그냥 가기가 서운해서 혼자 사는 노총각한테는 김치 한 포기, 뒷집 할머니에게는 두유 한 박스, 그 뒤에 사는 농사꾼에게는 과일 한 상자를 돌렸다. 그리고 마을 모임에는 오리 주물럭과 소주 한잔의 계획을 세운다. 가기 전날에는 바로 옆집에 가서 '우리 갑니다'라고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키우는 고양이가 아닌데도 발치 아래서 우리를 쫓아다니는 고양이에게는 생선가시를 주었다. 물론 먹다가 남은 것이지만 다른 고양이가 먼저 와서 먹지 않게 기다리고 있다가 주었다.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 마루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방충망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놓았다. 

 장미 아래에 거름을 마저 넣어주고, 웃자란 매화나무 가지도 마지막으로 잘라주었다. 


한참 후에 다시 이 마을에 들어설 수 있을까. 이 마을에 올 일이 있으면 이 집 앞에 와서 서성이게 될까. 기웃거리며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돌담은 잘 있나, 장미는 얼마큼 컸나, 구들방 마루는 여전한가, 기웃거리게 될까. 그러다 집주인이 나오면 멋쩍은 인사를 하며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게 될까. 혹시 후박나무와 먼나무는 너무 커서 잘려나가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낯선 나무가 나를 보고 있게 될까. 

 그런데 그럴 수 없을 거 같다. 다시 그 집으로 가보지는 못할 거 같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왜? 두고 떠나는 애인을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음과도 같다고 할까. 떠날 때는 언제고 다시 와보냐고, 사람 같으면 그럴까 봐. 

 어쨌든 나는 내 인생의 한 토막을 거기에 놔두고 떠나는 마음 같다. 다시 돌아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건 거!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이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