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람들, 장례식장에서 만나다

by 셩혜

병실 앞 비상계단 문을 열고 주저앉아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수녀 이모가 문을 덜컥 열었다. 별일 없었다는 듯 애써 눈을 비벼댔지만, 이모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는 사이 구급차 1인용 침대가 병실로 들어왔다. 입원해 있던 서울의 병원에서 구급차를 불러 본가가 있는 왜관으로 내려갔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돌아가는 게 순리인 듯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갔다. 평일이라 고속도로가 한산해 자동차로 세 시간 반-네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 사이 장례식장이 마련되었고, 영정사진 속 아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리를 맞았다. 몇 해 전 처음 유럽여행을 나선 내가 선물로 사 온 명품 넥타이를 하고 있는 영정사진 속 아빠는 무척이나 온화하고 편안해 보였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세월이 담긴다는 말처럼 아빠의 모습도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희끗희끗한 흰머리도, 조금 처진 눈도, 오뚝한 코도, 아빠의 얼굴은 지난 한 달간 내가 본모습과 달랐다. 마지막까지 근무한 회사의 배지는 가슴 한쪽에서 유독 반짝였다.


구급차보다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해 있던 친척과 회사 사람 중 그 누구도 이런 풍경을 이렇게 빨리 마주하리라고 생각한 이들은 없다. 남은 자들은 45일 만에 닥친 이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했다. 급히 달려온 큰고모는 곡소리를 냈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사람들은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기 바빴다. 그렇게 누군가 검은색 저고리와 치마를 손에 지어주며 “손님 맞아야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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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입구부터 제단까지 국화꽃이 가득 폈다. 첫 상을 올렸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와 동생을 대신해 장례가 익숙한 집안 어른들이 오일장을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문상객과 맞절로 인사를 나눌 때 무릎이 덜 아플 수 있게 쿠션이 있는 방석을 구해뒀고, 우리 손에 손수건을 지어줬으며, 손님이 많아지자 재빠르게 공간을 하나 더 빌려 천주교식 장례 공간을 만들었다.


한 주가 마무리되던 10월의 어느 금요일.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아빠 친구들은 모임별로 무리별로 장례식장 한쪽에 자리를 마련했고, 엄마는 그들을 보면서 탄성을 토했다. “당신 친구들은 저러고 있는데 당신은 거기서 뭐 하는 거냐?”라며 영정 속 아빠를 보며 무슨 대답이라도 듣고 싶어 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들은 담담히 술잔을 비워갔고, 대수롭지 않을 수 없는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어쩌면 말려서 안 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장례식장 한가운데 홀로 앉아 양 다리 번갈아 가며 흔들어 대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다. 다섯 살 아이 같았고 평생 강한 줄 알았던 엄마에게 난생처음 약함을 봤다. 그 상황을 진정시킨 건 막내 고모였다. 유독 엄마와 가까웠던 막내 고모는 엄마를 꼭 안고 장례식장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라도 하는 듯 소리가 멈출 줄 몰랐다. 아빠 친구들이 앉은자리에 가 일일이 인사를 하고 또 다른 문상객을 배웅하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졌다. 누군가 “남은 상을 잘 치르려면 잠이라도 잘 자야 한다.”라며 건넨 소주 한 잔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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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튿날 새벽녘 눈이 떠져 정신이라도 좀 차리자 싶어 밖으로 나갔다. 새벽녘 공기가 차가운 건지, 마음이 쓸쓸한 건지 10월 중순인데도 바람이 꽤 스산해 양손으로 몸을 꼭 안았다. 장례식장으로 들어오는 길 영안실 팻말이 보인다. 손님을 맞이하기 이른 시간이라 그 앞에서 서성거리며 굳게 닫힌 문만 만지락 만지락 거린다. 끝내 열 수 없는 무거운 영안실 문이다.


모든 가족, 아빠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 회사 사람, 동네 사람, 살면서 몇 번 보지도 못했을 법한 사람까지. 고인이랑 연을 닿았다는 이유로 문상을 왔다.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리 일찍 가서 어쩌누,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일이라는 등 위로를 건넸다. 위로가 되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기억에 괜찮은 삶을 살았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 아빠.”라며 영정사진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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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객을 배웅하던 중 장례식장 입구에서 서성이던 부부를 보았다. 무슨 사연인지 한참을 서성였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부 중 남편이 아빠 영정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더니 끝내 그냥 울었다. 이제 막 환갑을 넘겼을법한 남자 어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엄마는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라며 귀띔했다. 그제야 입구에서 그렇게 서성였던 이유를 알아챘다. 아빠와 십여 년을 함께 한 직장 간사님은 오일장 내내 알게 모르게 우리 곁을 지켰고, 집안 식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본인들끼리 알아서 손님상을 치우고 차리고를 반복했고 발인 날까지 아빠가 손수 꾸리고 살던 집에 먼저가 깨끗이 청소해두며 마지막 떠나는 고인의 넋을 달랬다.


어쩌면 몰랐을 거미줄 같은 아빠의 인간관계. 그 속의 담긴 인생. 나는 왜 진작 알지 몰랐을까.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친구는 이런데 아빠 친구는 어때? 하며 친구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부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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