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는 그렇게 죽었다

by 셩혜

달력의 빨간 날은 언제나 반갑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10월이 되면 달력의 빨간 날도 점점 줄어든다. 직장인들에게 작은 즐거움이 사라지는 시기이다. 출근하지 않은 프리랜서에게도 빨간 날이 줄어든다는 건 아쉽다. 빨간 날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할 것 없이 매 한가지인가 보다.


공휴일이라 시어머니와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가을볕이 좋아 음식점까지 걸었다. 망원시장으로 향하는 골목길. 공휴일이라서 그런지 망리단길은 핫스폿을 찾아 나선 이들로 하나 둘 채워지고 있다. 이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성인 두세 명이 지나면 가득 차는 인도. 그 인도 위엔 최신 건물과는 거리가 먼, 오래된 건물이 있고 다소 이질적이지만 그 안엔 잘 다듬고 꾸민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하다. 같은 곳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비슷비슷한 골목길이지만 사람 대신 빽빽하게 빌라들이 박제되어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골목에는 특색이라곤 전혀 없는 모양과 색, 도토리 키재기 하는 마냥의 빌라가 서로 마주 본다.


어느 집에서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끓인 모양인지 냄새가 순간 이 골목을 장악해버렸다. 괜찮았던 배가 갑자기 요동치는 느낌이다. 서둘러 식당을 향하는 길 빌라 앞 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들, 빌라를 청소하는 주인들이 몇몇 보였다. 빗자루질을 하는 손길에 건물을 바라보는 눈길에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걸 보니 건물주인 듯싶었다. 높아야 4-5층의 건물, 한 층에 많아야 한 두 세대. “참 특색 없이 비슷해요 그쵸? 그래도 다행인 건 연남동처럼 다 때려 부수지 않아서 그건 좋은 것 같아요.” “어 여긴 제가 옛날에 방 구할 때 본 건물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요.”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거닐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붉은색 벽돌은 죄다 이곳에 사용되었으리라 생각될 만큼 유독 붉은색 벽돌의 빌라가 많다. 빌라 입구는 대부분 자동문에 보안시스템을 갖추고, 계단 몇 개쯤은 올라야 하거나, 혹은 철문으로 된 대문을 들어가 또 다른 문을 열어야 하는 구조이다. 그 속에서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빌라도 있다. 그러다 건물을 벽을 향해 물을 시원하게 쏘아대던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건물주인 듯 물청소를 깨끗이 하더니 갑자기 옆 빌라 화단에 물을 불쑥 쏘아대는 걸 보고 옆에 있던 남성이 참견이다. 남편인 모양이다. 부부의 토닥거림이 좁은 골목의 일상처럼 울러 퍼진다.


힐끗 돌아보곤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눈에 띄는 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발걸음을 멈췄다. 사실 나무보다 거기 달린 열매가 더 들어왔다. 붉은 벽돌의 빌라가 배경이 되니 그 앞으로 달린 탐스러운 붉은 열매가 눈에 띄긴 힘들지만, 한눈에 내 시선에 들어왔다. “어머. 어머니 석류예요!” 제 색을 찾아 햇볕, 바람, 물과 함께 잘 익고 있었다. 도심의 골목에서 석류나무를 본 것도 신기한데, 석류가 큼지막하게 달렸다니! “어머니 잠깐만요.” 하고 석류나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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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컷을 담았다. 석류가 달린 나무를 참 오랜만에 봤다. 10년이 넘은 듯싶다. 불현듯 아빠 생각이 났다. 내가 살던 집 마당엔 석류나무 서너 그루와 큰 대추나무 그리고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가 사과보다 더 달았다. 아빠는 이삼일에 한 번 꼴로 대추를 따 주었다. 고등학생-대학생 때만 해도 석류의 효능이나 귀함 따위를 몰랐다. 저 스스로 가을볕의 탐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는지 쩌-억하고 벌어진 석류를 따면 알들이 빽빽하게 탱글함을 자랑한다. 먹으라고 주곤 했는데 그걸 받아먹는 건 귀찮았다. 손바닥 위로 우수수 떨어진 20-30알을 한 번에 입 안으로 쑥-하고 털어 넣는다. 톡톡 터지는 맛이 상큼은 하지만, 남는 씨는 몹시 귀찮다. 엄마는 그것까지 꼭꼭 씹어 먹으라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싶었다. 부모님은 매해 수확한 석류를 가지고 항아리 모양의 유리병에 담아 넣어 석류즙인가 엑기스를 만들었다. 나중에 그걸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에 나진 않지만, 국산 석류로 그런 걸 담글 수 있다는 건 감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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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돌아가던 그 해. 우리 집 석류나무에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해마다 풍년까지는 아니지만, 늘 수확할거린 있었거늘, 달려 있던 석류마저 말라 먹을 게 없었다. 먹을 게 없으니 귀찮게만 여겼던 석류가 먹고 싶어 졌다. 마트고 시장이고 몇 군데를 다녀봤지만 국산은 드물었다. 죄다 중국산뿐이다.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무에 물 안 줬어? 좀 잘 돌보지”라고. 아빠가 없으니깐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싶었다.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어릴 적 살던 집에도 석류나무가 있었거든 근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깐 그 나무도 죽더라. 옛날 어른들이 그라데. 석류나무는 심은 사람이 죽으면 같이 죽는다고.”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엄마한테 그렇게 따지듯 물을 일이 아니었기에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석류나무는 근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으면 나무도 말라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를 심은 이이 부고장을 그 나무에 걸어둬야 나무가 말라죽지 않는다고. 알지 못했던 우린 그렇게 아빠와 같이 석류나무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부고장 하나 걸어뒀으면 되었을 것을. 이듬해 석류나무는 꽃도 피지 않았고 가을엔 열매도 달리지 않았다. 겨울이 시작되자 엄마는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 자꾸 아빠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공휴일 무심코 걷다 만난 석류나무 한 그루에 아빠가 떠올랐다. 기억이란 참 이렇게 문득문득 불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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